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 읽기 좋은 날-2

과거에서 온 기계 인간, ‘보일러 플레이트’를 만나 보시라
폴 기난·아니나 베넷, 김지선 옮김, 『보일러 플레이트』, 사이언스북스,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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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일러 플레이트』 표지

 
 


- 1893년, 만국박람회에 나타난 기계 인간

 서부개척시대가 저물어 갈 무렵이자 동시에 과학 산업에 새로운 지평이 열리던 시기인 1893년, 과학자 아치볼드 캠피언은 컬럼비아 만국박람회에서 기계 인간 ‘보일러 플레이트’를 대중 앞에 선보였다. 박람회에서 보일러 플레이트를 처음으로 보게 된 관람객의 편지를 잠시 엿보자.

 

”좀 들어봐, 그 기계는 혼자서 걷고 말을 했다니까! 성인 남자 둘은 가볍게 머리 위로 들어 올리더라고. 목례를 하는가 하면 성큼성큼 걸어다니고 진짜 병사처럼 소총까지 겨누지 뭐야. 상처를 입지 않는 것도 보여 줬어. 끝에는 나를 똑바로 쳐다보더니, 제대로 허리를 굽혀 인사를 하고는 ‘좋은 하루 보내세요 부-인. 전-시-는 즐거우-셨습니까?’하고 묻는 거야. ‘아, 아무렴요. 그렇지만 왜 내가 기계하고 말하고 있는지 알 수가 없네요!’ 그랬더니 이렇게 대답을 하데. ‘왜-냐하면 제가 여쭈었으니까요.’”

- 졸린 깁슨이 수전 깁슨에게 보낸 편지에서(1893)1)


 

 그는 어렸을 때 매형의 목숨을 앗아가 버린 전장의 참혹함을 보고 인간을 대체할 기계 병사를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의 발명품은 지금 기준으로도 매우 놀라웠으나, 공교롭게도 그 해에 만국박람회에서 에디슨의 키네토스코프2와 거대한 회전차와 같은 기발한 혁신품 중 하나였을 뿐이어서 독보적인 각광을 받지 못했다. 캠피언은 거기에 실망하지 않고 로봇의 효용성을 널리 알리기 위해 전 세계를 돌아다녔다.


보일러 플레이트는 파란만장한 삶을 보냈다. 그는 전쟁에서 사람들을 구했다. 또한 루즈벨트, 니콜라 테슬라, 아라비아의 로렌스, 잭 존슨, 루이스 하인, 잭 런던과 같은 유명인을 만나기도 하고 그들의 세계관을 확장시키는 데 기여했다.


 1918년 1차 세계 대전 당시 실종된 연합군 병사들을 찾아 아르곤 숲으로 홀로 걸어간 후 보일러 플레이트의 자취는 사라지고 말았다. 포탄에 파괴되었다는 설도 있고, 독일인에게 사로잡혔다는 설도 있지만 그 어느 것도 밝혀진 바는 없다.


 이쯤 소개를 하자면 지금까지 이 기계 인간을 왜 모르고 있었는지 의아하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그것은 당연하다. ‘보일러 플레이트’는 실존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 인간과 함께하는 로봇 캐릭터

‘인간을 돕는 로봇’은 그동안 SF장르에서 보아왔던 캐릭터다. 로봇은 극지방이나 재난 지역에서 사람을 돕고, 인간이 할 수 없는 일을 수행한다. 보일러 플레이트도 이 캐릭터 유형과 비슷하다. 캐릭터만 떼어 놓고 보면 아주 독특한 설정은 아니다. 하지만 『보일러 플레이트』를 인상 깊은 작품으로 보이게 하는 이유는 분명히 있다. 첫 번째는 그가 과거의 실제 세계에 있었다는 설정이다. 대부분의 로봇 캐릭터는 미래 공간배경을 토대로 한다. 그러나 보일러 플레이트는 1800년대 후반에서 1900년대 초반까지의 과거를 배경으로 한다.


그리고 두 번째로, 독특한 구성이다. 보일러 플레이트의 여정은 페이크 다큐멘터리 기법을 사용하여 사진과 삽화, 실제 유명인의 언급으로 가득 찬 역사책처럼 구성되어 있다.


- 페이크 다큐 형식과 역사책 형식으로 풀어낸 기계 인간의 자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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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일러플레이트 최초의 남극 현장 테스트(왼쪽)/러일전쟁 당시 보일러플레이트의 모습(오른쪽)

 

 

 『보일러 플레이트』는 페이크 다큐의 형식을 빌려 만들어진 이야기다. 페이크 다큐멘터리는 실존하는 사물이나 사건을 집중적으로 분석하는 다큐멘터리의 형식을 빌어 허구의 상황을 실제 상황처럼 가공하여 만들어진다.


 보일러 플레이트는 허구지만, 그가 만난 사람, 지역, 사건들은 허구가 아니다. 스페인-미국 전쟁, 필리핀-미국 전쟁, 의화단 혁명, 러일전쟁, 1차 세계 대전의 이야기가 생생하다. 텍스트 자체로도 궁금증을 유발하는 데 충분하다. 하지만 이 『보일러 플레이트』는 거기에서 한 발짝 더 나아가 책 자체가 진짜 양장본 풀컬러 역사책처럼 제작되었다. 병사들의 단체 사진 속에는 함께 싸웠던 보일러 플레이트의 모습이 보인다. 그는 아이들이나 여성과 포즈를 취하고 있기도 하며 유명인과 함께 무대에 서기도 한다. 사막이나 남극과 같은 극한 환경 속에 있는 모습도 보인다. 책에서 나타난 이미지는 가치판단을 내리지 않고 보여주기만 한다. 보일러 플레이트의 행적을 따라가다 보면 그의 경험, 그를 만난 사람들의 반응을 엿볼 수 있다. 함께 여행을 하는 셈이다.


 독자들은 허구의 캐릭터인 보일러 플레이트를 따라가며 그 당시 사회를 엿볼 수 있다. 그러나 이 책의 중요한 특징은, 인간이 아닌 외부인의 시선으로 세상을 볼 수 있다는 점일 것이다. 기계 인간이 비추어주는 시선은 독자들에게 새로운 시점을 체험할 수 있는 장이 된다.


 이 세상에 없던 기계인간이 낯선 인간 세계에 발을 디딘다. 인간세계에 속하지 않는 그는 인간의 행동을 바라보고, 인간세계 중에서도 소외된 인간을 바라본다. 독자는 기계가 비추어주는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게 된다.


 Darko Suvin은 “문학 장르로서의 사이언스픽션이 요구하는 필요충분조건은 소격(낯섦, 소외)(estrangement)과 인식(cognition)이고, 그 주요한 형식적 장치는 작가의 경험적 환경의 대안으로서의 상상적 틀”3)이라고 말한다. SF는 일반적으로 생각하던 관점을 끌어내서 새로운 관점으로 세상을 보게한다. 그의 말처럼 『보일러 플레이트』는 주인공인 기계 인간의 시점으로 독자를 이끌어내어 우리 세계를 새로운 관점으로 바라볼 수 있게 만든다.


- 인간을 닮은 로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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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석탄 광부들과 보일러 플레이트

 


 보일러 플레이트는 인간의 형상을 닮았고, 인간처럼 이족보행을 한다. 그렇기에 누구보다 인간 세상을 가까이에서 관찰하고 체험할 수 있다. 인간 사회 속에서 로봇이 인간의 형상을 가진다면 인간을 만나고, 인간의 문화를 이해하는 데 유리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보일러 플레이트는 인간과 다른 지점이 분명히 있다. 그는 인간의 형상이지만 인종, 성별, 나이를 전혀 가늠할 수 없다. 어느 한 쪽의 카테고리로 특정되어지지 않은 그의 모습은 어느 인간 사회에도 속할 수 없다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하지만 동시에 그러한 외형이기 때문에 어느 누구와 어울려도 이상하지 않다.


 그는 인간 대신 전장에 나가는 한편, 유명한 운동선수, 과학자, 예술가를 만났을 뿐 아니라 그 당시 소외되어 있었던 흑인, 여성, 아동과도 함께했다. 그는 아치볼드 캠피언의 누이인 릴리 캠피언의 영향을 받아 여성 참정권 운동에 나서기도 하고, 아동 노동자들과 함께 사진을 찍어 아동 노동 금지법 제정에 일조하기도 한다.


 보일러 플레이트가 인간의 형상이 아니었다면 인간과 친해지기 힘들었을 것이고, 함께 하지도 못했을 것이다. 그리고 동시에 그의 얼굴을 보고 인종, 성별, 연령대를 파악하기 어렵기 때문에 누구와도 함께하기 수월했을 것이다.


- 인간의 마음을 바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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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일러 플레이트와 아치볼드 캠피언

 


 보일러 플레이트는 자신에게 주어진 임무를 묵묵히 완수한다. 작품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과 독자 둘 다 그의 임무수행을 지켜보며 인식이 전환된다.


 작품 속에서의 인식 전환이라면 플레이트를 목격하게 된 사람들과 아치볼드 캠피언의 인식 전환을 생각해볼 수 있을 것이다. 보일러 플레이트를 본 사람들은 로봇에게 인권을 부여해야 할지, 고되게 노동하는 아이들을 대신해 로봇이 일을 할 수 있지 않을지 고민하게 된다.


 캠피언은 보일러 플레이트를 발명할 당시에는 전쟁에서 인간을 대체할 기계로 목적을 잡았지만, 로봇과 함께 다양한 상황을 경험하며 생각을 바꾼다. 그는 무고한 인명의 손실을 막기 위해서 로봇을 만들었지 결코 전쟁광은 아니었다. 처음에는 자신이 만든 발명품의 유용성을 증명하기 위해 보일러플레이트와 세계를 돌아다니며 전쟁의 참혹한 현실을 보는 목격자가 된다.

 

“어떻게 배웠다는 사람들이 역사의 교훈을 얻는데 그토록 지독히 실패할 수가 있을까? 어쩌면 보일러플레이트가 실종된 게 가장 좋은 일일지도 모르겠군. 왜냐하면 나는 군사 문제에 대해서는 더 개입하고 싶은 마음이 전혀 없으니까. 맹세코, 그와 똑같은 다른 원형은 다시는 만들지 않겠네. 그리고 나처럼 배웠다는 사람이 어쩌면 그리도 군사적이고 적치적인 사람들을 철저히 모를 수가 있었을까? 국가들이 기계 인간들로 이루어진 군대를 전보다도 더욱 치명적이고 더욱 파괴적인 전쟁을 일으키는 데에나 사용할 것임을 이제는 알겠네. 나 자신의 멍청함에 화가 치미는군.”

- 아치볼드 캠피언이 에드워드 풀러턴에게 보낸 편지에서(1918년 10월 16일)4)


 캠피언은 자신의 발명품이 군사적으로 쓰이는 일이 없도록 연구를 그만두고 자료를 폐기한다. 또한 기술만으로는 인간 사회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음을 깨닫고 사회 운동을 펼치게 된다.


 『보일러 플레이트』를 읽은 독자들도 보일러 플레이트의 여정을 함께하며 그의 행동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고, 또한 그의 여정에 따른 작품 내 인물들의 메시지를 읽으며 그의 행동에 대한 판단을 해보게 된다. 보일러 플레이트의 모험을 따라가면서 독자의 인식은 재편된다.


- 끝까지 침묵하는 기계 인간

 로봇을 소재로 한 이야기 중에는 로봇이 만들어진 후 자신의 존재 의의에 의문을 제기하고 창조자에게 반항하거나 분노를 표출하는 서사가 많은 편이다. 하지만 보일러 플레이트는 많은 사건을 겪었음에도 자신의 의견을 표출하지 않는다. 그는 아치볼드의 충직한 부하로 반항하거나 의문을 제기하거나 임무 수행을 거절한 적이 없다. 그의 속마음을 아는 인물은 아무도 없다. 그의 표정 또한 고정되어 있어 그를 마주하는 상대가 그가 어떤 생각이나 감정을 가지고 있을지 추측할 수밖에 없다.


 기계 인간이 자아를 가지고 자신의 생각을 가지고 있느냐에 대해 책은 답을 알려주지 않는다. 이 책은 보일러 플레이트의 일대기를 페이크 다큐 형식으로 만들어 그의 행적을 다루고 있지만 정작 그의 심경에 대한 언급은 없다. 사진, 목격자 인터뷰, 시대 상황만이 제시되는데 모자이크 조각처럼 흩어진 각각의 정보를 독자가 모아서 자신만의 보일러 플레이트를 상상해야 한다. 긴박한 사건 전개, 독자가 모르고 있었지만 로봇이 해낸 역사적인 반전, 로봇의 자아 찾기를 기대하고 이 책을 본다면 예상과는 다른 전개에 당황할지도 모른다.


 보일러 플레이트의 결말은 읽는 독자의 몫으로 남겨둔다. 그의 여정을 따라가면서 다양한 생각을 한 독자라면 그의 마지막을 상상해볼 수 있을 것이다.

 

 

+

 

텍스트릿 필진 박해울의 글입니다.

 

 

※ 각주

 

1) 폴 기난· 아니나 베넷, 김지선 옮김, 『보일러 플레이트』, 사이언스 북스, 2013, p.24.
2) 현대 영사기의 전신

3) Darko Suvin, Metamorphoses of Secience Fiction, New Haven:Yale University Press, 1979, pp. 7~8; 『문학동네』 통권 71호(2012년 여름호), 132-133에서 재인용.

4) 폴 기난· 아니나 베넷, 김지선 옮김, 『보일러 플레이트』, 사이언스 북스, 2013, p.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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