옆집의 영희 씨와 함께 지내는 방법

- 정소연의 『옆집의 영희 씨』와 한국 SF의 사고실험

 

 

 

 

SF는 이미 우리 옆집에 살고 있다

 

우주를 배경으로 하거나 외계인이 등장하고, 첨단 과학기술로 인해 구현된 스펙터클과 모험서사가 필요하다는 생각은 SF에 대한 가장 흔한 오해 중 하나일 것이다. 물론 이러한 요소들이 SF를 구성하는 중요한 부분이고 이러한 것들로 SF가 정체성을 확립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하지만 19세기 말 장르를 규정할 만한 단서들이 제시되면서부터 지금까지 변용을 거듭해 온 SF는 환상적이 요소뿐 만 아니라 자연과학기술과 사회과학 영역에 속한 이론들을 섭렵하면서 시대를 통찰할 수 있는 방법론 중 하나로 자리매김 해 왔다.

 

때문에 SF는 환상과 스펙터클을 제공해 주기도 하지만 일상에 대한 성찰을 제시하기도 하고, 앞으로 닥칠 미래를 예언하는가 하면, 과거를 비틀어 현실을 투영하기도 한다. 현대 SF를 이야기 할 때 ‘외삽(extrapolation)’이나 ‘사고실험(thought experiment)’을 언급하는 것은 그 변용의 결과가 어떠한 의미로 진행되었는지를 잘 보여주는 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이해는 안타깝게도 한국에서 지난한 문제라고 할 수 있다. 통속문학이나 대중문학 같이 수용형태나 수용자를 중심으로 규정되던 것이 장르문학이라는 단어로 변용되면서 작품 자체가 가지고 있는 특성에 집중한 것은 반가운 일이지만 여전히 순수문학과의 이항대립적인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는 걸 부정할 수도 없다.

 

다만 이러한 인식의 정체와는 달리 다행스럽게도 창작 영역에서 21세기 이후에 한국 SF의 정체성을 확립하기 위해 내재화하는 과정들이 축적되었다. 장르를 확정할 수 있는 관습의 형성 과정에서 가장 중요시 되는 것은 전환을 마련할 수 있는 작품의 등장인데, 이러한 작업들이 꾸준히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은 고무적인 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내재화의 과정에서 반드시 필요한 부분이 공간과 용어, 캐릭터의 현지화(localizing)라고 보았을 때 해당 작업들은 듀나(DUJNA)의 「대리전」 등을 통해서 본격적으로 전개되었다고 볼 수 있다. 또한 자국의 문화예술 궤도에서 의미를 형성하는 것 역시 내재화의 요소로 판단했을 때, 복거일이 주류문학 범주에서 작품을 발간하면서 보였던 가능성들이 배명훈의 진영을 가리지 않는 수상과 발표지면의 확대 등으로 인해 상당부분 발전되었다는 것 또한 자명한 일이다. 그리고 SF의 장르적 특성을 확장하는 방법론으로서의 사고실험은 2000년대 이후 다양한 작가들에 의해서 시도되지만 그 중에서도 특히 정소연의 작품들을 주목해 볼 만 하다.

 

정소연은 2005년 ‘과학기술 창작문예’ 공모에서 만화 <우주류>(그림은 원사운드가 그리고 정소연은 스토리를 담당했다)로 가작을 수상하며 활동을 시작했다. 이후 환상문학 웹진 <거울> 등을 통해 창작자와 번역가로 활동을 이어나갔다. 10여 년 이상을 활동하면서 단행본의 발간이 없었지만 2015년 창비에서 그동안의 발표 작품들과 미발표 작들을 묶어 『옆집의 영희 씨』를 발간했다. (본문에서 인용되는 쪽 수는 해당 도서를 기준으로 한다.) 정소연의 작품들은 거대한 스케일의 세계관이나 스펙터클한 구성보다는 평범해 보이지만 그러기 때문에 다양한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이야기를 제시한다. 다만 이야기 내의 세계를 들여다보는 작가의 시각이 상상력으로 인해 다양한 모양을 띄고 있을 뿐이다. SF에서는 이렇게 독특한 상상력으로 다양하게 가정하는 현실의 이야기들을 일컬어 사고실험이라고 한다.

 

장르가 태동한 서양에서는 르 귄(Ursula Kroeber Le Guin)이나 팁트리 주니어(James Tiptree Jr.)와 같은 작가들이 이러한 방법론을 본격화하고 적극적으로 활용해 SF의 품격을 올려놓았다. 이러한 사고실험을 적극적으로 개진하는 SF 작품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는 것은 SF가 생각보다 우리 가까이에서 존재하게 되었다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비록 우리가 아직 낯설게 느끼고 있다고 해도 말이다.

 

 

관계 맺는 대상의 다양성과 방법의 다양화

 

[옆집의 영희 씨]를 관통하는 키워드는 ‘관계(關係)’라고 할 수 있다. 이는 다시 관계를 맺는 대상의 다양성을 통한 사고실험과, 관계를 맺는 방법의 다양성을 통한 사고실험으로 나뉜다. 소설에서 나타나는 관계 맺기는 그 대상이 인간으로 한정되어 있지 않고, 인간이라고 할지라도 현시대, 혹은 같은 우주에 있는 인간이 아닐 수도 있다. 이는 일흔네 번째 세계에서 만난 앨리스 셸던 부인이기도 하고(앨리스와의 티타임), 현생 인류와는 다른 시간으로 살아가는 페이아인 이기도 하며(입적), 옆집에 사는 두꺼비 형상을 한 외계인(옆집의 영희 씨)이기도 하다.

 

소설에서 캐릭터가 관계 맺는 대상의 다양성은 이야기의 다양성을 확보하는 것과도 일맥상통 한다. 그리고 그 대상을 확장하는 과정에서 정신병적이거나, 환상, 혹은 꿈으로 상징하지 않고 세계관 내에서 명확하게 존재하는 대상으로 상정하고 관계를 모색하는 것은 SF가 가지고 있는 장점이라고 할 수 있다. 확장은 필연적으로 기존의 경계를 허무는 작업을 필요로 한다. 오해와 편견으로부터 자유로운 이해와 포용을 얻기 위해서는 기존에 상정해 놓았던 경계들을 허물고 재 정의하는 작업들이 필요하다. 시간의 변화, 혹은 세계의 변화에 따라서 인식의 영역을 확장할 준비가 언제든 되어있어야 한다.

 

“우리는 우리 세계 안에서 사는 법을 배워야 해요. 다른 세계에 당신이 또 있을 수도 있지만, 그 사람은 이미 당신이 아니죠. 개인의 존재는 우연이에요.”(앨리스와의 티타임, 35쪽)라고 이야기하는 것은 이러한 세계의 확장에 대한 필요성을 명확하게 드러내는 부분이다. 이는 또한 변화와 확장이 가속화되고 일상화 될 미래에 견지해야 할 인식을 제시하는 것이기도 하고, 현재 우리가 상정하고 있는 세계의 경계 너머를 의식하게 하는 것이기도 하다.

 

소설은 지구인과 전혀 다른 기억과 인식체계 안에서 다른 시간의 속도로 살아가는 페아이인을 통해 가족을 규정하는 것은 무엇인가, 그리고 현생 인류를 기준으로 하고 있는 인간다움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들을 던진다. 옆집에 사는 영희 씨는 ‘그런 것’ 혹은 ‘그들’로 지칭되는 두꺼비와 같은 외향을 가진 외계 생명체이지만 소설에서의 소통의 영역은 그러한 경계들을 과감하게 허물고자 한다. 이는 작품에서 빈번하게 드러나는 부분이다. 찰나의 긴장상태나 반목의 상태가 제시되긴 하지만 이내 단도직입적으로 자신의 집에 외계인을 초대해 티타임을 요청하고, 서로 다른 세계에 끼칠 영향을 두려워하지 않고 대화를 하며, 입양한 아이가 외계인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지만 아이의 상황에 맞춰 생각하고 행동한다. 왜냐하면 [옆집의 영희 씨]는 그러한 존재들에 대한 고민과 두려움을 이야기하려는 것이 아니고, 그러한 경계들을 과감하게 허물어 맺게 되는 관계에서 도출되는 모양들을 이야기하고 싶기 때문이다.

 

또한 [옆집의 영희 씨]는 대상과의 관계 맺는 방법의 다양화도 이야기 한다. 「옆집의 영희 씨」의 수정은 영희 씨라는 지구의 언어를 사용하고 있는 영희 씨에게 본래 자신이 속해 있는 세계의 언어로 소통하길 요구한다. 영희 씨의 본명은 “고작해야 두세 걸음 거리의 기가 떨리고, 헤어드라이어의 바람을 맞을 때처럼 눈자위가 뜨거워졌다. 무언가가 흔들, 하고 반짝였다 사라졌다. 눈을 깜박여 보았다. 은근한 열기와 아릿한 잔상이 속눈썹에 걸린 듯 아른거렸다.”(옆집의 영희 씨, 113쪽)였다. 이러한 소통이 있었기 때문에 수정은 영희 씨가 자신의 세계로 돌아가기 전에 “아득한 우주 저편의 불꽃과 같은 열기가 조각나 별빛 같은 빛의 가루를 남기고 순식간에 지나갔다.”(옆집의 영희 씨, 114쪽)라는 작별과 안부의 인사를 들을 수 있었다.

 

사람들에게서 더듬이가 각각 다른 모양으로 돋아나면서 인지와 소통의 형식이 달라져 버린 세상을 그린 「도약」은 관계 맺기의 방법으로 상정하고 있는 소통체계에 대한 일종의 사고실험이라고 할 수 있다. “이제 내 몸은 받아들이는 동시에 내보낸다. 우리 모두가 그렇다. 입은 하루아침에 사라졌지만, 자연스러웠다.”(도약, 173쪽)고 이야기 할 수 있을 정도로 변모가 일어난 세상에서는 생각보다 많은 것들이 변화한다. “시간은 상대적인 것들이 되었다. 많은 정보가 동시에 오갈 때는 천천히 흘렀다. 별일이 없을 때는 빨리 흘렀다. 우리의 몸은 아날로그적인 시간이 아니라, 무언가를 받아들여 해독하는 데 필요한 시간에 맞추어 시간을 쟀다. 우리에게 남은 것은 시간이 아니라 박자였다. 신호를 나누는 리듬이었다.”(도약, 179쪽)와 같이 시간이 가지고 있는 절대성마저도 허물어뜨리게 된다.

 

이렇게 경계를 허물고 그 위에 새로운 개념들을 대입하게 되면 새로운 의미들이 도출된다. 도출된 의미들은 허구의 영역에 속해 있다고 하더라도 이야기 내에서의 리얼리티에 충실하게 복무하고 있기 때문에 당위를 얻는다. 그리고 그것을 통해 우리는 우리의 인식 영역이 확장될 수 있는 가능성을 제시받게 된다. 방법론의 확장은 가능성에 대한 확장이다. 인식 영역과 방법론의 확장을 통해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것은 더 다양하고 많은 세계, 혹은 대상과의 관계 맺기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다양한 이야기들을 파생할 수 있는 자양분을 확보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는 SF가 세상과 관계를 맺는 방법의 확장을 의미하기도 하고, 넓은 범위에서 이야기 자체가 변화하는 추이에 맞춰 세상과 관계를 맺는 방법의 다양성을 확보하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미래만이 아니라 현실의 이면을 들춰보는 것

 

환상 세계에서의 꿈과 희망을 이야기 하는 것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일상의 영역이라고 할 수 있는 ‘관계’에 대한 사고실험을 하고 있다는 것은 분명 정소연 작가의 작품들이 가진 큰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거기에서 그치지 않고, 공간과 용어, 인물들에 대한 현지화를 충실히 구현하고 있다는 것도 한국 SF에 있어서 긍정적인 영향으로 작용하는 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때문에 「옆집의 영희 씨」의 배경이 되는 공간들 중에는 서양 어딘가의 지명 대신 마산이나 영등포 교도소와 같은 한국의 지명이 등장한다. 인물들의 이름도 굳이 알 수 없는 의미의 외래어들이 아니라 지극히 평범한 이름들로 명명된다. 옆집에 함께 살게 된 외계인의 이름이 영희 씨라는 것은 소설의 지향점이 어디에 있는지를 명확하게 해주는 것이기도 하다. SF의 상상력이 소모적인 공상(空想)에 그친다는 오해에서 벗어나기 위해 견지되어야 할 부분이 바로 작품 구성요소들의 현지화라고 할 수 있다. 국가의 개념과 경계의 중요성이 이전시대에 비해 줄어들고, 세계화를 비롯한 융합(convergence) 기반의 세계관들이 확장되고 있지만 융합의 용이함을 위해서는 차별화(divergence) 역시 명확해져야 한다. SF에서 상상력이 중요한 영역을 차지하고 있고, 그 상상력의 기반은 현실을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가에 기인한다고 보았을 때, SF 작가들이 제기한 용어와 세계관의 현지화에 대한 부분들은 중요한 지점이다.

 

여기에 환상이 현실에 없는 것이 아니라 현실에서 감추어진 것들을 드러내는 역할을 한다는 로즈매리 잭슨의 이야기를 대입해 보면 『옆집의 영희 씨』에서 나타나는 비현실적인 세계는 단순히 현실세계에서의 도피를 위한 공간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의 이면을 들춰보기 위한 기제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고 정소연의 작품들이 환상의 영역에 대한 꿈과 희망을 이야기하는 것에 인색한가하면 그렇지도 않다. 『옆집의 영희 씨』에서 보여주는 현실의 이면들은 배재되어 있거나 숨겨져 있는 부조리함을 고발하고자 함이 아니다. 오히려 존재하고 있던 것들을 드러나게 해서 가능성과 희망을 제안하고자 하는 메시지라고 해석할 수 있는 여지가 더 많다. 그러기 때문에 소설의 인물들은 대체적으로 긍정적이며, 주도적이다.

 

게다가 작품에서 표상하고 있는 캐릭터들은 소수자에 대한 알레고리로 해석할 수 있는 가능성들이 많다. 이는 작가가 진행한 관계에 대한 사고실험들이 현실에 대한 통찰로 이어져 새로운 의미맥락을 형성하는 지점이라고 할 수 있다. 외계인으로 대표되는 이방인이나 동성애자, 여성이나 사회구조에 그대로 순응하지 않는 마이너리티들이 이야기 하는 감추어진 이면의 가능성과 희망은 2017년 현재에 의미하고 있는 바가 남다르다고 할 수 있다. 물론 『옆집의 영희 씨』에 실린 작품들은 2003년부터 발표해 온 것이지만 2010년 이후 급격하게 변화하고 있는 범지구적이고 사회적인 담론을 들여다보았을 때도 유의미한 영역들을 충분히 도출해 낼 수 있다.

 

정소연 작가는 한 인터뷰에서 SF라는 장르가 ‘지금 여기’를 가장 아름답게 이야기할 수 있는 장르라고 이야기 했다. 작가의 말대로 SF는 경계를 허물고 통찰과 인식의 방법을 확장시켜 지금 여기의 현실 뿐 아니라 그 이면을 들여다 볼 수도 있는 제법 매력적인 장르이다. 이러한 대상에 대한 이해의 확장과 더불어 관계 맺는 방법론의 다양화가 확보된다면 여전히 이항대립의 관계로 서로를 규정하던 순수문학과 장르문학의 관계를 진전시킬 단서가 도출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것이 아직은 비록 옆집에 있는 것과 같은 모양새일지라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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텍스트릿 필진 이지용 의 글입니다.

포스텍웹진 <크로스로드> 2017.7(vol.142) SF Review에 실린 글 입니다. "옆집의 영희 씨와 함께 지내는 방법 - 정소연의 『옆집의 영희 씨』와 한국 SF의 사고실험"

 

출처 : http://crossroads.apctp.org/myboard/read.php?id=1228&s_para4=0027&Board=n99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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