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 읽기 좋은 날-1
3차원 세계를 알아버린 사각형의 옥중 비망록, 『플랫 랜드』
(에드윈 A. 애벗, 『주석 달린 플랫랜드』, 필로소픽, 2017.)

 

 

SF의 주인공


‘SF의 주인공’이라고 하면 어떤 이미지가 떠오르는가? 지금까지 읽어 본 SF의 주인공은 누구였는가? SF의 주인공은 평범한 학생, 우주비행사, 과학자, 로봇, AI, 외계인 등 그 누구라도 이야기의 주인공이 될 수 있다. 특히나 SF는 시공간에 구애받지 않고 무궁무진한 세계를 무대로 창작될 수 있기 때문에, 꼭 사람이 아니더라도 주인공으로 선택될 가능성이 있다.
심지어 ‘높이’의 개념을 몰랐던 2차원의 사각형에게도 기회는 얼마든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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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토리아 시대의 은유


『플랫 랜드』는 영국 빅토리아 시대의 신학자이자 교육자인 에드윈 A. 애벗이 집필한 소설로 1884년에 출판되어 첫 선을 보였다. 이 시기는 빅토리아 여왕이 영국을 통치하던 때이자, 대영제국의 최고 절정기다.


이 작품 속에는 작가가 살았던 빅토리아 시대의 비유가 녹아 있다. 엄격한 신분제도가 있고, 빈부 격차도 점점 더 늘어나던 때였다. 자본가 계급은 사치스러운 생활을 즐겼지만, 노동자들은 근로 기준법도 없는 무법지대 하에서 위험한 환경과 강도 높은 노동에 시달렸다. 여성에 대한 차별 또한 극심했다.
『플랫 랜드』는 2차원 세계를 현실감 있게 그려내어 작품이 출간된 시대상을 모른다면 현실과 먼 이야기로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시대상을 안다면 저자가 살았던 시대의 은유를 알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조나단 스위프트의 『걸리버 여행기』(1726)와도 일맥상통하는 면이 있다.

 

 

플랫 랜드


이야기의 서술자인 사각형은 플랫 랜드에 살고 있는 나이 많은 남성이다. 수학자인 그는 귀족은 아니지만 아내와 자식, 손자가 있을 뿐 아니라 스스로도 학문에 능한, 어디 하나 남부러울 데 없는 플랫 랜드의 주민이다.


『플랫 랜드』에서는 그가 사는 세상이 아주 자세하게 그려지고 있다. 현실의 비유를 들기 위해 가상의 세계를 가지고 온 것이 아니라 정말로 실재하는 세계를 온전히 설명하려고 노력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주민들이 거주하는 주택의 모양이나 차원의 인식 방법이 자세하게 설명되어 있고 이해를 돕기 위하여 삽화가 제시되기도 한다.


이러한 소개를 듣다 보면 플랫 랜드가 철저히 통제되는 신분제 사회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하류층은 이등변삼각형, 중간계급은 정삼각형, 전문직 종사자는 정사각형이나 정오각형, 귀족은 정육각형 이상의 정 다각형으로, 신분이 높을수록 변의 수가 많다. 하류층인 이등변삼각형은 더 신분이 낮아질수록 밑변이 짧아지고 꼭지각이 작아진다. 점점 평면 도형에서 직선에 가까워지는 셈이다. 제일 고위층을 일컫는 성직자는 원형에 가까운 정다각형이다. 형태가 신분을 결정짓게 되니, 부모들은 아이들에게 인위적으로 변의 개수를 늘리는 위험한 수술을 감행하기도 한다.

 

 

플랫 랜드의 여성과 소수자


평면 도형이 직선에 가까워지면 플랫 랜드의 또 다른 구성원인 여성과 그 모습이 비슷해지게 된다. 여성 주민은 신분에 상관없이 직선 모양이다.(진짜 직선이라는 의미가 아니다. 애벗은 플랫 랜드의 여성이 길이와 너비-두께-를 지닌 가느다란 평행사변형이라고 말한다) 최하 계층의 남성과 전체 여성의 취급이 어느 정도 맞닿아 있다는 의미다.


플랫 랜드의 여성은 양 끝이 뾰족한 직선이기에 마음만 먹으면 도형의 형태인 남성을 찔러 죽일 수 있다. 게다가 정면으로 보면 직선이지만 측면에서 여성을 바라보았을 때는 점 하나밖에 보이지 않아 식별이 어렵다. 그래서 플랫 랜드의 여성은 건물에 들어가고 나올 때 여성 전용 출입문으로 드나들어야 하고, 공공장소를 지날 때 ‘평화의 소리’를 내야 한다.


하지만 여성보다 비참한 삶을 살게 되는 이가 있다. 바로 동일한 변을 가지지 못한 불규칙 도형들이다. 그들은 태어나자마자 가족과 주민에게 배척받고 비웃음 당한다. 성년이 되어 심사를 받을 때까지 경찰에게 감시당하고, 검사 결과 지정된 편차를 넘어설 경우 죽임을 당한다.


플랫 랜드의 주민인 동일한 변의 길이를 지닌 도형이나, 직선, 불규칙 도형 개개인은 특별히 능력의 차이가 없다. 이 모든 것은 계급의 특권을 누리고 싶은 상류층이 만들어낸 허상이다.


상류층이 부유하고 시간적 여유가 있기에 지식을 쌓을 수 있었던 것뿐이다.(그나마 그 지식도 2차원 한정이기 때문에 전체 차원에서 보면 편협한 지식을 가지고 있다고밖에 할 수 없다) 그들의 생각도 거주중인 차원에서 벗어날 수 없다.

 

 

감각을 통제하기


플랫 랜드의 주민들은 청각, 촉각, 시각을 사용하여 서로를 인식한다. 이 감각에도 계급 차이가 있다. 청각 인식 방법은 식별은 쉽지만 신분이 높아질수록 이 방법을 적용하기엔 까다로워지고, 하층계급의 발성기관이 발달되어있어 상류층을 속이기에 쉬워 신뢰할 수 없는 방법으로 알려져 있다. 촉각은 여자들과 하류층 사이에서 상대의 계급을 인지하는 수단으로 쓰인다.  마지막으로 시각은 안개 낀 날씨에서는 계층에 상관없이 누구나 사용할 수 있지만, 그렇지 않은 곳에서는 훈련과 교육을 통해 변의 거리를 인식하여 촉각을 사용하지 않고서도 눈으로만 상대방이 어떤 계급의 도형인지 인식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플랫 랜드에서 인식에 주로 쓰이는 감각은 촉각과 시각이다. 그 중에서 촉각 인식은 하류층의 것이고, 시각은 안개라는 기상현상이 있지 않은 이상 상류층 중에서도 부유한 엘리트의 것이다. 상류층은 촉각 인식을 예의에 어긋난다고 생각한다. 주민들은 두 가지 감각을 동시에 사용하지 않는다. 감각을 사용에도 계층 차이가 있는 것이다.


시각 인식을 하려면 다년간의 훈련과 고등 교육이 필요하다. 시각 인식은 하류계층에게는 사치다. 그들은 먹고 살기 위해 일을 해야 하기 때문에 교육을 받을 시간이 없다. 반면에 상류 계층 중에서도 부유한 엘리트들은 교육을 받을만한 돈이 있고 시간적 여유가 충분하다.


그 중에서 시각에 대해 살펴보자. 우리가 '시각'이라는 감각을 떠올릴 때에 큰 요소를 차지하는 것이 바로 '색'이다. 하지만 놀랍게도 플랫 랜드에는 색이 없다.


플랫 랜드에 색이 있던 시기가 없지는 않았다. 그러나 색을 도입하려는 하류층과, 이를 저지하려는 상류층 사이에 갈등이 있었던 색채 반란의 시기가 있었다. 그 반란은 결국 실패로 끝나버렸고, 그 이후부터 지금까지 플랫 랜드에는 색이 없다.


플랫 랜드에게 세계 인식을 확장할 기회는 충분히 있었다. 주인공인 사각형조차 색이 있었던 시기를 일컬어 '그 시대의 영향이 이어진 덕분에, 현대의 과학적인 말투 안에 여전히 아름다운 시와 리듬이 여운이 남아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상류층은 자신들이 누려온 권리를 놓치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다른 계층에게 세계 인식을 방법인 색을 사용하지 못하도록 정한다. 그리고 시각 인식 교육은 소수 엘리트의 전유물로 만들어버린다.


반란이 성공하여 색을 도입했다면 플랫 랜드의 많은 것이 바뀌었을 것이다. 다양성이 존중받고, 계층에서 탈피하여 개인의 개성이 살아나는 시대가 되었을 것이다. 색채 혁명은 새로운 차원이 있다는 사실만큼 놀라운 것이었음에도, 기득권자는 권리를 지키기 위해 마음을 열지 않았다. 또한 신분제가 없는 세계였다면 예의나 덕목에 구애받지 않고 각 감각들을 동시에 사용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우리가 사는 사회는 신분제는 아니지만, 기득권자와 비기득권자는 분명히 있다. 기득권자는 자신이 누리고 있는 권리를 지키기 위해 비기득권자의 눈을 가린다. 그들은 언론 통제나 정보 통제를 자행한다. 부유한 사람은 금전을 지불하고 이득이 되는 정보를 빠르고 쉽게 손에 넣기도 한다. 이런 통제는 기득권층의 부를 더욱 더 커지게 만들고, 계층을 더욱 공고히 할 수 있게 만든다. 플랫 랜드 상류층의 세계 인식에 대한 감각 통제와 다르지 않은 모습이다.

 

 

2차원인 플랫 랜드에서 다양한 차원으로


플랫 랜드의 주민 중 오로지 주인공인 사각형만이 3차원인 ‘스페이스 랜드’를 갈 수 있었다. 사각형은 3차원 복음을 전하러온 스페이스 랜드의 주민 ‘구(球)’를 만나 3차원을 경험하게 된다. 그리고 꿈을 통해 1차원인 ‘라인 랜드’와 차원이 없는 ‘포인트 랜드’를 방문한다.


그는 다양한 세계를 경험한 후 플랫 랜드로 다시 돌아오지만 이제 그곳은 정든 고향이 아니라 좁은 세계로 느껴진다. 그는 자신이 보고 온 세계를 이야기하며 이 세계가 전부가 아님을 주장하지만 플랫 랜드 주민들은 믿지 않고 감옥에 가두어버린다. 믿었던 총명한 손자조차 경찰을 보고 두려워 제 할아버지인 사각형이 설명하는 3차원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사각형을 제외하고서 플랫 랜드의 주민들은 두려움에서 한발 더 나가 진실을 볼 용기가 없다. 그는 옥중에서 자신이 겪었던 일을 집필하기 시작한다.

 

 

동굴의 비유


『플랫 랜드』는 빅토리아시대의 은유뿐 아니라 차원을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플라톤의 ‘동굴의 비유’를 연상케도 한다. 동굴의 비유는 이데아론을 설명하기 위하여 ‘국가’ 제 7권에서 상술된다. 대략적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지하의 동굴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고 가정해 보자. 사람들은 동굴 밖으로 나갈 수 없으며 구속되어 움직이지 못하고 태어나서 지금까지 쭉 동굴의 안쪽만을 볼 수밖에 없다. 동굴 입구의 뒤쪽에는 불이 타고 있어 벽의 안쪽에 그림자가 비친다. 벽을 따라서 그림자가 그려지고 구속된 사람들은 이 그림자를 볼 수 있다. 사람들이 보고 있는 그림자는 어떤 실체의 잔상일 뿐이지만 그들은 그 그림자 자체를 실체라고 믿는다.


하지만 플랫 랜드와 동굴의 비유는 차이점이 있다. 동굴의 비유에서는 그림자와 실체가 제시된다. 그림자는 실체의 잔상이고 실체는 영원불멸한 영원한 진리다. 그러나 『플랫 랜드』에서 실체는 상대적으로 다르게 나타난다.


플랫 랜드의 사각형이 스페이스 랜드의 주민인 구를 만나 3차원에 대해서 알게 되는 것은 동굴의 비유와 유사하다. 하지만 이 ‘구’는 동굴의 비유의 실체로 바로 치환될 수 없다.


구는 사각형이 3차원이 아닌 더 높은 차원을 보여 달라고 하자, 화를 내며 4차원을 부정한다.


사각형이 구에게 일방적으로 가르침을 받는 것 같지만, 항상 그런 구도는 아니다. 사각형이 플랫 랜드보다 한 차원 낮은 라인 랜드에 갔을 때에는 라인 랜드의 왕에게 한 차원 높은 곳에 플랫 랜드가 있다는 것을 알려주기 위해 노력한다. 그러나 라인 랜드의 왕에게는 사각형의 말이 이해되지 않는다.

 

 

새로운 세계를 경험하는 경이감


플랫 랜드는 가로와 세로는 있지만 높이(위)는 몰랐던 사각형이 다양한 차원을 경험하는 이야기다. 사각형은 다른 차원을 경험하며 경이감에 사로잡힌다.


문학은 작품을 읽는 독자들로 하여금 삶을 새로운 눈으로 볼 수 있게 하고, 감정이나 감각을 일깨워준다.
 

독자는 다양한 종류의 작품을 읽으며 공포감을 느끼기도, 스릴감이나 사랑을 느끼기도 한다. 그렇다면 SF는 무엇을 선사할 수 있을까? SF는 지금 여기(here and now)와 다른 곳에서 펼쳐지는 것을 전제로 하는 장르 문학이다. 이 세계에서 시공간의 범위는 무한이라고 불려도 좋을 정도로 확장된다. SF는 우리가 살고 있는 실제 현실에서 느낄 수 없는 다른 세계를 접하게 해 준다. 이렇듯 SF의 진정한 매력은 경이감이다. SF는 작품을 읽는 독자들에게 경이감을 선사해주어야 한다.
 

플랫 랜드의 주민인 사각형이 새로운 세상을 경험하면서 인식의 지평을 열 때 느꼈던 경이감을 이 책을 읽어나가는 독자도 똑같이 체험할 수 있을 것이다. 어쩌면 이 책이 다른 차원의 ‘구’의 역할을 하고 있을는지도 모른다.
 

차원까지 넘나들 수 있는 세계의 확장 경험. 이것이 『플랫 랜드』의, 나아가서는 SF의 묘미가 아닐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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텍스트릿 필진 박해울의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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