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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5일 서울 서대문구 이화여대 근처에서 만난 김보영 작가는 “제 소설이 미국 메이저 출판사에 처음 진출했다고 하는데 한국 메이저 출판사에 진출하는 SF 작가도 정말 적다”며 “국내 SF 작가가 조명을 못 받는 건 출판·문학계의 편견 때문”이라고 말했다. 김영민 기자    

 

2019.06.30 19:49 입력

 

혹자는 한국 SF가 부흥기를 맞았다고도 하지만, 오랫동안 한국은 ‘SF의 불모지’에 가까웠다. 글을 발표할 곳도, 책을 낼 출판사도 드문 척박한 조건 속에서도 꾸준히 창작을 하며 SF소설의 명맥을 이어온 작가들이 있다. 김보영(44)도 그중 하나다. 김보영은 2004년 제1회 과학기술창작문예에 ‘촉각의 경험’이 중편 부문에 당선돼 본격적 창작 활동을 시작했다. 그의 재능을 알아본 봉준호 감독의 눈에 띄어 영화 <설국열차>의 시나리오 자문을 맡기도 했다.

 

김보영은 지금 한국 SF의 세계 진출의 맨 앞자리에 서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미국 SF잡지 ‘클락스월드 매거진’에 2015년 한국 작가 최초로 단편 ‘진화신화’를 게재했으며, 최근엔 미국 대형 출판사인 하퍼콜린스의 임프린트 하퍼보이저에 <당신을 기다리고 있어> <저 이승의 선지자> <당신을 기다리고 있어-속편>(가제)에 대한 영어 판권이 팔렸다. ‘가장 SF다운 SF를 쓰는 작가’로 알려진 김보영을 지난 25일 서울 서대문구 이화여대 근처 카페에서 만났다. 강원도 평창에 살고 있는 그는 강연을 위해 서울을 찾았다.

 

 

“SF에는 경이감이 중요한 요소예요. 지금까지 경험하지 못했던 새로운 체험을 추구하는 장르죠. 일종의 오리엔탈리즘이 작용하는 동양적 SF는 서구에서 결코 나올 수 없어요. 휴고상을 수상한 중국 작가 류츠신의 <삼체>, 하우징팡의 ‘접는 도시’ 같은 작품은 중국의 문화와 역사를 강하게 반영한 소설입니다. 휴고상 후보에 3년 연속 오른 재미작가 김윤하의 작품 <나인폭스 갬빗>도 구미호 전설을 소재로 한 것이에요.”

 

그의 이름을 해외에 처음으로 알린 ‘진화신화’는 <삼국사기>의 한 구절에서 비롯한 작품으로, 한국의 신화적 상상력과 진화를 결합해 만든 수작으로 꼽힌다. 미국·중국 등에 소개되며 뜨거운 반응을 얻었다. <저 이승의 선지자>는 저승의 ‘물리적 형태’를 논리적으로 상상해 쓴 소설이다. <당신을 기다리고 있어>는 SF 로맨스로, 김보영의 팬인 독자가 프러포즈 때 여자친구에게 읽어줄 단편을 청탁해 쓴 소설이다. 성간비행으로 결혼식을 올리기로 한 남녀가 어긋나면서 수백년이 흐르는 동안의 이야기를 슬프고도 아름답게 그렸다.

 

 

어린 시절부터 SF와 환상소설에 빠졌던 김보영은 게임 시나리오 기획자로 일했다. “내가 쓰는 소설은 만화나 게임 시나리오가 아니면 출간할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의 말대로 국내에 한국 SF작가를 위한 자리는 없었다. 그는 해외 SF 작품은 출판하면서 국내 SF는 출판하지 않는 현실에 대해 “성소수자라, 여자라, 흑인이라 책을 못 내겠다는 말과 다를 것이 없이 들린다”면서 “지난 10년간 내 밥벌이와 내 작품을 지켜준 곳은 문학계가 아니라 과학계였다”고 강하게 비판하기도 했다. 그의 첫 책이 나오는 데도 6년이 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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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 작가 김보영. 김영민 기자

 

김보영의 반짝이는 재능과 가능성을 알아본 건 봉준호 감독이었다. 김보영은 <설국열차> 엔딩크레디트에 ‘과학자문’으로 이름을 올렸다. 배명훈·박애진 작가와의 공동단편집 <누군가를 만났어>(2006)를 본 봉준호 감독이 직접 전화를 해왔다. 봉 감독이 <설국열차> 책을 보여주면서 “하고 싶은 걸 다 해보라”고 했다. 1년 동안 시나리오를 썼지만 최종 시나리오로는 채택되지 않았다.

 

“신인 작가를 단편 하나 보고 고용하고, 네가 뭘 하든 내가 얻어낼 수 있다는 게 보통 사람이 할 수 있는 생각은 아닌 것 같아요. 실제 바퀴벌레를 먹는 설정 같은 아이디어 몇 개를 가져갔어요. 열차가 회전할 때 꼬리칸이 앞 칸을 향해 총을 쏘는 장면도요. 같은 궤도를 반복해서 돈다면 어떤 장소는 매번 같은 시간에 지나가는 장소가 될 것이고, 회전할 때 꼬리칸과 앞 칸이 만날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봉 감독은 그의 첫 장편소설 <7인의 집행관>에 “아름답고 강렬하다”고 추천사를 쓰기도 했다.

 

최근 김보영은 페미니즘적 문제의식을 담은 SF소설을 선보이고 있다. ‘빨간 두건 아가씨’는 여성혐오에 대해 다뤘으며, <천국보다 성스러운>은 ‘신’이 절대주의자란 설정으로 종교와 젠더, 페미니즘에 관한 이야기를 담았다.

 

“2016년 김자연 성우가 페미니즘적 메시지가 새겨진 티셔츠를 입었다는 이유로 넥슨이 김자연씨가 녹음한 걸 삭제하고 다른 목소리로 대체한 사건이 있었어요. 한 개인에 대한 ‘명예살인’인데, 젠더 문제일 뿐 아니라 창작자에 대한 혐오, 노동자에 대한 혐오가 깔려 있는 사건이었다고 생각해요. 그때 ‘여성문제’가 먼 세계의 일이 아니라 나의 현실을 위협할 수 있는 문제라는 걸 알게 됐어요. 이후 쓴 소설들은 대부분 그 사건에 대한 이야기인 것 같아요.”

 

이전에도 그는 정상과 비정상, 장애와 비장애의 경계선을 허물고 뒤바꾸는 이야기를 선보였다. 데뷔작 ‘촉각의 경험’은 오로지 촉각밖에 경험하지 못하는 클론이 감각을 욕망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 ‘다섯번째 감각’은 청각이 금지되고 퇴화한 사회에서 청각을 되찾고자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렸다.

 

“결국 내 얘기를 하고 있어요. 세상의 많은 소수자성이 나에게 있으니까요. 여성이고, 장애인의 가족이고, 좋은 배경을 갖고 있지 못하고. 엘리트 위주의 사회에서 내가 생존하려면 소수자성에 대한 편견을 없애야만 하니까 그런 소설을 쓰는 게 당연하지 않을까요.”

 

김보영의 오빠는 발달장애인으로, 그와 함께 평창에 살고 있다. 그는 “중학교 때까지 오빠에게 장애가 있다는 걸 몰랐다. 미약한 장애였는데 부모님이 인정하지 않아 어떤 행동이 사회에서 이상한지를 그때까진 잘 몰랐다”며 “내 많은 이야기가 거기에서 출발했다. 장애란 인식의 문제라는 생각도 한다”고 말했다.

 

그는 현재 카카오페이지에 <사바삼사라>라는 웹소설을 연재하고 있다. 주인공이 모두 장애인인 소설로, 장애가 있는 사람들이 초능력을 갖게 된다는 불교사상에 기반한 소설이다. 그는 “장애란 일상적이고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독자들이 장애의 일상성을 느끼게 된다면 좋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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