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미나가 진행되고 있다 <사진 = 뉴스페이퍼>

[뉴스페이퍼 = 김상훈 기자] 한국문예창작학회가 주최하고 기형도문학관이 후원한 한국문예창작학회 제34회 정기학술세미나가 4월 21일 광명시에 위치한 기형도문학관에서 개최됐다. 이번 정기학술세미나의 대주제는 “문학, 현실을 말하다 – 장르와 경계를 넘어”였으며, 기형도 시에 대한 발표는 물론 영화, 해외문학 등 타 장르에 관한 발표도 이뤄졌다. 

인사말을 전하는 이승하 시인 <사진 = 뉴스페이퍼>

행사에 앞서 이승하 한국문예창작학회장은 신춘문예 최종심에서 기형도 시인과 겨루었던 일화를 이야기하며 인사말을 전했다. 이승하 회장은 “기형도 기자로부터 전화가 와 청탁에 대해 이야기하다가 신춘문예 최종에서 겨뤘을 때의 일을 이야기했던 기억이 난다. 그런 인연을 갖고 있는 제가 기형도 시인을 기리는 문학관에서 세미나를 열게 된 것을 뜻 깊게 생각한다.”며 세미나에 자리한 발표자, 토론자, 행사를 마련해준 이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발표 중인 강연호 교수 <사진 = 뉴스페이퍼>

세미나의 기조발제를 맡은 강연호 원광대 교수는 “학술세미나의 부제가 ‘장르와 경계를 넘어’인데, 경계에서 기형도 시인이 어떤 문학세계를 보여줬고 어떤 삶을 살았는지 짚어보는 것도 의미가 있으리라 생각한다. 제가 생각하는 경계인의 개념과 학술세미나의 경계의 개념이 딱 맞지는 않겠지만 같은 용어가 나와 반갑다.”며 “기형도 시에 나타난 경계인의 세계 인식”이라는 제목으로 발표를 시작했다. 

강연호 교수는 먼저 기형도 시를 읽는데 장애가 되는 ‘기형도 신화’, ‘시인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부터 벗어나야 한다고 강조한다. 강 교수는 “기형도 신화가 낳은, 혹은 신화의 지속으로 인해 굳어진, 오독의 시읽기가 관행처럼 문학적 아비투스로 굳어진다면, 기형도 시의 다시 읽기는 무의미하다.”며 “작품에 의거한 내재적 접근과 섬세한 분석이 요구될 뿐”이라고 강조했다.  

강연호 교수가 주목한 기형도 시인의 작품은 유고시집 “입 속의 검은 잎”의 표제작 ‘입 속의 검은 잎’이다. 시집의 제목이자 표제작이기도 한 ‘입 속의 검은 잎’은 유고시집의 해설을 쓴 김현 평론가가 정한 제목으로, 기형도 시인이 생전에 정한 제목과는 다르다고 알려져 있다. 강 교수는 “(이 작품이) 기형도의 삶과 문학에 대한 논의가 한참 집중되는 동안에 뜻밖에도 별 주목을 받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입 속의 검은 잎’은 기형도의 시세계를 관통하는 작품으로 충분히 읽을 수 있다.”고 강조하고, 나아가 “기형도를 논하기 위해서는 당연히 이 작품부터 읽기 시작해야 한다.”고 밝혔다. 

강 교수는 ‘입 속의 검은 잎’이 ‘경계에서 두려워하는 자’의 초상을 여실히 보여준다고 해석한다. “기형도의 시에서 침묵이란 시어가 차지하는 비중은 대단히 높”으며 “‘입 속의 검은 잎’은 침묵해서는 안 될 때 침묵하는 것에 대한 자의식과 자책감이 드러나 있다.”는 것이다. 

택시 운전사는 어두운 창 밖으로 고개를 내밀어 
이따금 고함을 친다, 그때마다 새들이 날아간다 
이곳은 처음 지나는 벌판과 황혼, 
나는 한번도 만난 적 없는 그를 생각한다 

 

그 일이 터졌을 때 나는 먼 지방에 있었다 
먼지의 방에서 책을 읽고 있었다 
문을 열면 벌판에는 안개가 자욱했다 
그 해 여름 땅바닥은 책과 검은 잎들을 질질 끌고 다녔다 
접힌 옷가지를 펼칠 때마다 흰 연기가 튀어나왔다 
침묵은 하인에게 어울린다고 그는 썼다 
나는 그의 얼굴을 한 번 본 적이 있다 
신문에서였는데 고개를 조금 숙이고 있었다 
그리고 그 일이 터졌다, 얼마 후 그가 죽었다 

 

그의 장례식은 거센 비바람으로 온통 번들거렸다 
죽은 그를 실은 차는 참을 수 없이 느릿느릿 나아갔다 
사람들은 장례식 행렬에 악착같이 매달렸고 
백색의 차량 가득 검은 잎들은 나부꼈다 
나의 혀는 천천히 굳어갔다, 그의 어린 아들은 
잎들의 포위를 견디다 못해 울음을 터뜨렸다 
그 해 여름 많은 사람들이 무더기로 없어졌고 
놀란 자의 침묵 앞에 불쑥불쑥 나타났다 
망자의 혀가 거리에 흘러 넘쳤다 
택시운전사는 이따금 뒤를 돌아다본다 
나는 저 운전사를 믿지 못한다, 공포에 질려 
나는 더듬거린다, 그는 죽은 사람이다 
그 때문에 얼마나 많은 장례식들이 숨죽여야 했던가 
그렇다면 그는 누구인가, 내가 가는 곳은 어디인가 
나는 더 이상 대답하지 않으면 안 된다, 어디서 
그 일이 터질지 아무도 모른다, 어디든지 
가까운 지방으로 나는 가야 하는 것이다 
이곳은 처음 지나는 벌판과 황혼, 
내 입 속에 악착같이 매달린 검은 잎이 나는 두렵다 

 

- 기형도, ‘입 속의 검은 잎’ 전문

강연호 교수는 “침묵해서는 안 될 때 침묵하는 것은 ‘하인에게나 어울린다’고 하는 상황인데, 화자는 여기서 공포를 느낀다. 한편으로는 ‘더 이상 대답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인지하고, 어디든지 ‘가까운 지방’으로 가야 한다고 당위적으로 진술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입 속에 악착같이 매달린 검은 잎이 나는 두렵다’ 지금 택시 안이고 택시 운전사는 ‘나’를 싣고 어디론가 가고 있다. ‘나’는 ‘저 운전사를 믿지 못한다’ 그리고 입 속에 검은 잎은 ‘악착같이’ 매달려 있다. ‘나’는 침묵할 것인가. 아니면 무어라 발언하여 침묵을 깨뜨릴 것인가. 그 경계에 있다.”고 해석했다. 

이어 “기형도의 시들은 경계인의 표상으로 읽을 수 있다. 가령 현실과 이상, 이념과 행동, 희망과 절망, 밀실과 광장 등의 경계에서 서성거리는 태도를 보여주는, 경계인의 세계 인식이 기형도 시를 지탱한다.”고 밝혔다. ‘대학시절’, ‘정거장에서의 충고’, ‘오후 4시의 희망’ 등에서도 비슷한 정황이 드러난다는 것이다.  

강 교수는 이밖에도 기형도 시에서 드러난 “두려움의 연원과 귀결”을 살펴보기도 했으며, 마무리를 대신하여 기형도 시인에 대한 대외적 논의들에 대해 이야기하기도 했다. “기형도의 문학을 어느 한 진영으로 귀속시키려는 관행”에 대해서는 “탁월한 시인들은 완강한 듯 싶은 리얼리즘과 모더니즘의 편가름과 경계를 가뿐하게 무력화시킨다. 기형도의 작품들 역시 그러한 면모가 있다.”고 밝혔으며, “미학적 완성도의 문제는 겨우 문단 활동 5년의 시인에게 천재성을 요구하는 격이므로 그 자체로 우물에서 숭늉 찾는 격이고, 적극적 응전의 모색이 부족했다는 지적은 비판을 위한 비판으로 읽힌다.”고 밝혔다. 

이날 세미나에는 김지훈(단국대)이 “분석심리학적 관점에서 기형도 시 읽기 방법 연구” 발표를 통해 기형도의 시를 읽는 또 다른 방법을 제시했으며, ‘장르와 경계를 넘어’라는 부제에 걸맞은 발표들도 이어졌다. 고봉준(경희대)은 “문학, 언어, 형식 - ‘문학’과 ‘현실’의 관계에 대한 시론”을 발표했으며, 권경미(부산외대)는 영화잡지 “키노”를 통해 계보학적 영화 지식의 탄생과 지식 담론의 한계를 다뤘으며, 이승우(대구한의대)는 아시아계 미국문학 작가의 작품을 통해 ‘트랜스내셔널리즘’이 어떻게 드러났는지를 소개했다. 이혜경(원광대)는 영화화된 소설 “살인자의 기억법”을 중심으로 ‘기억과 망각’, ‘소설과 영화의 상관관계’ 등을 다뤘다. 

기향도 관장의 큐레이션으로 학회 관계자들이 전시실을 둘러보고 있다 <사진 = 뉴스페이퍼>

이날 세미나는 오후 1시부터 오후 6시까지 진행됐으며, 세미나 도중 기형도문학관 전시실을 둘러보는 시간도 마련됐다. 한편 한국문예창작학회는 대학과 대학원 문예창작 관련학과의 전, 현직 전임교수, 겸임(초빙)교수, 강사, 대학원 재학 이상자 및 문예창작인들이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연 2회 학술지를 발간하고 정기 학술 세미나와 해외 문학심포지엄 등 학술 발표회를 개최하며 학문적 교류와 토론의 장을 넓혀오고 있다.

 

출처 : http://www.news-paper.co.kr/news/articleView.html?idxno=262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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