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세기(조선 전기)의 여성 원귀들

전혜진 2019.04.21 01:24 조회 수 : 386

15세기(조선 전기)의 여성 원귀들

 

조선 전기는 고려에서 이어진 불교와 무속신앙이 여전히 큰 입지를 차지하는 가운데 집권세력인 신진 사대부가 비판적 대안담론을 내놓던 시기였다. 이들은 유교적 세계관에서 이치에 따라 감응하는 귀신, 즉 국조신이나 조상신에게 제사를 올리는 한편 민간의 귀신을 부정하였다.

 

하지만 조선 건국과 왕자의 난은 물론 계유정난까지, 왕조 초기의 혼란과 함께, 재앙을 막기 위해 여제와 수륙재를 설행하여 불특정 다수의 원혼을 위로하는 등, 억울한 죽음을 맞이한 사람의 마음을 풀어주어야 한다는 관념이 국가적으로 자리잡았다. 특히 조선왕조실록의 사상 관련 키워드들의 흐름을 볼 때 성종조는 경국대전의 반포로 유교 지배체제가 공고화된 시기인 동시에, 유교는 물론 불교와 무속, 그리고 귀신 자체에 대해서까지 가장 관심이 고조되었던 시기였다. 이와 같은 분위기가 16세기 초반에 영향을 끼치며 자연스레 귀신담을 이끌어내었을 것으로 보인다.

 

 

 

 

 

종류

죽음의 방식

죽음의 이유

전개

결말

원한

조상

기타

자결

살해

기타

정절

배신

모함

희생

기타

신원

복수

승화

비판

증표

현몽

기타

사망

재생

환생

<절개를 지킨 여종>

 

 

 

 

 

 

 

 

 

 

 

 

 

 

 

 

 

 

 

 

 

 

 

 

 

 

 

 

 

 

 

 

만복사저포기

 

 

 

 

 

 

 

 

 

 

 

 

 

 

 

 

 

 

 

 

 

 

 

 

 

 

 

 

명황계감

 

 

 

 

 

 

 

 

 

 

 

 

 

 

 

 

안생전

 

 

 

 

 

 

 

 

 

 

 

 

 

 

 

 

이생규장전

 

 

 

 

 

 

 

 

 

 

 

 

 

 

 

 

 

최치원

 

 

 

 

 

 

 

 

 

 

 

 

 

 

 

 

 

취유부벽정기

 

 

 

 

 

 

 

 

 

 

 

 

 

 

 

 

 

 

 

이 시기의 필기·야담에서는 귀신에 대한 기록 자체가 적다. 강상순은 이를 죽은 자가 귀신이 되어 인간 세상에 되돌아오는 것을 불길하고 위험한 것으로 인식하는 원초적이고 무의식적인 귀신관때문이라고 설명하였다. 그에 따르면 무속과 불교에서 뿌리깊게 존속해 왔던 애니미즘적 귀신관에서 인간 세상으로 돌아온 귀신은 산 사람에게 해를 끼치는 위험한 존재이며, 이는 귀신을 자연 원리로 이해하고자 하는 성리학적 귀신론과 배치되는 것으로 모순적으로 존재했다. 신령이나 조령과 같은 성리학적 상징질서에 포함되는 귀신들이 조선 전기의 필기류에 그리 두드라지게 나타나지 않는 것은 이와 같은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했기 때문이라 여겨진다.”

 

이 시기의 원귀담 속 원귀들은 복수를 꾀하거나 억울함을 호소하지 않는다. 청파극담<절개를 지킨 여종>에서 여종의 원귀는 귀곡성을 내거나 억울함을 호소하지도, 신원을 요구하지도, 복수에 나서지도 못한 채 조그마한 발자취 소리만으로 자신을 드러내며, 그리운 남편의 앞에 잠시 모습을 드러냈다 사라질 뿐이다. 이 이야기는 다른 사위들의 질투로 인한 비극으로 변형되어 용재총화에 다시 수록된다.

 

아내의 원귀는 분노하거나 원망하거나 신원을 요구하거나 복수하지 못하고 그저 슬퍼하며, 필기 저자들 모두 권력자의 횡포나, 아내를 빼앗기고도 별다른 저항을 하지 못하는 안생에 대해서는 딱히 비난하지 않은 채, 이륙은 아내의 절의에, 성현은 원귀의 출현과 이에 대한 안생의 반응에 집중하고 있다. 이는 기록자들이 같은 사대부로서, 자신의 노비에 대해 재산권을 행사하거나 권력자에 맞서면서까지 아내를 구할 수 없었던 것을 쉽게 비난할 수 없었기 때문으로 보인다. 하지만 강상순은 절행이라는 유교적 이념으로 그 의미를 희석하더라도 이 이야기에서 원귀 등장은 성적·신분적 차별 사이에 존재하는 적대적 갈등과 소통의 단절이라는 본질적인 문제를 드러낸 것이자 폭압적 현실에 대한 분노와 저항이라고 설명한다.

 

 

 
 

 

한편 이 시기 소설(이 시기 소설은 출전이 비교적 명확히 밝혀져 있다. 명황계감은 세종이 당 현종의 이야기에 고금의 시를 덧붙여 편찬한 것이고, 안생전청파극담, 태평한화골계전, 용재총화에 수록되었으며 최치원역시 태평통재에 수록된 것이다. 만복사저포기이생규장전, 취유부벽정기금오신화에 포함된 것이다. )의 귀신담은 염정소설적 요소를 포함하고 있다. 명황계감이나 안생전의 여성 원귀는 정인의 앞에 나타나고, 이생규장전의 여성 원귀도 전쟁으로 헤어진 남편에게 나타나 잠시 함께 살다가 다시 사라진다. 최치원만복사저포기에서는 처녀 귀신이 현달한 짝을 만나 인연을 맺는다. 이 여성 귀신들은 전란, 혹은 사회적 문제로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할 수 없거나 훌륭한 짝을 만나지 못하고 젊은 나이에 죽은 한을 품고 있지만, 사랑하는 사람 앞에 나타나거나 짝을 구할 뿐, 복수하지 않고, 되살아나지도 않는다. 후대에 흔히 보이는 신원담이나 재생·환생이 보이지 않는 것이 이 시기 귀신담의 특징이다.(만복사저포기의 경우 재를 지내주자 자신이 그 공덕으로 환생하게 되었다고 현몽하나, 후기 소설에서의 재생·환생의 경우 되살아나 다시 인연을 이어가는 형태로 전개되므로 이와는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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