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 연재) 블랙스타 7회 장혜란

시스앤 2019.11.26 12:35 조회 수 : 62

해준이 그러거나말거나 영민은 언제나처럼 싱글거리며 커피 한잔 사주세요,하며 엉겼다. 돈 없냐? 설마요. 형사님이 사주시는 거 먹고 싶어서 그러죠. 미친놈. 해준이 무시하고 가려는데 영민이 귓가에 다가와 속삭였다. 그냥 가시면 후회하실텐데요. 해준이 다시 한번 영민을 돌아보더니 아무래도 괜히 그러는 것 같지는 않다 싶었는지, 따라오라는 손짓을 해보였다.

해준이 자판기에서 커피를 뽑아주니 영민이 절도있게 땡규베리감사합니다, 하고 받아들여서는 천천히 한 모금 마시더니 그것을 입안에서 오랫동안 음미했다. 성질 급한 해준을 놀리려고 작정이라도 한 사람 같았다. 그래서 약은 올랐으나 영민의 장난끼를 만족시켜주고 싶지 않아 해준은 말없이 기다렸다. 하지만 영민이 그녀 옆에 바짝 붙어 앉아 커피 한잔을 다 그런 식으로 마시려 들자 마침내 해준은 이성을 잃고 말았다.

입에 쏟아붓기 전에 본론부터 까지.”

영민이 싱글거리며 그녀의 귓가로 다가가자 해준이 영민의 얼굴을 멀찍이 밀어내며 말했다.

아직 귀 안 먹었어.”

큰소리로 떠들 얘기는 아닌 것 같아서요. 개인플레이하는 거 알면 팀에서 별로 안 좋아하실텐데요. 노팀장님도 그렇고.”

해준은 깜짝 놀랐다. 준호가 그런 것을 떠벌릴 성격이 아님을 잘 알기에 더 의아했지만 일단 그녀는 딱 잡아뗐다.

무슨 헛소리야?”

에이, 저한테 이러시면 안될텐데요.”

영민은 어느새 휴대폰을 꺼내 사진을 띄우더니 순간적으로 슬쩍 해준에게 보여주었다. 해준은 눈이 둥그래질 수밖에 없었다. 그것은 쇄골 아래쪽인 듯 보이는 곳에 있는 선명한 별무늬 상처였다. 해준이 확보한 사진은 팔뚝 안쪽으로 보이는 부분이었으므로, 그것은 다른 아이의 것이 분명했다. 해준은 저도 모르게 전화기로 손을 뻗었다.

너 이거 어디서 났어?”

영민이 얄밉게도 잽싸게 휴대폰을 주머니 안쪽에 집어넣었다.

알만한 분이 왜 이러십니까, 세상에 공짜가 어딨어요?”

해준이 팔짱을 껴고 영민을 지그시 노려봤다. 협상에 응하겠다는 뜻이었다.

술 한번 먹죠.”

, 술도 못 마시는 게, 맨날 먹는 술 타령은. 알았으니까, 빨리 내놔.”

정말이죠?”

발렌타인 짝으로 사줄테니까 먹고 죽든지 말든지 그건 니가 알아서하고 그거나 빨리 이리 내.”

누가 술 사랍니까? 내가 여자한테 술 얻어먹고 다닐 놈으로 보여요? 같이 마시자구요

그제야 해준은, 이게 지금 뭐하는 수작인가 하는 뚱한 표정을 떠올렸다.

그래서, 니가 사시겠다고?”

당연하죠. 대신 장소는 제가 정합니다.”

지금 술 얻어먹어달라는 게 협상 내용이라는 거야?”

. 대신 둘이서만.”

나 포장마차에서도 니 한달 월급 정도는 먹을 수 있어. 알지?”

우리 서에서 그거 모르는 사람도 있습니까? ?”

그래, 니 맘대로 하시고 그거나 빨리 내나봐. 어디서 난 거야?”

영민이 해준에게 바짝 얼굴을 들이밀고 말했다.

약속했다?”

해준이 기분상한 듯 영민을 노려보았다. 해준은 윗사람들을 상대로도 중간중간 슬쩍 말을 놓는, 그런 스타일의 버릇을 가진 후배들을 몹시 싫어했다. 해준이 영민을 시덥지 않게 보는 것도 영민의 그런 말버릇 덕이 컸다. 영민의 입장에서는 전혀 악의가 없다는 것을 그녀도 잘 알았지만, 그래도 그게 거슬리는 걸 어쩔 수가 없었다. 눈치빠른 영민도 그 사실을 모를 리 없었다. 해준의 사나운 눈길에 영민은 잠시 움찔했다.

약속했습니다?”

난 말 바꾸는 놈들 제일 싫어해. 그거 진짜 어디서 난 거야? 내가 그거 찾는 거 어떻게 알았어?”

하여튼 제일 싫은 건 또 왜 그렇게 많은지, 부정적이야, 사람이. 쯧쯧.”

영민이 휴대폰을 건네주자 해준은 집어삼킬 듯 화면을 살폈다. 그러나 화면에서 특별한 게 나올 것은 그다지 없어보였다.

몇 장 더 있습니다. 한번 보세요.”

해준은 사진들을 살펴보았다.

다들 중부고등학교 여학생들인데, 인터넷 비밀 자해 모임 회원들이랍니다. 여러 가지 사진들이 있는데 그중 별모양 흔적이 두 개죠. 각기 다른 사람으로 추정되고 그중 한명은 신원도 파악했습니다. 만일 별모양 상처를 가진 아이가 정말로 세 명 뿐이고, 형사님이 가진 것과 겹치지 않는다면, 다 찾은 거고, 그게 아닐 수도 있겠죠.”

신원을 파악했다고? 누구야?”

윤음율이라는 중부고등학교 2학년 여학생인데 아버지가 로펌대표인데다 본인도 전교에서 일이등을 다투는 수재랍니다. 이 쇄골 사진의 주인공이죠.”

어떻게 알았어? 확실한 거야?”

뭐 방법은 영업비밀이지만, 확실합니다. 모든 해답은 다 사람에게 있는 거죠. 우리나라에서 인맥 갖고 안 되는 일이 있나요.”

해준이 묘한 표정으로 영민을 바라보더니 심각한 표정으로 물었다.

너 설마 애들도 건드리고 다니는 건 아니지?”

에이, 진짜 사람을 뭘로 보고.”

영민이 진저리를 치며 질색을 했다.

겉으로는 충분히 그래 보여. 속은 모르겠다만.”

이런 경우를 두고 방귀낀 놈 옆에 있다 벼락 맞는다고 하는 건가? 정작 어린애 좋아하는 사람한테는 맥도 못 추면서 애매한 나만 못잡아서 난리들이지 다들, 참나.”

해준이 인상을 썼다.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건지는 모르겠다만, 그런 속담은 없어.”

영민이 잠시 생각하는 눈치를 보였다.

그런 말 없나?”

무식한 놈.”

 

수향은 준호와 통화를 한 후 식사를 했으나, 밥을 먹는 내내 이상하게 그 사이트가 마음에 걸렸다. 그게 정말 자신의 책과 연관이 있는 걸까. 있다해도 그저 그녀의 책을 읽은 독자인 정도겠지만, 만일 그렇다면 그것은 수향 자신에게도 중요한 문제가 되는 것만 같은 느낌이었다.

그녀는 재빨리 식사를 마치고 다시 노트북을 켜서 조금 전의 그 사이트에 접속했다. “the river of no return’이라... 아주 나 우울해요하고 이마에 딱 써붙여놓은 사이트였다. 여기 불쌍한 영혼 하나 또 있네. 수향은 잠시 그 정서에 공감했다. 그녀 자신 또한 십대 시절 우울증이 심했던 것이다. 지금 겪고 있는 공황장애도 일종의 우울증적인 증상이라는 게 의사의 소견이었다.

수향은 찬찬히 사이트를 둘러보기 시작했다. 육체의 악마, 거리의 여자. 클림트 전시회를 다녀오다. 함께 죽는 자. 글 제목들이 묘했다. 글쓴이는 모두 미미라는 아이디를 사용하고 있는 사람이었는데, 이 블로그의 운영자인 모양이었다. 수향은 아무거나 하나씩 클릭해 조심스럽게 읽기 시작했다.

 

-사람이 사랑을 찾는 것은 나와 똑같은 것을 세상 속에서 찾으려는 인간 본성의 신비함 때문이라고 했다. 인간의 이성이 알아차리지 못하는 것을 마음이 알아차린다면, 그렇다면, 마음은 이성보다 분별력이 있는 거라고도 말했다. 그게 뭐야, 그저 마음이 이끄는대로 행동하면 그뿐이라는 건가? 아니다 그런게 아니다. 우리가 무시하고 있는 인간 본성, 마음, 감정 따위가 사실은 얼마나 인간 삶의 정밀한 지도가 될 수 있음을 우리가 간과하고 있다는 것이 아닐까, 어떠한 강한 이성과 논리보다 더. 인간이 인간인 이상, 인간성이 결국은 우리를 안내한다. 마음이란 우리 생각만큼 제멋대로인 게 아닐지도 모른다. 마음을 버릇 잘못 들인 강아지처럼 내버려두는 우리들의 과실이 그런 오해를 빚게 만든 건 아닐까.

 

-살인자가 예수를 자칭한다. 이 시대에 예술을 하려면 소설가가 되거나 살인자가 되어야한다고 했나. 왜 사람들은 살인에 그렇게 큰 의미를 부여할까. 사람이 죽게 되는 것, 그것이 타인의 의지로 이루어지는 것. 그 단순함에 신을 느끼는 인간의 어리석음. 바보들이다, 모두.

나는 죽는 게 무섭다. 사실은 다들 그런 게 아닐까. 사람들의 미혹과 어리석음을 파고들면 종교를 만들 수 있다고 했던가. 김영하에게 죽음이 종교라면 그래도 그게 그나마 제일 덜 어리석은 바보짓일 것이다.

 

수향은 어둡지만 내밀한 통찰과 철학적 사고가 돋보이는 글들을 보며 다소 놀랐다. 게다가 이 사이트에는 다른 사이트들과 달리 자해에 대한 어떤 직접적인 언급이 없었다. 아마도 다음 글 정도가 어쩌면 연관성이 있지 않을까하는 암시를 주는 글의 전부였다.

 

-사람은 항상 삶과 죽음의 경계에 있다고 한다. 그래서 항상 불안하다. 살아있지만 죽음이 언제나 곁에 있다. 그래서 자꾸만 내가 살아있는 걸 확인하고 싶어진다. 내가 살아있음을 느낄 수 있는 건 뭘까. 주변을 둘러싼 것들이 모두 무의미하고, 아무것도 즐겁지 않고, 그 어느것도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잊을 수 없게 한다면, 도대체 무엇이 나를 살아있게 해줄 수 있을까. 그 답은 정말 고통 뿐인 걸까. 고통만이 나를 살아있게 해주는 걸까. 견딜 수 없이 아픈 그 순간만큼은 나는 모든 것을 잊고 오로지 살아있는 나 자신만을 오롯이 느끼게 된다.

 

-나에겐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는 말은 정말로 옳은 걸까, 아니면 그저 자극적인 캐치프레이즈에 지나지 않는 걸까? 과연 내가 나에게 스스로 상처를 입힐 권리가 있을까? 아니 바꿔 묻고 싶다. 나에게는 정말로 내게 상처를 입힐 권리가 없을까? ? 내가 나에 대한 모든 권리를 주장할 수 없다면, 도대체 진정으로 내 손에 쥐어진 권리란 뭐가 있을까?

보색대비로 색상이 더 선명해지듯, 삶은 죽음 속에서만 선명하게 빛난다. 내 삶과 죽음을 모두 내 손 안에 두지 않고서 어떻게 내 삶의 모든 순간이 선명하게 빛날 수 있을까.

이따금 나는 뫼르소가 되고 싶다. 온통 회색뿐인 세상. 그리고 그 속을 살고 있는 나, 다른 모든 친구들, 불쌍한 우리들을 위해.

 

수향은 싸이트에 있는 모든 글들을 읽어내려가다 어느 순간 머리카락이 쭈뼛 서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이게 뭐지? 단순히 암울하고 반사회적인 내용 때문만은 아니었다. 뭔가 모르게 낯설지 않은 이 느낌들은 뭘까. 인용표시도 없이 중구난방으로 뒤섞인 유명한 책들에서 따온 인용구들 때문인가. 하지만 그런 거야 늘 보아오는 것들인데, 새삼 왜 이런 느낌이 들까. 수향은 순간 무엇인가가 머릿속을 스쳐지나가는 것을 느꼈다.

 

-로만 폴란스키는 소녀강간으로 유죄선고를 받았다고 한다. 물론 피해자들을 생각하면 결단코 용납할 수 없는 일이기는 하지만, 난 적어도 그의 영화 소녀를 보고 있으면 그이 형을 한달쯤은 줄여주고 싶은 동정심이 생긴다. 그는 적어도 진심으로 소녀들을 사랑했으니까. 그가 사랑한 게 인격체인 소녀가 아니라, 추상적인 존재인 소녀들이었다는 게 쌍방간의 큰 불행이긴 하지만. 어쨌든 로만 폴란스키는 소녀들을 사랑했음이 틀림없다. 아니 사랑하지 않을 수 없었으리라. 그렇게나 불안하고 흔들리는 내면, 충동과 욕망이 뒤엉켜 눈앞이 시커매지는 듯한 공포를 가진 존재를, 그는 사랑하지 않을 수 없었다. 왜냐하면, 그건 그 자신의 모습이니까.

 

초인종 소리에 수향이 문을 열자 준호가 서 있었다.

무슨 일이야?“

수향이 말없이 손짓으로 준호를 좌탁 쪽으로 데려갔다. 거기에는 노트북이 올려져 있었고, 준호가 자리에 앉아 노트북을 들여다보니 거기에는 아까 낮에 수향에게 가르쳐주었던 사이트가 떠 있었다.

? 뭐 생각난 거라도 있어?“

수향이 묵묵히 준호를 바라보기만 했다.

? 뭔데?“

”...그러니까 확실한 건 아니고 그냥 아주, 아주 희미한 느낌 같은 건데요. 아닐지도 모르니까 너무 귀담아 듣지는 마시고요.“

무슨 서론이 그렇게 길어?“

그게, 그 사람 책꽂이를 보면, 그 사람의 취향이 보이잖아요. 글도 당연히 마찬가지구요. 아까 형사님한테 전화받고 나서 저도 호기심이 생겨서 사이트를 좀 둘러봤는데요. 뭔가 읽을수록 느낌이 묘해서요. 혹시 그때 저한테 보여주셨던 예지네 팀장님 댁 현장사진 아직 갖고 계세요?“

준호가 휴대폰을 꺼내며, 있지만, 그건 왜? 하고 물으며 수향이 말한 사진을 찾아주었다. 준호의 전화기를 받아든 수향은 열심히 무엇인가를 찾는 듯하더니, 마침내 원하는 것을 찾아낸 듯 손길을 멈추었다. 그리고 한참동안 그 사진을 들여다보았다. 준호는 답답했지만 수향이 뭔가 생각을 계속하는 듯보여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마침내 수향이 결심한 듯 입을 열었다. 그리고 준호 쪽으로 와 준호의 곁에 앉았다. 준호는 잠시 지난번이 생각나 당황했으나 수향의 분위기는 심각했다. 수향은 글을 하나씩 클릭해가며 준호에게 설명하기 시작했다.

이 돌아오지 않는 강 사이트의 주인은 일단 김영하빠인데다, 나파권을 좋아해요. 그리고 이 육체의 악마라는 건 레이몽 라디게의 유명한 소설책 제목인데, 여기 좀 보세요. 아라 책장에 이 책이 꽂혀 있어요. ‘뫼르소이방인의 주인공인데, 이 책도 여기 있죠. ‘슬픔이여, 안녕도 있어요. 그리고 이 돌아오지 않는 강이라는 제목, 마릴린 먼로가 부른 노랜데요. 사이트에 마릴린 먼로에 관한 글도 꽤 있어요. 이것 좀 보세요.“

수향은 스타와 블랙스타라는 글을 클릭했다.

 

-마릴린 먼로의 이미지는 왜 그렇게 강렬할까. 단순히 시대를 뛰어넘는 아름다움 때문일까. 아니면 훗날 그녀가 생각보다 고귀한 내면을 가졌었다는 증거가 속속 드러나서 그런 걸까. 내가 보기에는 그녀는 스타이자 블랙스타였다. 그래서 아마도 그녀가 불멸의 신이 된 게 아닐까.

 

아마도 마릴린 먼로를 좋아하는 것 같은데, 이것 좀 보세요.”

수향이 휴대폰에 띄워진 아라의 책장 한 구석을 가리켰다. ’할리우드 클래식 코미디‘, ’영화 7년만의 외출을 통해 본 빌리 와일더‘, ’마릴린 먼로, 노마 진따위의 책들이 한데 꽂혀 있었다.

이 책들을 연결하는 키워드는 마릴린 먼로에요. 빌리 와일더는 고전 할리우드 시대를 대표하는 감독이고, 그 감독의 7년 만의 외출이나 뜨거운 것이 좋아 따위는 또한 마릴린 먼로의 대표작이기도 하죠. 여기 영화 디브이디들 좀 보세요. ’소녀하고 차이나타운이 있죠. 로만 폴란스키라는 감독의 영환데 감상문이 올라와 있어요. 홍상수도 있고요. 여기 클림트 화집이나, 신고전주의 화가 화집도 그렇고. 아무튼 이 사이트에서 언급하고 있는 책들, 영화들, 거의 이 책꽂이에서 보여요. 다들 유명한 책이고 콘텐츠들이니까, 우연일 수도 있고, 제가 최근에 아라의 책장을 봐서 그게 강렬한 이미지로 남아서 그럴 수도 있는데, 느낌이 너무 묘해요. 마치 한 사람의 취향을 보는 것처럼 이 책꽂이랑, 사이트 느낌이 너무 비슷해요.”

수향이 핸드폰과 노트북을 나란히 놓고 말했다. 그제서야 준호는 사안의 중대함을 알아차렸다.

그러니까 이 사이트의 주인 그러니까, 미미가 아라일 수도 있다?”

아주 아주 아주 쪼끔 어쩌면요.”

어떻게 확인해볼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수향이 호수와 바다라는 글을 클릭했다.

이 글 아무리 봐도, ’호수소년과 바다소녀에 관한 이야기가 맞는 것 같아요. 다른 글들도 그저 읽고나서 안용인지, 제 생각인지 구별없이 마구 뒤죽박죽 섞어서 쓰거나, 마음에 드는 이미지들을 마음대로 펼쳐서 쓰고 있어요. 그러니 순수한 미미의 창작글이라고 할 수 없거든요. 아마 호수와 바다도 그런 것 같아요. 그런데 이건 가장 최근 글이고, 책꽂이에는 이 책이 없죠. 사진을 찍은 날 이후에 올라온 글이에요. 그렇다면, 만약 지금 아라의 책장에 이 호수소년과 바다소녀가 꽂혀 있다면 어떨까요? 게다가 고등학생이 이런 동화책을 갖고 있는 경우가 그다지 흔하지도 않을 것 같은데요.”

준호는 조용히 휴대폰을 집어들어 영민에게 전화를 걸었다. 우연치않게도 영민은 그때 누나의 집에 와 있었다. 도난사건 이후 마음이 불안해진 영진은 자주 남동생을 불렀던 것이다. 특히 딸 아라가 늦은시간까지 혼자 있게 되는 날이면 더욱 그랬다. 마침 그날도 영진의 퇴근이 늦어져 그녀는 동생에게 가능하면 좀 와달라고 부탁했다. 영민은 겉으로는 나도 바빠죽겠다며, 엄살을 부렸지만 사실은 그역시 되도록 누나와 조카를 챙겨주려고 애썼다. 그래서 오늘도 영민은 퇴근하는대로 누나의 집으로 향했고, 준호에게 전화가 걸려왔을 때는 마침 막 영진의 집에 들어서던 참이었다.

느닷없이 아라의 책장에 이상한 제목의 책이 꽃혀 있는지 확인해달라는 묘한 부탁을 받고 영민은 아라의 방문을 노크하고 안으로 들어갔다. 아라는 외삼촌이 온 것을 진작에 알았는지 아무런 표정없이 고개만 까딱이곤 제 할 일을 했다. 소문이 날만큼 예쁜 아이이건만, 자신의 외모를 내세우는 일 없이 묵묵히 공부를 열심히 하는 조카가 영민의 눈에는 언제나 신기해보였다. 게다가 아라는 무척이나 똑똑하고 감수성이 예민한 아이였다.

영민은 조카를 볼때마다 어쩔수없이 누나인 영진이 미혼모가 되기로 결심했을 때를 떠올렸다. 대학도 마치지 못한 어린 나이에 도대체 어떻게 그런 결심을 할 수 있었을까. 고등학교시절 전국대회에서 우승한 적도 있을만큼 유명한 테니스선수였던 영진은 대학에 입학하자마자 부상으로 선수생활을 마감해야만 했었다. 아마도 그 허전함을 비집고 들어온 게 아라 아빠와의 만남이 아니었을까 영민은 짐작할 뿐이었지만, 아무튼 그 사랑은 한창 나이의 영진에게 무척이나 강렬했던 모양이었다. 아라를 낳겠다고 고집한 것은 결국은 어리석은 미련 때문이 아니었을까. 그렇다고해도 영민이 보기에 영진은 이제껏 여느 보통 엄마들과 조금도 다르지 않게, 아니 그 이상으로 딸을 아끼고 사랑했다. 그리고 그 기대에 부응하듯 아라 역시 더할나위없이 올곧게 자라주었다. 지나치게 말이 없고, 이따금 우울하고 어두운 내용의 책이나 영화들을 즐기는 특이한 취향을 가졌다는 게 조금 걸리긴 했지만, 그 정도야 어떤 의미에서는 고상한 취미라고 할 수 있을지도 몰랐다.

우리 아라, 또 공부하냐? 피부 상할라, 무리하지마.”

그러면서 영민은 책장을 슬슬 살펴보았다. 그러다 문득 눈에 띄는 책이 있었다. 책꽂이 맨 아래쪽 가장자리에 정말로 호수 소년과 바다 소녀라는 동화책이 꽃혀 있었다. 유형사님은 아라방에 이런 책이 꽃혀 있는지 어떻게 안 걸까. 영민은 너무 신기한 나머지 그 책을 빼들었다.

이건 뭐야? 동화책 아니야? 이 나이에 웬 동화책이야?”

선물받은 거야.”

요새 애들은 별걸 다 주고받네.”

영민이 대충 넘겨보니 어둡고 암울한 것이 영 자신의 취향은 아니었다. 영민은 말없이 도로 책을 책꽂이 꽂아놓고 방을 나왔다.

 

수화기를 든 준호의 입에서 흘러나온 말은, 그래, 그래, 알았어. 그래, 고마워, 나중에 사무실에서 얘기하지 뭐. 그래, 나중에 봐. 하는 말들 뿐이었지만, 이미 수향은 자신의 짐작이 맞았음을 느꼈다. 아니나다를까 통화를 끝내고 수향을 바라보는 준호의 눈에 기묘한 빛이 떠올랐다.

꼭 뭐에 홀린 것 같군... 그런 걸 어떻게 알았냐는데?”

이게 그 쪽에서 제일 유명한 사이트 중에 하나라고 하셨죠?”

수향이 노트북을 보면서 말했고 준호는 수향이 자신을 보지 않고 있음에도 그저 말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그렇다면 아라도 설마 그런 쪽으로 연관이 있는 걸까요? 그저 사이트의 우울한 분위기가 그쪽 코드에 맞는 것뿐일지도 모르잖아요.”

준호는 알 수 없지, 하고 말끝을 흐릴 뿐이었다. 남도 아닌 친한 동료의 조카라고 생각하니 준호는 느낌이 또 달랐다. 갑자기 그저 남일 같던 사회문제가 확 자신의 일로 와닿는 기분이었다.

노형사님한테 얘기해드리면 도움이 될까요?”

 

 

다음날 점심시간 수향은 준호의 근무처로 향했다. 아무래도 수향이 직접 해준에게 설명하는 게 더 설득력이 있을 것 같아 준호가 부탁한 것이었다. 그저 전해들으면 다소 황당하게 들릴 수도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게다가 해준과 수향이 친해지게 해주고 싶은 준호의 은근한 속셈도 사실은 없지 않았다.

준호가 로비에서 해준을 기다리는데 마침 영민이 근처를 지나다 그를 발견하고 다가왔다.

뭐하세요? 식사하러 안 가세요?”

먼저 가. 약속 있어.”

영민이 채 대꾸를 하기도 전에 해준이 나타났다. 준호와 해준이 함께 나서는 것을 보고 영민이 가만 있을 리가 없었다.

뭐야, 사람 옆에 두고 같이 가자고 한번 권하지도 않아요, 치사하게?”

그러나 영민의 생각과는 완전히 다른 이유로 준호는 망설이고 있었다. 아라는 영민의 조카인 것이다. 만약 그가 알아야 할 일이 있다면 결국에는 알게 될 테지만, 그게 아니라면 불필요한 근심거리를 안겨줄 필요가 없는 것이다. 하지만 해준은 영민이 이미 이 사건에 대해 어느정도 알고 있다는 데 생각이 미쳤다. 그러므로 함께 사건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다보면 어딘가에든 쓸모가 있을지도 모르는 것이다.

생각 있음 따라오든지.”

해준이 그렇게 나오니 준호도 어쩔수없이 영민을 끼워넣을 수밖에 없었다. 두 사람을 따라나간 영민은 경찰서 입구에 예상치 못한 사람이 서있는 것을 발견하고 놀랐다. 유 형사와 해준, 수향은 생각지도 못했던 조합이었다. 해준이 오래전부터 준호에게 호감을 갖고 있었다는 것을 잘 아는 영민에게는 그것이 묘하고 어색한 만남으로 보이는 게 당연했다.

오래간만이네요. 나 알죠?”

수향이 미소로 답하자, 해준이 시큰둥하게 내뱉었다.

넌 중부에 사는 여자 중에 모르는 여자는 없냐?”

해준의 빈정거림에도 왠일인지 영민은 대꾸가 없었다. 무슨 일로 세 사람이 뭉친 것인지 전혀 알지 못한 영민은 해준이 안쓰러워 은근히 이 상황에 속이 상했던 것이다. 영민은 둔감한 건지, 둔감한 척 하는 건지 헷갈리는 준호의 무심함이 못마땅했다.

, 날도 더운데, 시원하게 냉면이라도 먹으러 갈까요?”

얘 면 못 먹어. 밥으로 먹자.”

준호가 고갯짓으로 수향을 가리켜보이며 말하자, 수향이 다른 사람들의 눈치를 보며 사양했다.

아니에요. 저 괜찮아요. 잘 먹는데.”

억지로 먹을 필요 없어. 한식으로 하자. 차는 두 대만 가도 될 것 같은데, 이 형사, 노형사님 좀 모시고 와.”

준호는 말을 마치자마자 대꾸도 기다리지 않고 수향을 자신의 차로 데리고 갔다. 수향은 다른 사람들의 시선이 신경쓰였으나, 준호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했다. 그리고 영민의 눈에는 이상하게도 해준 역시 아무렇지 않아 보였다. 하여튼 둘다 둔감한 건지, 냉정한 건지, 이성적인 건지, 난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체질들이야. 내 섬세한 신경에 안 좋아. 괜히 따라왔어.

사실 준호는 이미 근처 한식집의 방 하나를 예약해뒀었다. 잠시 후 네 사람은 그 방에 함께 모였다. 수향은 준호의 옆자리였고, 준호의 맞은 편에는 해준이, 해준의 옆에는 영민이 앉게 되었다. 자리에 앉자마자 막내로서 몸에 밴 습관대로 영민은 옆에 놓인 수저통에서 수저를 챙겨 제일 연장자인 준호에게 주었다. 그런데 준호가 그 수저를 받아들더니 수향의 자리에 먼저 놓아주었다. 수향은 조금 쑥스러운 듯 다른 사람들의 눈치를 보며 준호에게 살짝 눈짓으로 고맙다는 인사를 보냈지만, 준호는 시종 무심한 표정이었다.

영민은 눈만 껌벅거리며 그 장면을 지켜보다가 말없이 해준의 자리에 수저를 가지런히 놓아주었다. 해준 역시 말없이 자신의 앞에 놓여진 수저를 가만히 내려다보다가 영민을 쳐다보았다. 영락없는, 이 느끼한 짓은 뭐야? 하는 표정이었다. 눈짓으로 뒤통수를 때릴 수 있다면 분명히 그렇게 했을 터였다. 영민도 표정으로 자신의 말을 전달할 수 있을 것처럼 당당하게, 노 형사님도 여잔데, 누군 해주고 누군 안 해주면 서운할 거 아니에요, 하는 표정을 보냈다. 그러나 그 표정은 다만 지극히, 뭐가요? 뭐가 잘못됐습니까? 하는 것으로밖에는 보이지 않았다. 해준은 콧방귀를 뀌며 시선을 돌려버렸다.

수향은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수는 없었지만, 다만 뭔가 미묘한 긴장 같은 게 흐르는 것은 알 수 있었다. 그렇다고 싫은 느낌은 아니었지만, 분위기의 정체를 알 수 없어 답답한 것도 사실이었다. 게다가 지나치게 시치미를 떼고 있는 듯한 준호의 모습도 낯설었다.

그러나 수향은 당장은 영민이 신경쓰여 다른 것들은 접어두어야 했다. 그가 함께 나올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었다. 그녀도 아라가 영민의 조카임을 잘 알고 있었으니 어깨가 무거웠고 모든 말들이 조심스러워졌다.

이 형사님이 나오실 줄은 몰랐네요.”

나도 떼놓을까 하다가, 어차피 알아야 할 거 같기도 하고 그래서 그냥 데려왔어.”

영민의 표정이 어리둥절해졌다. 손가락으로 제 얼굴까지 가리키며 말했다.

저요? 저 말입니까? 제가 왜요?”

준호는 어디서부터 얘기해야할지 곤혹스러운 표정이었다.

얘도 웬만큼 알아요. 그냥 편하게 말씀하세요.”

아직까지 미미가 아라임을 알지 못하는 해준은 별반 신경쓰지 않고 말했다. 그러나 수향이 조용하게 이야기를 시작하자 마침내 점점 표정이 굳어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슬쩍슬쩍 영민의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영민은 뭐라 말할 수 없이 심각한 얼굴로 변해갔다. 그런 그가 너무 낯설어 해준의 머릿속에, 네가 그런 얼굴도 할줄 아냐, 는 말이 떠올랐으나, 차마 입으로 내뱉을 수는 없었다.

자기말로는 중부고등학교 다니는 일학년 여학생이라고 하고, 사는 곳도 일치하고...”

차마 수향은 말을 끝맺지 못하고 고개를 숙였다.

어떻게 알았어?”

채팅을 좀 했어요.”

어떻게? 신청했어? 그랬더니 쉽게 수락해? 우리도 여러번 시도를 했는데, 계속 거절당했었는데.”

해준이 물었다.

얘기 좀 해보고 싶어서 댓글을 달았더니, 밤에 연락이 왔더라구요. 그래서 한 시간쯤 얘기 했어요. 좀 자세히 물어보고 싶었는데, 꼬치꼬치 묻기가 그래서... 죄송해요.”

죄송하긴, 물어본다고 내가 누구요, 하고 대답해주겠어?”

“... 그런데 확실하게 확인해볼 방법이 하나 있긴 한데...”

세 사람의 눈이 동시에 번쩍 수향을 향했다. 그 눈길에 부담스러워진 수향이 고개를 숙이고 제 핸드폰을 꺼내놓았다.

주말에 무슨 자기들끼리 모임 같은 게 있는데 오지 않겠냐고, 초대해줬어요. 클럽인 것 같은데 이름이 재규어라나, 잘은 모르겠는데 유명한 곳이라서 찾기 쉽다고 하더라구요. 혹시 몰라서 대화한 거 모두 저장해뒀어요.”

해준이 얼른 수향의 핸드폰을 집었다. 화면에는 미미의 블로그가 떠있고, 어젯밤의 대화창이 켜져 있었다.

 

물의향기: ‘위험한 정사읽어봤어? 슬안 읽으면 왠지 그게 생각나.

미미: 안 읽어봤는데, 비슷한 내용인가 보지.

물의향기: 글쎄, 그렇다고 할 수있나, 아냐, 별로 안 비슷해. 그냥 내 느낌. 그냥 타락한 두 남녀가 고결한 한 여자를 무너뜨리려 하는 그런 기본 감정 구도 정도랄까. 그런 거면 흔한 것도 같은데, 이상하게 되게 비슷하게 느껴져. 왜 타락한 사람들은 그 렇지 않은 사람들을 내버려두지 못하는 걸까.

미미: 쎄실이 안느를 어떻게 하려고 한 건 아니잖아.

물의향기: 결국은 그렇게 몰아가지. 그리고 그렇게 몰아가게 되는 이유는 쎄실이 안느에게 강한 감정을 갖고 있기 때문이고. 강렬한 애증 말이야.

미미: 글쎄 위험한 정사는 읽어보지 않아서 모르겠는데, 슬안 같은 경우는 일종의 배신감 같은 거 아닐까?

물의향기: 배신감?

미미: 그녀는 엄마를 대신해오던 여자야. 엄마처럼 생각했고 존경했지. 그런데 막상 진짜 엄마가 되어주어야할 순간에 왜, 그저 의무감에 사로잡혀서 엄마 시늉만 하려드는 사람인 것처럼 보이잖아. 쎄실은 화나고 배신감을 느끼지 않았을까?

물의 향기: 그럴 수도 있겠다. 하지만 그것은 안느 역시 불안했기 때문은 아닐까? 사실 상대방을 화나게 하는 대부분의 행동은 그저 자신의 불안에 질려서 내지르는 비명 같은 행동인 경우가 많거든. 순간적으로는 마치 상대에 대한 공격처럼 보여서 불쾌하기 그지 없지만, 조금만 그 속을 들여다보면 금세 화가 가라앉고 안쓰러워지는 경우가 많아.

미미: 넌 어떻게 생각해?

물의향기: 글쎄. 잘 모르겠어. 단순하게는 그냥 빈 벽을 보면 낙서하고 싶어지는 그런 심리라고 생각했는데. 개별적인 이유야 다 다르겠지. 아무튼 뭔가 고결하고 깨끗한 것을 더럽히고 싶어하는 심리는 일반적인 거니까. , 원시인들이 최초로 벽에 그림을 그리게 된 건 그 빈 벽이 주는 공포감 때문이라고 하는 이론 있잖아. 그걸 모슨 공포라고 하더라? 아무튼...

그런데 말이야, 그 말이 맞다면 인류를 지금의 인류로 만든 가장 근원적인 감정은 공포라는 말이 되는 걸까? 사람들은 공포를 두려워하는데 생각해보면 좀 우습지, 알고보면 공포가 지금의 나를 있게 해준 거라고 생각하면. 그렇게 생각하고나서 폐소공포 같은 것도 좀 무심하게 받아들일 수 있게 된 거 같아.

미미: 애증과 공포는 서로 얼마나 먼 감정일까? 사랑, 기쁨, 두려움 미움, 그런 것들처럼 공포와 두려움도 정말 감정이 맞는 걸까? 난 때로는 두려움은 감정이 아닌 것처럼 느껴져. 감정이라기에는 너무... 뭐랄까... 사람을 심하게 구속한달까.

물의향기: 감정이란 게 원래 사람을 구속하는 거잖아.

미미: 달라. 아무튼 설명하기는 힘들지만, 다른 감정들은 내가 내려다보는 기분인데, 유독 공포는 나를 지배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물의향기: 나도 그래.

미미: 너도?

물의향기: 공포는 나에게 있어 가장 극복하기 어려운 감정이지. 근데 생각해보면 누구나, 어떤 감정엔가에는 휘둘려 자신을 파괴해나가거든. 욕심에, 사랑에, 증오에 휘둘리는 사람도 있잖아.

미미: 그렇게 말하니까 내 공포가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느껴진다.

물의향기: 그런 뜻은 아니야. 누구나 자신만의 짐과 무게가 있는데 어떻게 다른 사람의 아픔을 알겠어. 니가 힘들지 않다는 뜻은 아니야. bgm어떻게 깔지. 갑자기 니가 나로 살아봤냐를 띄워주고 싶어지는데.

미미: 아니야. 그런 게 아니라, 위로가 된다는 뜻이야.

물의향기: 그랬음 다행이네^^

 

대화의 일부분만 읽었음에도 해준은 눈이 핑핑 돌 지경이었다. 단서가 될 만한 것은 하나도 보이지 않고 맨 쓸데없는 중구난방식 감정토로 뿐인 것 같았다.

뭔소린지 하나도 모르겠네. 요즘 애들은 이러고 노나봐.”

어쨌든 중요한 건 미미와 뭔가가 통했다는 거겠죠. 고생했어.”

준호가 다정하게 수향을 바라보았다.

아니에요. 노 형사님 말씀이 맞아요. 그냥 같이 논 거죠, . 고생이랄 건 없고요. 다만 초대받은 거 어떻게해야 하나 싶어서. 아무래도 확인만이라도 해봐야겠죠?”

순간 해준의 표정이 굳어졌다. 화면에는 미미가 보낸 초대장이 떠 있었다. 그것은 모임의 주최와 장소, 시간 따위가 적혀 있는, 이메일용이긴 했으나 마치 진짜 파티초대장처럼 제법 분위기를 내 만든 초대장이었다.

블랙스타 제 5회 정기모임, 장소: 재규어 일시: 813일 토요일 저녁 여섯 시. 영화감상 및 댄스파티

이거, 설마, 블랙스타, ... 별무늬하고 상관있는 건 아니겠죠?”

해준이 급히 자신의 핸드폰에 있는 사진을 띄워 모두 앞에 보여주었다. 수향은 처음 듣는 이야기였다. 거기다 인체에 새겨진 상처라는 그로테스크한 사진이 느닷없이 눈앞에 펼쳐지니 당황스러웠다. 수향은 외면하고 싶은 마음을 억누르며 사진을 자세히 살폈다. 해준이 보여준 사진에는 다윗의별모양 별무늬 상흔이 몸 여기저기에 새겨져 있었다.

이거 다윗의별이네요.”

수향의 말에 다들 뭔가 깨달은 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고보니, 어디서 많이 봤다 했더니, 이거 유대인 표시, 그거지?”

해준의 말에 영민과 준호도 고개를 끄덕였다.

맞네요. 이스라엘 국기에 있는 그림이잖아요. 가운데가 육각형이고.”

순간 모두의 표정이 동시에 심각하게 굳어갔다.

별무늬. 신체의 상흔, 홀로코스트, 이거 진짜 분위기가 너무 살벌한데

아직 확실한 건 하나도 없잖아요. 제가 가볼게요. 아라가 아닐지도 모르고. 스타라는 단어도 그저 우연일지도 모르고요. 알고보면 별것아닌 일일수도 있잖아요. 토요일이면 모레니까, 한번 가보죠 뭐. 가보면 뭐가 나와도 나오겠죠.”

너는 안돼. 다른 사람이 대신 가는 걸로 하지.”

준호가 수향의 말을 잘랐다. 준호의 눈은 해준을 향하고 있었다.

저요? 저는 가고 싶어도 좀 곤란해요. 중학교 이학년때부터 사람들이 쳐다보는 게 싫어서 버스카드도 성인용, 학생용 따로 가지고 다녔어요. 교복 안 입으면 아무도 학생으로 안 봤거든요.”

그럼, 이 순경이 가면 되겠네요. 그러려고 지금껏 교복입고 고생했으니까요.”

하지만, 이 순경이 물의향기인 척을 할 수 있을까요? 지금 이 대화창 대화로 보면 둘다 보통 감수성을 가진 애들이 아닌데, 그런 대화가 가능할까요?”

영민이 무겁게 입을 열었다. 영민은 대화를 읽어내려갈수록 점점더 아라가 떠올라 마음이 답답해져왔다.

일단 아라인지, 아닌지 확인만 하면 되지 않을까?”

아라가 아니라고 해도, 어쨌든 미미자체가 중요한 건 사실이잖아요. 블랙스타라는 게 대체 뭔지도 알 수있다면 더 좋을 거고요. 아무래도 더 파볼 만한 구석이 있을 것 같은데.”

사실상 답은 처음부터 정해져 있는 터였지만, 준호는 계속해서 고집을 부렸다.

위험할지도 모르는 곳에, 교육도 안 받은 어린애를 혼자 보낼 수는 없습니다.”

괜찮아요. 많이 위험할 것 같지는 않은데요. 어차피 이 순경님이 가도 혼자 가실 거잖아요.”

너랑 같아? 이 순경은 경찰이야. 그래보여도 전문적으로 훈련받으면서 십년 가까이 현장에서 뛴 사람이야. 안된다면 안되는 줄 알아.”

수향은 느닷없이 버럭 화를 내는 준호의 기세에 눌려 입을 다물고 말았다.

그럼 이렇면 어떨까요? 같이 가면요? 친구 하나 데려가겠다고 한번 말해봐. 사실 얼굴도 모르는 사람 초대를 받아서 혼자 가는 게 더 이상할지도 모르지. 그렇지 않아?”

해준의 말에 다들 얼굴이 펴졌으나, 준호는 여전히 내켜하지 않았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수향을 대체할 만한 사람이 없다는 것은 준호가 제일 잘 아는 사실이었다. 준호는 끝까지 아무말도 하지 않았지만 침묵이 결국은 허락인 셈이었다.

그때 식사가 나왔다. 메뉴는 곤드레비빔밥이었고 반찬 가짓수가 많아 상이 그득했다. 모두들 식욕이 일지 않았지만 마지못해 숟가락을 들었다.

, 그 법대 여자애 고소 건 어떻게 됐습니까?”

영민은 자신 때문에 밥상 분위기가 무거워지면 안되겠다는 생각에 짐짓 다른 이야기를 꺼낸 것이었지만, 아닌게아니라 궁금하기도 했다. 일주일 전쯤 그의 대학후배 하나가 고소인이 아는 친구라며 사건의 돌아가는 상황을 물어왔었던 것이다.

글세, 잘 모르겠어. 처음에는 그냥 흔한 성폭행 사건이라고 생각했는데, 갈수록 좀 이상하긴 해. 자꾸 무고 냄새가 난단 말이다. 제발로 모텔에 간 거야 그럴 수 있지만, 대응도 좀 이상하고 신고도 너무 늦었고. 그냥 술만 마시고 자정 전에 나오려고 했다는 사람이 막상 모텔에서 나온 시간이 거의 퇴실 시간 다 되어서인데, 성폭생 당한 사람치고는 너무 느긋하지 않아?”

그러네. 왜 그렇게 늦게 나왔데요?”

염병할 놈의 술 탓이겠지 뭐. 자기 말로는 술에 뭘 탄 것 같다는데, 특별하게 나온 건 없어. 근데, 그 일에 왜 그렇게 관심이 많아? 자꾸 묻네.”

그냥 좀 아는 애라서.”

너 진짜 중부에 모르는 여자는 없냐?”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30 (작품 연재) 블랙스타 11회 장혜란 시스앤 2020.01.21 71
29 (작품 연재) 블랙스타 10회 장혜란 시스앤 2019.12.06 65
28 (작품 연재) 블랙스타 9회 장혜란 시스앤 2019.12.06 60
27 (작품 연재) 블랙스타 8회 장혜란 시스앤 2019.11.26 68
» (작품 연재) 블랙스타 7회 장혜란 시스앤 2019.11.26 62
25 (작품 연재) 블랙스타 6회 장혜란 시스앤 2019.11.17 24
24 (작품 연재) 블랙스타 5회 장혜란 시스앤 2019.11.17 25
23 (작품 연재) 블랙스타 4회 장혜란 시스앤 2019.11.11 159
22 (작품 연재) 블랙스타 3회 장혜란 시스앤 2019.11.11 24
21 (작품 연재) 블랙스타 2회 장혜란 시스앤 2019.11.05 27
20 (작품 연재) 블랙스타 1회 장혜란 시스앤 2019.11.05 30
19 (작품 연재) 블랙스타 1회 장혜란 시스앤 2019.11.05 61
18 문학신문 뉴스페이퍼의 9월 12일자 기사에 대한 정정요구 안내입니다 텍스트릿 2019.09.14 286
17 텍스트릿의 1주년을 기념하며 [2] 텍스트릿 2019.05.01 255
16 로맨스 집담회를 찾아와주셔서 감사드리며 아울러 사과의 말씀을 드립니다 텍스트릿 2018.08.30 452
15 제일 시급하게 필요한 비평은 더K텍스트 2018.08.26 328
14 서브컬처 물품 나눔합니다. 2 file nomoreons 2018.07.25 255
13 서브컬처 물품 나눔합니다. 1 nomoreons 2018.07.25 217
12 봇 계정으로 보이는 아이디들은 삭제하고 있습니다. file 텍스트릿 2018.05.27 174
11 텍스트릿 오픈에 부쳐 - 키안P 텍스트릿 2018.05.03 185
CLOS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