마지막 반박입니다.

yora 2019.09.22 20:51 조회 수 : 158

 

 

1.

 

무엇보다 두 분은 공통적으로 제가 제시하는 문제를 '00년대 중반에 이미 끝난 논쟁'이라고 말씀하시며 논의의 필요성 자체를 부정하셨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2019년이고 그렇다면 논의가 멈춘지 10년도 더 넘은 시점에서 아직까지도 그 논의의 결과를 직접적으로 따라야 할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왜냐하면 장르는 기본적으로 향유자들 간의 약속이기 때문입니다. 지금 이런 말씀은 향유자들 사이에서 어떤 논의가 오갔는지 아무런 관심도 없었다는 고백밖에 되지 않습니다. 장르에 대해 이야기하신다면 향유층 분석은 기본입니다. 과거 애니메위킥스에서도 상당한 논의가 오갔지만 지금은 DB가 소실되었고 현재는 네이버 백합 카페 유리토피아에서 백합 정의로 검색하면 글을 찾아보실 수 있습니다. 갑론을박이 벌어졌지만 결국 백합성애가 포함되지 않느냐, 실제 성소수자의 이름인 레즈를 장르에 갖다 붙이기는 어폐가 있지 않느냐는 식의 담론이 오갔습니다. 결과적으로 나온 것이 플랫폼의 정의 분류죠. 현재 여성 간 성애를 다룬 수많은 작품들이 백합 / GL로 분류되고 있으며 향유자들은 여기에 대해 항의하지 않습니다.

 

플랫폼의 정의가 물론 완벽하지는 않지요. 하지만 적어도 대중을 상대로 하는 만큼 대중의 욕망과 합의를 반영한다고 할 수는 있습니다. 그리고 향유자들은 어느 정도 여기에 개입할 수 있습니다. 리디북스에서 BL 신간 카테고리에 유부남 게이의 이야기를 다룬 작품들이 올라온 적이 있습니다. 해울출판사라고 동성애 문학 작품을 주로 내던 곳인데 게이들의 이야기를 BL로 넣었던 것이죠. 기존 향유자들인 이성애자 여성들이 격렬하게 항의했고 그 작품은 얼마 지나지 않아 내려갔습니다향유자들은 장르 구분에 충분히 개입할 수 있습니다.  

 

2. 그리고 키안님이 내리신 전제 자체에 전 동의하지 않습니다.

 

백합물과 레즈물은 구분된다. 만일 구분되지 않고 있다면, 구분되어야 한다.”

 

https://ddnavi.com/interview/420470/a/

 

유리히메는 백합 전문 연재 잡지입니다. 이 인터뷰는 13년간 유리히메 편집장을 맡으신 분과의 인터뷰고요. 이 분은 유루유리 등의 소위 백합 코드를 지닌 일상계부터 보다 리얼함을 지닌 백합물까지 두루 언급하십니다. 13년간 향유자들을 상대로 백합 코믹스를 팔아온 유리히메 편집장은 딱히 백합과 레즈를 구분할 필요성을 언급조차 하지 않는군요. ‘리얼함이라는 단어를 여성애, 내지는 퀴어 서사로 충분히 읽어낼 수 있습니다. ‘엄마 아빠 때문에 여자 후배랑 위장 결혼했다는 코믹스는 일본에서 시부야 구의 동성 파트너십 제도가 마련된 현실과 그 맥을 같이 합니다. ‘증오스러운 만큼 사랑한다라는 일본 코믹스에서도 주인공은 자기가 여성 성소수자라는 자각을 확실히 하고 있습니다. 레즈물은 현실이라고 하셨는데 위에 언급한 두 작품이 정말 현대 일본에서 성소수자가 살아가는 현실과 관련이 없다고 보십니까? 전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야가키미가 백합과 레즈의 긴장 관계를 보여준다고 하셨는데 이것도 어불성설입니다. 정작 일본에서는 야가키미를 정통파 백합물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2화의 키스 장면(이것도 엄연히 성애 표현에 들어갑니다)를 보고서 이 작품이 백합장르임을 알게 되었다는 식의 발언도 있죠.

 

https://dengekionline.com/elem/000/001/141/1141266/

 

https://dengekionline.com/elem/000/001/861/1861900/

 

이 두 가지 인터뷰 어디에서도 백합레즈의 장르 충돌에 대한 언급은 없습니다. 질문을 하는 사람과 대답하는 원작자는 야가키미를 철저하게 백합으로만 언급합니다. 원작자도 하지 않는 구분을 굳이 시도하는 의미가 뭔지 전 정말 모르겠습니다.

 

3.

 

백합물과 레즈물을 구분하고자 하는 시도는 무엇보다 백합 장르가 어떻게 태어났는가에서 이어지는 것입니다. 백합은 태동부터 지금까지 매우 일본적인 장르입니다.”

 

이러한 이해에 따라 백합물이라는 장르는 매우 일본적인 현상이며 일본발 서브컬처에 포섭되지 않는 여성애 서사와는 구분되어야 합니다. 부득이하게 강한 표현을 쓰자면, 백합물과 레즈물을 동일시하는 것은 오히려 백합물의 역사적 맥락을 제거하고 그 표면에 나타난 여성애 서사만을 쟁취-소비하려는 태도입니다.”

 

틀렸습니다. 당장 리디북스에만 해도 백합 / GL 카테고리에 200개가 넘는 작품이 있으며 이 중 상당수는 현대 한국을 배경으로 합니다. 저 또한 웹소설 작가로서 리디북스에 백합 / GL 카테고리에 들어가는 웹소설을 하나 쓴 적이 있습니다. 이런 식의 장르 정의는 한국에서 백합이라는 카테고리로 창작을 하시는 모든 분들을 지우는 언사입니다. 키안님이 모른다고 해서 그 수많은 작품들이 없던 것이 되지는 않습니다. 게다가 제가 계속해서 언급하고 있지 않습니까. 백합이라는 장르 안에 여성 간 성애 서사가 소분류로 들어간다고요. 여성애는 장르의 표면이 아니라 그 자체가 장르의 정의이자 일부분입니다. 제가 계속 예시를 들지 않았습니까. 여성 간 성애를 비교적 깊게 다룬 푸른 꽃이라는 작품도 엄연히 여학교 백합물이고 애니메이션까지 나왔습니다. 그리고 일본이나 한국 향유자들이 그 작품을 백합이라고 지칭하고 있습니다. ‘그 꽃잎에 입맞춤을역시 여학교 백합물 계보를 따라가는 18금 게임인데 애니메이션이 대표성을 가진다는 이유만으로 이것을 분석에 포함시키지 않을 이유는 없습니다.

 

덧붙여 yora님은 '레즈물'이라는 어휘가 가진 치명적인 결함으로 레즈비언 이외의 여성애자를 포괄하지 못한다고 하셨습니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레즈물과 백합물 사이 어딘가에 있는 (퀴어)서사, 그들을 부르는 호칭이 발견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는 자연스레 백합과 레즈에 걸쳐있는 제n항을 설정하는 작업으로 이어질 수 밖에 없습니다.”

 

저는 2004년부터 마리아 님이 보고 계셔로 백합에 입문했고 그 이후로 장장 15년에 걸쳐 백합을 향유하던 사람이니 향유자로서 발언할 자격은 충분할 것 같군요. 그런 호칭은 필요도 없고 제 n항을 설정할 필요도 없습니다. 이미 백합이라는 장르 안에 다 들어가 있고 향유자들도 딱히 이의를 제기하지 않습니다. 제가 지난번에 언급했던 바이-팬 커플이 등장하는 봄바람도 리디북스에서는 GL / 백합 카테고리 안에 들어갑니다. 향유자들이 이미 그렇게 받아들이고 있다고 계속 제가 강조하지 않았습니까. 더 반복해서 말할 필요도 없을 것 같군요.

 

저는 이 글을 끝으로 더는 반박글을 올리지 않겠습니다. 원래 제가 쓰던 글이 백합과 퀴어의 교차를 다루고 있으니 그 글에서 더 상세하게 논지를 전개하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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