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르 백합의 역사와 정의에 대해서는 다른 분들께서 충분히 이야기를 진행해주셨으므로, 저는 다른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공개된 곳에서의 비평과 장르 정의에 대하여.

 

 

 

우선 키안님께서 <이윽고 네가 된다>라는 한 작품을 리뷰하시면서 소위 <남성향 백합>의 분류방식, 백합물과 레즈물의 분리를 당연하게 시도하고, 일본 <애니메이션>에 한정하여 이야기한 시점부터 그것은 백합에 대해 다른 향유자들에게 지나친 일반화로 느껴지기 쉬웠다고 생각합니다… 원래 본격 비평 의도가 아니셨다고 해도, 이미 장르 백합에 대해 논란이 많이 일 수밖에 없는 주제를 던지신 셈이 되었구요.

 

 

 

여학생들이 작품 속에서 명시적으로 연애하지 않는 남성향 백합(소위 <공기계>, 남성향 백합 향유자들이 흔히 소비하는 미소녀 일상물) 애니 위주로 보다가 야가키미를 본 것이 기분좋은 충격이었다는 정도의 감상이었다면 납득했을 거라 생각합니다. 일본 장르 근본주의를 말씀하시지 않고처음부터 이야기하고 싶은 것이 일본 장르 한정이라고 하면 이해했을 것이구요. (그러나 애니만을 두고 백합을 이야기하겠다는 시선에는 동의하지 않습니다)

 

 

 


 

 

1. 1차 백합과 2차 백합

 

 

 

한편 백합과 관련하여, 1차와 2차가 엄밀하게 구분되지 않아서 생기는 혼선도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뭐 애초에 백합이라는 것이 여성 간의 관계서사를 모두 총칭하냐, 여성들의 연애서사만이 “찐”이냐-에 대한 견해도 갈려서, 백합이라는 장르 자체가 다소 모호하게 정의된 감도 없잖아 있지만요.

 

 

 

우선 편의 상 BL 2차 팬덤의 용어를 빌려오겠습니다. (HL 쪽에서도 1차와 2차 이야기는 있지만, 원작에서 공식 커플인 경우에 2차가 흥하는 경우가 많긴 합니다... 그래도 원작에 없는 커플링을 착즙하기도 하지요우선 백합을 <여성 간 연애서사>라고 정의하는 경우

 

 

 

1) 여성 간 연애서사를 원한 여성들이, 1차 원작에서는 나오지 않은 연애관계를 착즙한 경우에는 원작 자체가 연애서사는 아니지만 2차 백합으로 흔히 소비되었다, 고 이야기할 수 있을 것입니다.

 

 

2) 그리고 원작 자체가 숨기거나 암시하지 않고그 여성들의 관계가 연인관계임을 드러낸 경우 <1차 백합>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야가키미는 원작 자체가 <1차 백합> 작품이고, 2차적으로도 백합으로 소비된다고 할 수 있을 테고요.  

 

 

 

백합을 <여성 간 연애서사>로 받아들이고 착즙해온 팬덤은, 1차가 여성 간 연애를 내어놓고 드러낸 작품이 아니더라도, 여성 간의 관계성이 강한 작품은 2차로 연애 + 성애관계를 부여하여 착즙해왔다고 들었습니다. 마치 2 BL 팬덤이 지금까지 쭉 그렇게 해왔던 것처럼요.^^ 그러나 BL 팬덤은 개인의 취향이나, 과거의 트렌드가 정신적인 관계를 강조한 것이었다고 해서(소프트 BL을 생각해보면 되겠네요그것이 <장르 BL 자체의 특성>이라고 주장하거나, <그것만이 BL이다>라고 선언하는 목소리가 그렇게 큰 것은 본 적이 없습니다... 그냥 모든 것이 BL이죠, 소프트한 것도 BL이고 하드한 것도 BL이고요...

 

 

 

어쩐지 백합 얘기하다 뜬금없이 언급된(..) 로판도 과거와 현재의 트렌드가 많이 다릅니다. 그러나 그것도 모두 <로판>이라는 장르 속에 수렴되지요. 한국 순정만화도 과거의 트렌드와 현재의 트렌드가 다르지만, 그 모든 것이 <순정만화>라는 거대 장르 안에 포함됩니다. 또한 모든 장르에는 트렌드를 따라가는, 그리고 그에서 벗어난 작품이 있고요. <유행>이 변했다고 해서, 그 장르가 아니게 되지는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그 모든 작품이 그 장르를 특징짓는 구성요소겠지요. 장르란 세월에 따라 끊임없이 변화하고 발전해가는 것이구요.

 

 


2. 장르 백합의 정의에 대해 : 남성향 백합만이 진정한 백합? 대중의 백합 인식과 <백합 쓰지 마세요>에 대하여. 

 

 

다른 걸 떠나 “소위 여성향 백합 향유자 집단이 어떻게 정의하건, 내가 좋아하고, 향유하는 방식만이 백합이다”라는 선언이 폭력적인 정의라고 할 수밖에 없군요…

 

 

 

 말씀하신 것은 소위 “남성향” 백합의 소비경향과 정의라고 흔히 이야기되는데요. 네 여자들의 우정 이상 사랑 미만(소위 “순정”물)은 “백합”이라고 칭하고, 본격적으로 퀴어적인 이야기를 하는 것은 “레즈물”(틀렸습니다)이라고 분류하는 방식이요. 그 분류만이 <진정한 백합>의 분류라고 <선언>한다면, 다른 방식의- 그러니까 소설 만화로 창작되며 백합을 그냥 소설과 만화라는 틀에서 재현되는 퀴어서사-로 받아들이고 창작하고 소비하는 이들을 배제하는 것이 됩니다. 네 소위 <여성향 백합>이야기입니다. 한국과 일본 모두에서요. 그리고 백합 씬에서도 소위 남성향 작품과 여성향 작품이 갈린다고 합니다, 물론 향유자들은 대개 다 소비하지만(..)(일단 절대량이...) 취향에 따라 보는 것과 보지 않는 것이 갈리는 이들도 있을 것이고요.

 

 

 

한편 어떤 사람들이 <남성향>의 백합 분류만을 <이것만이 진짜다>라고 선언하고, -향유자 여성들이 그것만이 백합이라고 오해해온 역사에 관하여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소위 공기계(여학생 일상물), “진정한 백합은 여자들이 친구 이상 연인 미만으로 모호한 관계성을 유지하는 작품들 뿐이며, 그렇지 않은 것은 레즈물이다”라고 선언해온 남성향유자들이 많았고 솔직히 지금도 많다고 생각합니다() 그들의 목소리가 크기 때문에 비-향유자 여성들은 “아 백합은 남성향 장르구나… 여성 자신의 이야기가 아니라, 남자의 시선에 포획된 여자들의 장르구나”라고 인식해온 바 있으며, SNS에서도 최근까지 그런 이미지에 근거해 <백합은 순결한 이미지를 가졌으며, 그러므로 장르 백합이라는 용어는 "빻았으므로쓰지 마세요(약칭 백쓰마)>라는 외부자의 폄하와 공격이 주기적으로 꾸준히 일어난 바 있습니다. 1년 넘게 지켜본 것 같네요.

 

 

 

이것이 <남성향의 백합 정의>만이 진정한 백합이다, 라는 일부 사람들의 무례한 정의에서 촉발되지 않았다고는 생각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그 <이미지>, 실제로 많은 수라고 추정되는 한국의 (여성향) 백합 창작자-향유자들에게도 얼마나 공격적인 칼날로 돌아가는지에 대해서도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겠네요. <백합-레즈물 구분>에 대한 반감이 이런 지점에서도 나왔다고 생각하고요. (레즈물이라는 정의 자체가 뜬구름같다는 점은 차치하고서라도요)

 

 

 

"백합에서는 여자들이 키스까지만 하고, 그 이상은 나누지 않는다"는 이미지, 그리고 "손만 잡고 포카포카한 장르"라는 이미지도 이러한, 백합에 대해서 <일부 향유자>의 시각만이 전부인 듯 단언하는 선언으로 인해 유발된 것이라고 보고요. 그러므로 백합을 향유하는 여성들이 "백합에 있는 것은 정신성만이 아니다! 여성 간의 연애 & 성애관계가 있는 장르이다...! 여성의 욕망과 성애를 지우지 마"라고 외칠 수밖에 없는 것이죠.

 

 

 

그리고 무성애자로서의 당사자성을 말씀하셨는데, 이 맥락에서 그 이야기가 왜 나왔는지는 잘 모르겠으나... 무성애자의 존재와 취향, 그래고 <유성애자인 여성의 욕망과 성애의 존재와 취향>을 지우지 말라는 여성들의 요구가 대립하는 것이라고 생각지 않습니다. 그리고 놀랍게도 여성들에게도 당사자성이 있습니다... 백합물에 등장하며 묘사되는 것은 거의가 여성들이지요. (뭐 간혹 야가키미같이 남자도 등장하는 경우도 있습니다만...)

 

 

 

소위 <미소녀 동물원물>을 즐기는 남성들이 <여성들을 타자화하고 관음>하는 방식으로 백합을 아예 향유하지 않느냐-라는 지적에서 완전히 자유롭기는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그 지점에 대해 반감을 갖고 지적한 것이 <미소녀 동물원>이라는, 남성들 사이에 인기있는 <여자만 나오는 이야기>에 대한 멸칭이겠죠…

 

 

 

BL에서 여성들이 현실에 존재하는 성소수자 남성들을 대상화하는 것이 아니냐, 라는 여성들 사이의 비판과 자성의 목소리는 흔히 들리지만, 백합에 대해서는 자꾸만 <현실에 있는 여성, 그리고 성소수자 여성들을 대상화하는 것이 아니냐>는 비판과 자성의 목소리보다는, <백합이랑 레즈물은 다르다...!>라는 목소리만 자주 들리는 게 참 흥미롭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어쩐지 발화자가 주로 남성이거나, 남성에게서 그런 얘기를 들어온 사람들이네요... (그 사실이 별로 유쾌하진 않고요)

 

 

 

여성들의 관계를 그리는 장르 백합을 소비할 때 그 <고정불변해야만 하는> 미학에 대해서 이야기하기 전에, 그 장르가 그리는 것이 여성(그리고 연애서사를 그리고 있다면 퀴어 여성)이라는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겠죠본인이 여성이 아닌 비당사자인 경우 그들을 대상화하는 시각으로만 보고 있지 않은가, 현실 여성들이 제대로 재현되었는가, 그들의 욕망이 어떻게 반영되었는지보다는 <그들을 바라보는 자신이 원하는> 특정한 틀과 감성에만 집착하고 있지 않은가-라는 점을 고민해볼 필요가 있겠죠.

 

 

 

백합의 <고정불변한 장르적 특성과 그 미학>에 대해 논할 가치가 있다고 한다면, 그 안에 그려지는 대상인 여성들 자신의 생각도 중요하지 않겠어요?

 

 

 

 

 

 

3. 백합의 역사와 레즈비언 포르노, 그리고 정신성 

 

 

 

백합물에서도 여성향과 남성향(그리고 여성향, 남성향 2차 팬덤의 경향성)이 갈리는 것을 보면 알 수 있지만, 여성들과 남성들의 욕망의 방향과 취향은 제법 다르다고 볼 수 있겠지요…

 

 

 

그리고 다른 분이 말씀하셨듯 <백합>이라는 단어는 원래 현실 레즈비언인 <백합족>을 가리키는 것으로 시작되었으며, 중간에는 레즈비언 포르노를 가리키는 데 백합이라는 워딩이 쓰인 적이 있었지요… 그에 반발하는 의미에서, <마리아 님이 보고계셔>로 백합이라는 워딩을 <여성의 것>으로 탈환한 백합 장르에서 한동안 성애적인 부분보다는 정신성을 강조했다…라고 알고 있습니다.

 

 

 

여성들은 언제나 남성-사회의 시선, <낙인>이나 <규정>으로부터 온전히 자유롭지 못해왔기 때문에, 나름의 방식으로 그 시선과 불화하고, 저항해 왔습니다… 백합에서 한동안 여성 간의 정신적인 교류와 감정선을 중시해온 것은, 그러한 사회적 압력(애초에 <레즈비언>을 바라보는 사회의 시선, 정체화 부정, 그리고 여성에 대한 성적인 억압)으로 인한 것이 정말 아니었을까요?

 

 

 

그러므로 백합에서의 <정신성>이란 특정한 시기 백합의 <트렌드>라고 봐야지, 장르 백합의 <바꿀 수 없는 본질>이라고 볼 수는 없지 않을까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4. 여성의 신체는 전장이다 : 유독 <여성>이 시선 속에 포획된 존재로 있기를 요구받는다는 점에 대하여.

 

 

 

남성향과 여성향 모두에서, 언제나 여성만이 순결하기를 기대받고 성적으로 억압당하는 존재였으며, 남성은 성경험이 있다고 배척당하거나, 반드시 없어야 한다고 규정되지 않았지요. (조신남 플로우는 지극히 최근의 플로우이며, 여전히 (한국) 여성향 순애물 로맨스 소설-순정만화에서도 여주는 순결하거나 경험이 적은 경우가 많습니다.

 

 

 

물론 창작물에서의 여성 성억압과 <정숙함>의 기대는 현실을 반영하는 것입니다. 일본 만화의 경우 여성향, 남성향의 여성 묘사가 극단적으로 차이가 나서, 다소 현실적인 순정만화(일본에서는 소녀만화)에서는 여성은 처녀딱지를 빨리 떼어버려야 할 텐데정도로 묘사한다고 들었습니다한편으로 판타지 등 순정만화, 그리고 소년만화 등의 창작물에서 (이상적인) 여성은 여전히 <정숙하고 순진무구한> 상을 벗어나지 못한 측면도 있다는 인상이었습니다

 

 

 

이것은 <일본 현실의 여성>, 그리고 <이상적인 여성상>, 그리고 그들을 바라보는 <남성의 욕망> 사이의 갈등이지 않나-라고 생각합니다한국 장르에서도 흔히 발생하는 간극이지요. 여자의 <>에 대한 분절된 인식. 그러나 이런 <정숙함> <자유로운 성>에 대한 갈등은, 남자의 몸에 대해서는 잘 일어나지 않는 것입니다

 

 

 

현실 남성퀴어에 대해서도, BL에 대해서도 그들이 <정숙할 것>이라고는 상정되지 않고 기대되지 않지요. 오히려 과잉성애화되며, 대상화되는 측면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들을 긍정하는 측에게도요)

 

 

 

반면 여성퀴어에 대해서는, “여성의 관계는 순결하고, 그들의 관계는 진지한 것이 아니다라는 인식이 널리 퍼져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마음에 드는 남자를 만나지 못해서, 혹은 과거에 남자에게 상처를 받아서여자를 만나는 것이라고 흔히 합리화를 하지요. 그리고 백합에 대해서도 비슷한 편견이 작용하는 측면이 있지 않나, 라고 생각을 합니다.

 

 

 

백합에서 여성 간의 성애를 지우지 말라는 말을 (퀴어) 여성 당사자-향유자들이 이야기할 때, 이러한 맥락이 있다는 사실을 무시하고 단순히 무성애자의 취향을 무시하냐고 넘어가선 안 되는 것입니다현대 한국에서는, 여성의 성애와 성욕 자체가 지워지고, 여성을 성녀화하는 흐름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것은 남성과는 상황이 완전히 다르죠. 심지어 결혼한 여성도 <남편에게> “더러운 여자로 보일까 봐성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못할 정도로 억압돼있던 사회란 것을 감안할 필요가 있고요. 그것은 </창녀> 프레임이며, 여성들은 자신들을 그 프레임에 가두지 말라고 목소리 높여 외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한편 최근 SNS에서도 여성의 성애 자체를 부정하는 흐름이 있었답니다(, 2019년인데요!) 시스젠더 헤테로 여성, 퀴어 여성을 막론하고 성애는 오직 <남성의> 것이며, …음 예민한 이슈니 이쯤 할까요. 아무튼 여전히 여성은 <내 성애를 부정하고 지우고 공격하지 말라>라고 소리높여 이야기해야 하는 시대라는 것입니다물론 넷상에서 이렇게 이야기할 수 있는 점은 다행입니다만.

 

 

 

한편 무성애자가 등장하는 백합 작품도 있답니다.(윤차이, <카데바 소셜 클럽>, 브릿지 완결) 19세기 런던, 무성애자 남장여자와 유성애자 여자가 연애하고 사건을 해결하는 이야기지요. 무성애자라고 모두 무연정자는 아니라고 알고 있고요… (백합에서) 수많은 유성애자”(+퀴어) 여성들의 욕망을 부정하지 말라는 것, 그리고 무성애자의 존재를 지우지 말라는 이야기는 함께 갈 수 있겠지요.

 

 

 

 

 

 

 

 

 

5. 한국 플랫폼 뿐 아니라, 장르 백합 향유자들이 <백합/GL>여성애를 가리키는 표현으로 자연스레 사용하는 사례들에 대하여

 

 

 

인터넷을 돌아다니다 보면, 이런 밈이 종종 보이는데요.

 

 

 

친구들아 날 믿어 이건 백합이야…! 전 재산을 이 재산에 투하한다…!”

 

허허벌판에서 <성애>착즙할 여-여 관계를 찾아 헤매이는 백합러의 모습”(a.k.a. 백합충그 워딩 안 좋아하지만요)

 

<여성들이 키스를 하거나, 같이 침대에 들어가면 이건 찐이다”(=찐 백합)라고 열광하는 사람들의 모습>

 

 

 

그건 백합 향유자들이 백합을 여성들의 감성적인 관계 뿐 아니라, -여 연애서사의 서브컬쳐 문법적 표현방식이라고 받아들이고 있는 것이 아닌가-라고 유추할 수 있는 단서가 됩니다.

 

 

 

이성간 로맨스도 로맨스 소설의 문법, 순정만화의 표현방식과 문법, 영화 드라마에서의 표현 양식이 다 다르지만 사람들은 그걸 특별히 구분하지 않고, 전부 <연애 이야기>라고 받아들이는 것처럼요.

 

 

 

한편 플랫폼에서만 <소비자 눈치를 보고> 해당 장르를 <백합>이라고 이름하는 것이 아니라(그런데 애초에 소비자 요구가 그런 것이라면, 장르 백합은 이미 여-여 연애서사의 이름으로 인식되고 있는 긍정적인 사례가 아닌가요?), 자신이 창작한 작품에 대해서도, 무료연재작에 대해서도 스스로 백합이라는 해쉬태그를 넣고 있답니다요즘 <백합 쓰지 마세요>라는 공격자들이 늘면서, 백합이라는 용어를 열심히 쓰는 사람들이 솔직히 더 늘었고요.

 

 

 

브릿G에서도 <로맨스> 카테고리에서 해쉬태그에 백합을 쓰는 사례, 주인공 이름에 백합을 쓰는 사례(물론 장르 백합), 그리고 아예 자기 작품의 장르 명을 <백합 판타지> 등으로 지칭하는 사례가 있답니다이 정도면 그냥 BL이 여성향에서 (서브컬쳐의) “남성 간 연애서사를 지칭하는 보편적인 용어가 되었듯이, 백합도 그런 것이겠지요

 

 

 

 

 

 

 

6. 순정이라는 단어, 그리고 여성향 테이스트

 

 

 

한편 순정이라는 단어를 통해서 백합과 레즈물(틀렸습니다)을 구분하는 시도를 하시던데, <순정>이라는 것의 정의가 무엇인지 묻고 싶네요

 

 

 

아시겠지만 한국에서는 <순정>만화에서는 특유의 서정적인 감정묘사와 함께, 성애적 관계도 당연하게 포함해 왔답니다전연령의 경우 단지 사건 전개를 위해 암시할 뿐, 구체적인 묘사는 하지 않았지만 말이에요.

 

 

 

그리고 저는 순정만화에서 느껴지는 테이스트가, 여성향 백합물과 BL에서도 느껴진다고 생각합니다. 네 그 서정성, 감정선 같은 것 말이지요그것은 한국 작품도, 일본 작품도 마찬가지입니다. 한국 작품들은 한국 순정만화 같은 분위기가, 그리고 일본 작품들은 일본 순정만화와 다르지도 않은 서정성이 느껴지더군요백합이건 BL이건 말이지요. 물론 성별차로 인해 관계성과 감정의 진득함은 다소 달라질 수밖에 없겠습니다만, 그게 바로 장르 자체의 특징이 되는 점이겠지요.

 

 

 

한편 순정만화-애니메이션은 현실의 이성 간 연애와 별달리 엄격하게 구분되지 않으며, 그 외의 어떤 매체이건 굳이 현실의 연애서사와 엄밀하게 구분되어야 한다는 이야기가 나오지 않는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네요. 물론 만화적 표현 등은 그 작품이 속한 장르적 특성이자 개성으로 받아들여집니다만, 유독 백합이 그 이야기가 자주 이야기되지요. 그러나 사실, 일본 순정만화조차도 한국인이 받아들이기에는 <특유의 서정성>이 있으며, 이질적인 느낌이 들지 않나요?

 

 

 

결국 우리가 받아들이는 <(일본) 장르 백합의 특징>은 결국 그 장르가 <일본>에 대해서 묘사하고 있기 때문에 그런 테이스트인 것이며, 한국인이 그것을 나름대로 수용하여 창작한 장르 백합 또한 <한국>의 무언가를 반영하기 때문에 테이스트가 다소 달라지는 것이 아닌가-라는 점을 말하고 싶습니다.

 

 

 

즉 저는 백합물과 관련한 일본 중심주의에 반대하는 쪽입니다 : 모든 장르는 각국 특유의 특색이 있으나, 그렇다고 그 장르들이 한 데 묶을 수 없는 것도 아닙니다. 한국과 일본, 그리고 기타 나라의 판타지는 다른 특성을 가졌지만, 그렇다고 <판타지>라고 한 데 묶을 수 없는 것도 아닙니다. 그리고 각국은 언제나 서로 문화적으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변화하지요.

 

 

 

 

 

 

7. 애니메이션 중심주의에 대한 반론

 

 

 

그럼 <애니메이션 장르만으로 장르 백합을 판단하고, 규정하는 것에 반대한다>는 점에 대해 구체적으로 이야기 해볼까요.

 

 

 

우선 일본 아니메도 라노베나 만화 원작으로 제작이 많이 된다고 알고 있으며, 제가 알고있는 백합 애니메이션들도 원작이 있는 작품이 많습니다. 일본 장르에 한정해 얘기한다 해도, 라노베-만화-애니메이션은 떼어놓고 이야기할 수 없는 관계라 생각합니다. 물론 게임도 마찬가지이고요. 서브컬쳐계 역시도 서로 떼어놓을 수 없는 영향을 주고받는 관계이기 때문이에요.

 

 

 

물론 저도 애니메이션은 아주 좋아하지만, 그것과 그건 별개죠. “움직이는 그림으로 제작된 작품만으로 그 장르를 논할 수 있다니, 그건 아주 한정적인 논의가 될 수밖에 없으며 자칫하다가는 장르 자체를 잘못 판단할 위험이 있지 않나요? 장님 코끼리 만지기죠. 거기다, 필연적으로 남성향 백합 위주로만 이야기가 흘러갈 수밖에 없고요. (애초에 여성향 작품은 기본적으로 저예산에애니화가 잘 되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뭐 전체 백합장르의 맥락을 알고, 그 안에서 애니메이션된 작품들의 경향성에 대해 이야기할 수야 있겠지요... 그렇다면 장르 백합에서 소위 <대박작>은 가려낼 수 있겠네요.

 

 

 

라노베와 만화 원작들은 무시하고 애니메이션화된 작품만 논하는 것은 마치, 한국에서 웹소 기반으로 창작된 웹툰을 이야기할 때, 원작을 무시하고 웹툰만 존중하는 것과 비슷한 처사라고 생각합니다. 즉 어딘가 이가 빠진 이야기가 될 수밖에 없는 것이죠. 그 씬 향유자끼리야 말이 통하겠습니다만, 다른 방식으로 소비하는 이들에게도 가 닿지 않는 이야기가 되는 것이고요.

 

 

 

 

 

8. 결론 : 넓은 의미의 백합, 그리고 개인의 취향과 장르 전체의 규정에 대하여

 

 

 

제 결론은 이것입니다. 백합 씬에는 다양한 취향의 사람들이 존재하며 덕질은 각자의 영역일 것이나, 자신의 취향을 장르 전체의 경향성이라고 단정지어선 안 될 것이라는 거요.

 

 

 

백합과 퀴어물은 서로 교차하고, 갈라지는 지점이 있다는 건 많은 사람들이 동의하지만(우선 현실적인퀴어-여성의 이야기와, 때로는 비현실적일 때도 있는서브컬쳐의 여성캐릭터의 이야기가 완전히 등치될 수는 없는 것이죠), 그것을 어떻게 표현하고 어떤 해석을 하고 결론을 내리느냐-가 관건인 것 같고요. (우선 레즈물은용어부터 사람들의 반발을 부릅니다, 다른 퀴어를 지우니까요, 언제나 지워져 온.)

 

 

 

<가장 넓은 의미의 백합> 이야기를 하자면, HL 쪽의 소비자/2차 팬덤에도 커플링을 원하지 않는논컾러, 남녀 콤비물에 관심있는 사람(커플이 아니어도 상관없으나 걍 보통은 커플로 나오니까 보는 이), 로맨스는 관심없지만 여주 이야기에 관심있는 사람, 그래서 HL을 소비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도 헤테로물을 소비하며 그 2차 팬덤에 속해있다고 볼 수 있겠지요. 논컾러는 아니지만, 원작 지상주의자라 원작에서 로맨스 기류가 없으면 로맨스 착즙을 못하는 사람도 속해있겠군요. 그런 사람들도 다 2차러겠지요.

 

 

 

백합도 마찬가지가 아닐까요. 물론 이것이 기본적으로 여성들의 이야기(많은 경우 퀴어 여성들의 이야기)이며, 그 안의 여성들의 이야기를 존중해야 하고 그것을 바라보는 자신의 욕망과 취향을 가장 우선시하는 것은 대상화가 아닌지 고민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최소한 <두 여성(퀴어)들의 이야기>를 당사자성을 갖고 소비하고 향유하는 이들의 목소리를 존중하고, 적반하장 격으로 자신의 미학에 취해 지우지는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백합은 <현실에도 존재하는> 여성들에 대해 묘사하는 장르지, 여성들을 그 장르 문법 속에 가두고 타자의 시선 속에 포획하는 장르가 아니라고 생각하니까요.

 

 

 

 

 

 

이상입니다. 하고싶은 이야기가 많아서 길어졌군요. 사실 더 다듬고 올리고 싶었는데 그럼 영원히 못 올릴 것 같아 그냥 올립니다완벽한 글은 아니나마, 백합에 대해서 이런 의문을 던지고 싶었답니다. 적어도 1년 넘게 백합 관련 논쟁을 지켜봐 온 입장으로서요

 

-추가 : 한편 키안 님의 글에 대해 다소 정제되지 못한 반응을 보인 점 사과드립니다. 공론장에서만 이야기를 하고 끝내는 게 가장 이상적이었겠지요. 서로 어떤 감정도 상하지 않고요.

그러나 여전히 백합과 레즈물의 구분은 지극히 무례한 구분이라는 생각은 변하지 않았답니다. 우선 여성 퀴어 당사자들에게 "레즈물"이라는 단어가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포함해서요.^^ (네 바이 팬 기타등등을 <당연하게> 지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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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 일본의 백합 만화 시장에 대해 이것저것 nanmi 2019.09.20 321
36 저 역시 답변에 대한 반박입니다. yora 2019.09.18 238
35 이윽고 장르 이해도가 망하게 된다 – 답변에 답변 맞습니다 도피오 2019.09.18 349
34 <이윽고 네가 된다> 리뷰에 달린 도피오님과 yora님의 댓글에 대한 답변 키안 2019.09.18 267
33 허공 말뚝이 3권 평 청아비 2019.09.17 97
32 <이윽고 네가 된다> 리뷰 - 백합과 레즈 사이 [2] 키안 2019.09.17 440
31 증명된 사실 평 청아비 2019.09.03 52
30 지극히 사적인 초능력 평 청아비 2019.09.03 84
29 구미베어 살인사건 평 청아비 2019.07.17 106
28 붉은 칼 평 청아비 2019.07.12 123
27 튜링의 생각 평 청아비 2019.06.24 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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