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합 논쟁에 대한 '시시한 관전평'.

犬Q 2019.09.23 02:05 조회 수 : 387

이 이야기를 시작하기 전에, 먼저 나에 대한 몇 가지 정보부터 뱉어놓고 시작하는 게 모두가 앞으로의 '시시한 관전평'을 이해하기 더 쉬우리라 생각한다.

나는 헤테로 남성이며, <마법소녀 리리컬 나노하> 시리즈로 의식적으로 백합물을 접했으니 약 10여년은 백합을 보았다고 말해도 좋았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 어떤 국내 커뮤니티와도 접하지 않았다. 나는 그 때 당시 충분한 일어능력을 지니고 있었고, 굳이 한국의 백합 커뮤니티에 가입해서 활동하기보다는 픽시브 등지에서 팬 아트나 팬 픽션을 찾아보는 편을 선호했다. 무엇보다도 나의 주된 관심사는 TV애니메이션이었으며, 백합 역시도 좋아하는 장르 중에 하나일 뿐, '관심사 피라미드의 최상위'에 위치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유리토피아도, 현재 한국 웹소설이나 웹툰의 상황도 잘 모른다. 종이 만화도 보고 있기는 하지만 그렇게 열심인 편은 아니다. 그렇기에 나의 '관전평'은 '시시한 것'일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그러면 관전평으로써, 먼저, 내가 백합물과 레즈비언 로맨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밝히는 게 옳겠다 :

 

나는 키안 님의 구분에 전혀 동의할 수 없다

무엇보다도 나는 키안 님이 레퍼런스로 든 "언니 저 달나라로 : 백합물과 1910-30년대 동북아시아 여학생 문화"의 독해에 동의할 수 없다.

 

이 논문의 주 논점은 물론 백합물의 심장부에 학원물이 있고, 그것은 에스문화에서 비롯되었으며, 지금까지도 여전히 잔향을 남기고 있다는 것이긴 하다. 그러나 이러한 에스문화 자체가 이미 단단하게 굳어진 근대적 이성애 규범주의(hetero-normal)의 수용과정에서 발생한 우회, 굴절, 도피, 때로는 저항이기도 했다. 그것은 본문에서 "이 열렬한 고백은, 그러나 이 시기 일본의 성과학이 이성애를 ‘자연’으로 놓기 시작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제 동성애는 ‘자연에의 반역, 성의 개념에의 반역’이 되었다"라고 말하는 것에서도 알 수 있다. 그렇게 볼 때 에스문화에서 비롯된 백합물은 이미 퀴어적이며, 이미 성애의 문제에 대한 어떤 포즈와 어프로치를 취하고 있음은 충분히 알 수 있다. 그리고 또한 해당 논문에서 에스문화의 잔향이 어른 거리는 것으로 언급된 <푸른 꽃>도, 성애적인 부분이 문제가 아니라 '학원물'이라는 '스킨', '신비한 여성상'이 반복적으로 사용된다는 것에 대한 지적이다. "순결한 소녀이기 위해 동성을 위한 사랑은 오히려 장려될 수 있다. 그러나 동성 로맨스는 여학교 시절로 막을 내려야 한다", 라는 것이 성애묘사를 거부한다는 것으로 읽혔다면 완전히 잘못된 독해다. 그러한 성애를 드러내는 동시에 안전한 것으로 회수될 수 있도록 학교라는 공간 안으로 제한되는 것으로 읽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만 말하면 키안 님이 언급하는 <유리쿠마 아라시>는 바로 이러한 독해가 통하는 전형적인 예시로, 매우 강력한 안전장치를 품고 있다.)

물론, 이 논문은 가장 완벽한 성서가 아니다. 뭣보다도 2012년에 쓰여진 논문인데, 그 시대를 감안하더라도 레퍼런스로 쓰여진 작품이 매우 부족하다. <푸른 꽃> 정도가 최신인 것으로, 이미 그 당시에 내가 보던 애니메이션에서도 '학원물'이 아닌 백합물은 있었다. 당장에 어른이 되서 여아를 입양해 기르게 된 <마법소녀 리리컬 나노하 StrikerS>가 2007년 작품이다. 애니메이션 회사 P.A.Works에서 제작한  <CANAAN> 역시도 2009년에 방영된 액션물로, 성인들이 주요인물로 등장하는 백합물로 분류하는 게 옳을 것이다.  2012년 이후로는 훨씬 더 다양하고 많은 작품이 나왔으며, 내가 아는 것만으로도 국내에 <투룸 G펜 알람시계>나 <막차로 못가게 하는 단 한 가지 방법> 등의 만화작품이 사회인 백합물로 정식 출판되었다.

 

한 가지 더 말하면, 이러한 성애 씬이 삽입되느냐 아니냐에 대한 논쟁이 레퍼런스가 전혀 안 남은 것도 아니다. 유리토피아는 접하지 않았지만, 나는 2015년 경에 CritcM에 올라온 글(링크 : http://blog.naver.com/PostView.nhn?blogId=hotleve&logNo=220492390391 )을 기억하고 있다. "레즈비언의 재현 : 동시대 한국 웹툰의 ‘클로이와 올리비아’를 찾아서 "라는 제목이 붙은 이 글에서도 그러한 논란이 있음을 지적하지만, 동시에 무의미함 역시도 지적하고 있다. 예를 들면, 성애가 있으면 레즈비언 포르노인가 하는 지점에 대해서 이 글의 작성자 레티는 이렇게 설명한다

 

"두 작품은 모두 여성 캐릭터들의 노골적인 섹스신을 그려내고 있지만, 각각 ‘여성향’과 ‘남성향’ 백합물로 구분되는 경향을 보인다. 전자와 후자의 차이를 거칠게 정의하자면 1) 얼마나 캐릭터들의 감정에 대해 ‘섬세하게’ 다루고 있느냐와, 2) 섹스신이 삽입을 중심으로 이루어지는지의 여부라고 볼 수 있다. 달리 말하자면, ‘미소녀 야망가’의 등장인물을 단순히 여성 캐릭터로 대체한 백합물일 경우 ‘남성향’으로 분류된다는 이야기다. 따라서 <WDFS>이 뭔가를 ‘더’ 보여주고 있다면, ‘남성향’이라고 분류되는 19금 백합물들에 비해 좀 더 ‘여성적인’ 섹스신을 연출한다는 대답이 가능할 것이다."

 

그로부터 4년이 흘렀는데 성애적 긴장을 표지로 백합물과 레즈비언 로맨스를 구분할 수 있단 발언은 무관심하다고 표현해야 한다.

 

 

 

그렇다면 다음과 같이 질문을 해야겠다.

 

Q. 당신은 백합물과 레즈비언의 로맨스의 관계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A. 당신이 어떻게 묻느냐에 따라 다르다.

A1. 만약 엄밀히 따져야 한다면, 나는 백합물을 "일본, 혹은 적어도 일본을 통해서 근대성을 획득해온 동아시아 지역적/문화적 특색을 드러내는 레즈비언 로맨스"로 지칭하겠다. 학원물도 그러한 지역적 특색의 일환일 뿐이며, 그것이 백합물을 레즈비언 로맨스와 구분해서 특색지어질 수는 없다. 이것은 만화와 망가, 애니메이션과 아니메의 구분과 거의 유사해, 때로는 무시해도 좋다.

A2. 반대로, 광의의 의미로 따질 수도 있는데, 이럴 때는 레즈비언 로맨스가 백합물의 하위가 된다. 그것은 '여성 등장인물들을 주연으로 한, 여성들끼리의 다양한 상호작용과 관계를 그려낸 픽션'으로 정의할 수 있으며, 레즈비언 로맨스는 그러한 픽션들 중에 하나다.

 

물론 규정 A1에 대해서는 여전히 키안 님에 대해 반박하시는 분들이 말하는 것처럼 '한국 웹툰과 한국 웹소설을 읽는 수용자들'을 지우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여전히 "Yuri"는 일본이 종주국으로 받아들여지고 있으며 그것을 퍼뜨리는 가장 강력한 매체가 이른바 '아니메', 심야 TV 애니메이션 시리즈라고 생각한다. (이것에 대해 지나치게 애니메이션-중심적 사고라고 비판하면 받아들이겠다) 다만, 동아시아 내부에서 살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그것을 굳이 레즈비언 로맨스와 구분해야 하는 이유를 갖고 있지 못할 뿐이라고 생각한다. 그렇다고 할 때, 이미 종주국인 일본에서도 학원물에서 벗어나 작품들이 단편이나 특이한 변화구로 등장하는 것이 아니라 서브 장르로 등장하고 있으며, 성애를 다루는 작품도 많이 존재한다면, 성애적 긴장은 레즈비언 로맨스와 백합을 구분해주는 표지가 될 수 없다.

또한, 위에서 조건을 단 것처럼 '굳이 엄밀하게 따져야 하는' 경우에만 그렇게 말하는 것이지, 오히려 규정 A2의 경우가 많은 경우 적합하다고 생각한다. 캐리 님의 반박에서, '에어 시스템'이라 말이 나왔는데, 아마도 "공기계空気系"를 무리하게 번역기로 돌려서 태어난 말인 것 같다. 국내에서는 널리 '일상물'로 불리는 것 같으나 반드시 1:1이라고 보기는 힘들다. 이 작품군을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주로 잡지 <망가타임 키라라>에서 발표되는 가벼운 드라마 계열의 작품들이 많아 '망가타임 키라라 계'라고 불리기도 한다. 멸칭적으로는 '미소녀 동물원'으로 불리기도 한다. 그러나 캐리 님의 "에어시스템이 언제부터 백합이랑 동의어가 되었습니까?"라는 질문에 대해서, 나는 그렇다면 도대체 공기계와 백합이 얼마나 겹치는지를 되물을 수밖에 없다. 대표작들을 나열해보면, <아즈망가 대왕>을 비롯해서, <케이온> <럭키스타> <유루유리> <히다마리 스케치> <금빛 모자이크> <주문은 토끼입니까?> <유루캠프> 등등이 있다(좀 무리를 하면 메타-공기계로 <학교생활!>이 있겠다). 과연 이 작품들이 백합물이 아니라고 할 수 있을까?  물론 (애매하지만) <그래도 마을이 돌아간다>처럼 이성연애가 그려지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굳이 괄호를 치고 애매하다고 표현했던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이성연애가 그려진 경우는 거의 없다고 본다. 잡지 <망가타임 키라라>에서 나온 작품군은 더더욱 그렇다. 수용자들 역시도 취향에 따라 물론 갈리기는 하지만, 이런 작품들을 충분히 백합으로 소비하고 있다. 2015년의 글과는 전혀 다른 상황으로, 섹슈얼 텐션이 거의 없거나 아주 가벼운 터치로 그려진 이 작품들이 주로 '남성향 백합'으로 이해되는 경향은 있는 것 같다. 즉, 공기계 = 백합물은 아니지만, 공기계 중의 많은 작품은 백합물이며, 대체로 백합물의 서브장르로 이해된다고 봐도 무리는 없다 생각한다.

 

나는 왜 키안님이 <이윽고 네가 된다>에 놀라움을 표시한지 알 것 같다. 키안 님은 아무래도 나와 같이 '애니메이션-중심적' 사고관을 갖고 있고, 그러한 관점에서 봤을 때 여기까지 밀어붙인 <이윽고 네가 된다>는 굉장히 놀라운 작품이다. 애니메이션 계에서 '공기계'의 등장은 굉장히 중요한 사건으로 여겨지며, 그것이 동시에 백합을 퍼뜨리는 채널의 역할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의 '애니메이션-중심적' 사고에서 말하자면, <이윽고 네가 된다>는 동성애에 대해 메타포나 판타지를 거치지 않고 보다 '현실적인' 배경 안에서 스트레이트하게 그려진 픽션이, 그런 가장 강력한 영향력을 지닌 '아니메'에서도 이제는 통용된다는 것을 증명한 하나의 사례이긴 하다. 애니메이션 계에서도 <푸른 꽃>이나, 백합이라고 하긴 어려우나 LGBTQ+를 다룬 <방랑 소년> 같은 작품들이 기존에 있었지만, 애니메이션 계에서 이만큼 대 히트를 친 것이 역시  <이윽고 네가 된다>를 둘러싼 환경의 변화를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여하간, <이윽고 내가 된다>는 위의 '공기계'가 지배적이었던 환경에 파문을 던진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것이 백합물 그 자체에 대한 브레이크-스루라고 할 수는 없다. '애니메이션-중심'이 아니라 정작 백합의 입장에서 보면 (물론 매우 좋은 작품이지만) <이윽고 네가 된다>는 그리 '놀라운 사건'은 아니며, 따라서 그것의 등장 때문에 성애를 표지로 하는 장르 구분이 다시 언급되어야 할 이유는 없을 것이다. 키안 님의 '애니메이션-중심적'인 비평에 대해 백합 전체에 대한 존중을 좀 더 보이기를 요구한다. 백합은 아니메 안에만 있는 것이 절대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소설을 통해 가장 많이 공유되었으며, 그런 의미에서 한국 웹소설을 무시하면서 백합을 논하는 것은, 적어도 한국 안에서 백합을 논할 때, 수 많은 오독과 무시를 낳는다. 그렇지 않고서야 성애를 표지로 하여 백합물과 레즈비언 로맨스를 구분할 수 있다는 식의 언사가 나올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내가 굳이 '관전평'이라는 말을 써가며 이 글을 낮춘 이유는, 나 자신이 두 측에서 주장하는 백합에 대한 정의 중 그 어느 것도 동의하지 않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나는 장르 구분 자체에 크게 의미를 두지는 않고 있는 편인지라, 그렇게 열성적으로 말해야 할 이유는 잘 모르겠다. 굳이 말해야 한다면 나는 규정 A2를 가장 우선적으로 지지한다. 왜냐하면, '공기계'를 소비하는 '애니메이션-중심적'인 팬들도 백합팬 중의 하나로 부르는 것에 문제를 느끼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들의 영향력이 정말로 많이 낮거나 수요가 적은 것일까? 이러한 지적이 '한국에서 생산된 웹소설과 웹툰을 즐기는 팬'을 지우는 행위는 아닐 것이다. 오히려 그것은 향유층의 다양한 분화에 눈을 두는 것이며, 그것들까지 포함해서 묶여지는 '백합'의 광활한 스펙트럼을 지적하는 것이기 때문이다(그리고 환원적으로, 그런 의미에서 장르의 구분에 대해 열성적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키안 님의 규정이나 독해가 틀린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과 별개로, 나는 백합이란 장르에 대한 더 관용적이고 넓은 시야를 공유하기 원한다.

 

내가 만약 유리토피아라는 커뮤니티에서 활동했거나, 혹은 소설과 만화에 좀 더 많은 관심을 두었다면 차라리 더 '흥미진진한' 관전평을 남길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나는 그러하지 못했으며 '기회가 된다면...' 같은 변명이나 남기는 정도이다

 

시시한 관전평을 끝까지 읽어주신 분이 있다면 감사할 따름이다.

 

[최종수정 2019.09.24. 01:15]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기타 리뷰/비평 게시판입니다 텍스트릿 2018.05.28 100
46 유리히메 편집장 인터뷰 번역 (일본 백합 향유층 분석) yora 2019.09.29 226
45 백합 논쟁에 대한 첨언 : 남성향 백합과 여성향 백합, 그리고 여성을 바라보는 시선에 대하여. 이브나 2019.09.24 427
44 답변을 맺음. [3] 키안 2019.09.24 252
» 백합 논쟁에 대한 '시시한 관전평'. [1] 犬Q 2019.09.23 387
42 마지막 반박입니다. yora 2019.09.22 158
41 키안님에 대한 반박 - 장르적 구분에 대하여 캐리 2019.09.22 212
40 평행선을 달릴 수밖에 없는 이유 도피오 2019.09.22 174
39 두 번째 답변 [2] 키안 2019.09.22 220
38 한국 웹소설 장르(판타지 등)를 표로 정리해 보았습니다 file 이브 2019.09.20 951
37 일본의 백합 만화 시장에 대해 이것저것 nanmi 2019.09.20 321
36 저 역시 답변에 대한 반박입니다. yora 2019.09.18 238
35 이윽고 장르 이해도가 망하게 된다 – 답변에 답변 맞습니다 도피오 2019.09.18 349
34 <이윽고 네가 된다> 리뷰에 달린 도피오님과 yora님의 댓글에 대한 답변 키안 2019.09.18 267
33 허공 말뚝이 3권 평 청아비 2019.09.17 97
32 <이윽고 네가 된다> 리뷰 - 백합과 레즈 사이 [2] 키안 2019.09.17 440
31 증명된 사실 평 청아비 2019.09.03 52
30 지극히 사적인 초능력 평 청아비 2019.09.03 84
29 구미베어 살인사건 평 청아비 2019.07.17 106
28 붉은 칼 평 청아비 2019.07.12 123
27 튜링의 생각 평 청아비 2019.06.24 87
CLOS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