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고

문피아에는 접속조차 하지 않은지 3년이 다 되어가는 듯 하고, 네이버 웹소설은 최근은 아주 가끔씩만 보곤 합니다. 다른 플랫폼들은 아주 가끔 봅니다. 최근의 흐름이 어떤지 온전히 파악하지 못할 수 있으니 감안해주시길.

 

(다 아는 얘기 같기도 하고, 글도 지지리도 못 썼는데, 그래도 아무도 얘기 안 하는 건 좀 비겁한거 아닌가 싶어서 씁니다. 제가 뭐라고 비겁까지야 하냐면은 그건 또 모르겠네요. 저는 아직 그저 독자인데)

 

 

 

장르라는 젠더, “젠더라는 장르

 

 

장르의 표시들은 젠더의 표시로 전환된다. 앞에서 언급한 무협이나 정통 판타지그리고 로맨스나 로맨스판타지 뿐만 아니라 BL, 밀리터리물, 인소, 팬픽 등에 알아서 남성과 여성의 젠더 표지가 따라가 붙는다.

 

 

하지만 늘 현실은 단순한 이해를 거부하고 표시들을 혼란스럽게 만든다. 로맨스 판타지는 사실 그저 남성들이 보기 싫어하는 판타지를 부르는 이름으로, 여성들의 서사를 비하적으로 이르며 시작했다(여성을 사랑에 매달리는 존재로 국한하는 것은 아주 오랜 전통을 가진 비하다). BL물의 주소비층이 여성이지만 많은 남성애자 남성들도 스스로 BL을 생산하고 소비한다. 백합물의 주소비층은 남성이 아니라 여성이다. “장르라는 젠더의 표시는 사람들의 기대를 배신한다.

 

 

이 글을 쓰기 시작한 건 무협이나 소위 정통 판타지”, “SF”는 남성향 장르이고, “로맨스는 여성향 장르다 하는 말 따위들에 대한 반발 때문에 시작한 것이다. 나는 무협도, 판타지도, SF도 좋아하고, 로맨스는 별로 안 좋아하는 여성이기 때문에서도 그렇고, 좋은 글을 찾아 장르문학을 부유하면서 느낀 불쾌함들 때문에도 그렇다. 랑야방이나 이영도, 전민희, 어슐러 르 귄은 여성들도 잘만 즐겼다. 왜 다른 것에는 그러하지 못하는가?

 

 

물론 한국에서 장르로써의 무협이나 소위 정통 판타지 등이 남성이 주 소비층이 되는 구조를 가지고 있다는 것에 대해서는 그렇다고 말할 수 있다. (물론 요상한 정통에 대한 자부심만 조금 돌리면 로맨스 판타지가 그것들에 맞먹거나 오히려 더 큰 규모로 성장해버렸다는 것을 알 수 있지만). 그리고 로맨스라는 장르가 여성이 주생산자/소비자라는 것도 부정할 수 없다.

그렇다면 장르문학을 소비하는 남성들은 로맨틱하거나 섹슈얼한 관계들에 별 관심이 없다는 뜻인가? 그렇게 말한다면 분명 아닐 것이다. 왜냐하면 장르문학 속에서 남성들은 항상 로맨틱하고 섹슈얼한 관계들을 찾아왔기 때문이다. 남성들이 소비하는 장르문학은 남성들에게 있어 현실 속에서 결여되는 그러한 관계들의 대리만족 수단이기도 했다. 아름답고 순종적인, 남성들에게 구해지거나 지배당하는 존재로서의 여성을 상상하고 창조하고 그들을 수동적인 도구로써 이용하는 소설들이 많다. 무협 소설 속 여성의 주체성은 대부분 남성-주인공들에 종속되기 위한 주체성으로 전락하고, 수많은 양산형 판타지들도 그러했다.

 

 

왜 여성들은 남성들에 비해 한국의 무협이나 소위 정통 판타지(나는 정말로 정말로 이렇게 말하고 싶지 않다. 환상에 정통과 비정통이 있다는 말인지? 말 그대로 판타지인데 말이다)를 즐기지 않는가? 장르의 문법 속에서 여성들이 배제당해 있기 때문인 것이 너무도 당연하다. 그 때문에 즐기고 싶어도 쉽게 지치고 피곤하고 불쾌해지기 때문이다. 남성들의 지배라는 문법 속에서 여성들이 공감할 일은 적다. 혹 무협의 중심 테마가 마초맨들의 이야기라서 어쩔 수 없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을지도 모르지만, 그것은 핵심에서 벗어나 있다. 단순히 마초맨들의 이야기라면 느와르물을 즐기는 여성들이 많은 것을 설명하지 못한다. 여성과의 관계 속, 즉 여성에게 폭력을 가하거나, 여성을 보호하거나 하는 등의 행위로 여성들에게 유형력을 행사하여 지배하는 관계 속에서 남성들이 스스로를 남성으로 발견하기 때문에 여성들이 불쾌해하기 때문이다.

 

 

사회가 변하면서 남성들의 법적, 사회적, 경제적 우위는 불확실해졌다. 사회는 여성들에게 더 많은 자리를 허락했다. 폭력적이고 지배적인 가부장의 권위는 이미 흔들린지 오래다. 여성을 지배하는 가부장의 자리가 현실 속에서 허락되지 않자 남성사회는 가시적으로 여성들에게 폭력을 가하거나, 조금의 징조라도 예민하게 대응하거나, 서사 속으로 침잠했다. 2000년대 이후에 범람한 외모도 능력도 경제적 배경도 평범하기 그지없는데도 여자들이 꼬이는 장르소설 속 남주인공은 그것을 소비하는 남성들의 현실과 망상을 반영한다. 다른 한 편에서 지적, 신체적으로 초월적으로 월등하여 여자들이 꼬이는 남주인공의 상은 지배적 남성성의 상실에서 오는 선망을 반영한다. 이것들은 무협이나 정통 판타지“SF” 등등으로 부르기 전에 남성으로 불려야 하는 장르다. 랑야방과 어스시의 이야기들은 한국의 무협과 판타지와 같으면서도 전혀 다르다.

 

 

특히 한국에서 로맨스 판타지라는 장르가 어떻게 생겨났는지 생각해보면 더욱 그렇다. 로맨스 판타지는 로맨스와 판타지의 퓨전이 아니다. 그들은 판타지라는 장르 속에서 생겨났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로맨스 판타지는 남성들이 정통 판타지(정확히 말하자. 사실은 남주인공 판타지다)”와 로맨스 판타지를 나누면서 생겨났다. 판타지를 향유하던 여성들이 남성 중심의 판타지 문법에 반기를 들고 여주인공과 여성들의 서사를 만들어내기 시작하면서 그걸 두고 못 본 남성들이 그것을 판타지에서 분리시키고 추방할 것을 요구하면서 만들어졌다. 이것은 이 장르가 남성이라는 장르였음을 보여줄 따름이다.

 

 

그것은 일부 사람들의 것이라고 변명하는 것은 무의미한데다가 동시에 무책임한 일이다. 근대적 규율권력은 계몽주의자의 인도주의적 서적에서가 아니라 근대적 교도소의 형별규칙과 병원의 관리지침에서 발견된다. 한국 장르문학의 문법들은 이영도와 좌백의 정의 속에서가 아니라 문피아와 네이버 웹소설의 조회수가 나오지 않는 소설들과 자유게시판의 주절거림 속에 있다.

 

 

물론 장르소설의 특징은 재미. 현실 속에서 채워지지 않는 욕망의 대리충족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성평등의 이슈를 장르소설의 유희들 속에 끌고 오는가? 성평등이 존재한다고 재미가 없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자기가 여성을 지배하는 것 이외에는 재미를 찾지 못하는 성차별주의자 남성이라고 선언하고 싶은 사람은 거기에서만 재미를 찾을 수 있겠지만, 대부분의 경우 남성이라는 장르 속에서는 여성을 획득하는 남성의 탄생이라는 반복된 서사 속에서 꿈도 희망도 재미도 찾을 수 없다.

 

 

장르에 젠더를 도입하기

 

 

젠더와 장르는 사실 동일한 기원을 가지고 있다. 중세 프랑스어 Gendre는 영어에서 젠더(Gender), 프랑스어 장르(Genre)로 변했다. 둘은 모두 경계(border)”의 뜻을 가지고 있었다. 젠더와 장르에 대한 성찰은 그들의 경계에 대한 성찰이기에 비슷한 구조로 이루어진다. 그들이 모두 일종의 사회적 합의에 불과하고, 규범적 정의들이 항상 실패한다는 점에서도 그렇다.

 

 

장르 분석에는 젠더가 도입되어야 한다. 앞에서 말했듯이, 젠더의 관계는 한국 장르문학에서 굉장히 오랜 시간 동안 암약해왔다. BL과 로맨스 장르에서만 젠더의 관계에 대해서 논해진다면 그것은 불성실함이다. 성차별이 여성 문제라는 오랜 무시와 맞닿아있다. 판타지와 무협에서 주인공들의 모습이 변할 때, 로맨스판타지가 판타지에서 추방되는 때, 장르문학의 비문학성에서는 소위 남성향 소설들이 불려나오는데, 그것들이 사회에서 비판받을 때는 인소들이 비판받을 때, 여성들이 주소비층인 장르에서만 젠더에 대해 논해질 때, 백합물이 자연스럽게 남성들의 취향으로 호명될 때. 모든 순간에서 젠더는 무시될 수 없는 요소로써 작용해왔다. 그것을 다 알만한 것으로 침묵한다면, 결국 아무도 말하지 않는다면, 장르소설과 장르소설 향유자들에 대한 이해는 영원히 가능하지 않을 것이다. 노벨 물리학상을 타는 여성이 부교수 밖에 못하고 남자 물리학자가 물리학은 남자들거지! 하는 꼴을 보이면서도 과학자 사회는 능력주의라서 그 내부에 성차별이 없다고 변명하는 물리학자들처럼 우스운 꼴만 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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