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와 한국 문학의 새로운 중력들

- 배명훈의 『예술과 중력가속도』에서 나타난 상상력의 의미

 

 

 

 

중력이라는 변인(變因)

 

우리의 신체는 지구의 중력에 적응하여 진화된 결과다. 과학적인 분석을 통해 제시된 우리 주변의 객관적인 사실도 절대불변의 진리가 아니라 지구의 중력 아래서 규정된 법칙이다. 고정불변이라 인식하고 있는 시간의 개념 역시 예외가 아니다. 하지만 우리는 살아가면서 이러한 사실들을 크게 인지하지 못한다. 중력은 당연한 것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세계의 법칙을 규정하는 변인에 속하는 것인데도 말이다.

 

이는 문화예술의 영역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그 중에서도 한국 문학이라고 그 영역을 축소했을 때 그곳에 작용하고 있는 중력은 그동안 변인으로 여겨지는 것을 거부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기 때문에 한국 문학의 세계에는 순문학, 혹은 본격문학이란 것이 존재하고 장르문학으로 명명되는 수많은 형태들이 존재한다. 그리고 그것은 시대의 흐름에 따라 인지와 인식의 변화에 따라 영역의 범위를 달리할 뿐 계속되고 있다.

 

하지만 당연하게도, 당연한 것은 어디에도 없다. 그간 한국문학의 중력이라 여겨지던 것들이 언제까지고 계속되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한국문학의 범주들을 규정하던 중력들을 변인이라고 여기고 세계를 인식하는 것은 어떤 모양일까. 중력의 간섭으로부터 벗어나면 까마득한 공간에서 표류하는 것은 아닐까. 중력의 범위를 벗어나 공간을 자유롭게 유영할 수 있는 작품들이 있다면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그 단서를 우리는 배명훈의 작품들을 통해 가늠해 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

 

배명훈은 2005년 제2회 과학기술창작문예에 단편부문 수상을 통해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했다. 이후 그는 웹진을 통해 활발하고 꾸준하게 작품들을 발표하고, 발표 지면을 확장해 소위 본격문학 지면에도 SF 작품들을 발표했다. 데뷔 이후로 꾸준히 작품을 발표해 온 그는 현재까지 10여 년 동안 7권의 장편소설과 4권의 단편소설집, 그리고 다수의 앤솔로지를 출간했다. 그리고 그는 언제나 자신을 SF 작가로 규정하고 있어 그가 보여준 행보들은 고스란히 한국 SF의 영역에서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 한국문학의 중력 간섭에서 벗어난 모습을 SF를 통해서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 중에서도 가장 최근에 엮은 단편집 『예술과 중력가속도』(2016)는 데뷔작인 「스마트 D」를 비롯해 표제작인 「예술과 중력가속도」와 작가가 구분한 ‘예 시리즈’인 「예언자의 겨울」과 「예비군 로봇」을 비롯해 비교적 최근작인 「양떼자리」(2015)까지 배명훈의 작품 활동 시작부터 최근까지의 단편들을 묶어놓았다. 그러기 때문에 이 책은 배명훈이 SF를 통해 보여줬던 상상력의 실험적이고 구조적인 면모들을 확인할 수 있는 좋은 지표가 된다. 그리고 그것은 SF가 기존의 중력을 변인화 하고 새로운 중력의 기준을 부여할 수 있는 가능성과도 닿아있다고 할 수 있다.

 

 

새로운 중력, 외삽(外揷, extrapolation)

 

배명훈의 작품들이 중력의 새로운 획득이 가능하다고 여겨지는 것은, 그가 창작을 할 때 SF의 특징인 ‘외삽’의 사용이 특징적이기 때문이다. 외삽은 한정되어 있는 자료들을 토대로 제시된 한계점 이상을 추정하는 것을 의미하는 해석학용어다. 하지만 이 방법이 SF의 방법론적 특징으로 규정되었을 때는 작품 내에서 개진되는 상상력과 그로 인해 그려지는 세계의 모습들을 통해 설득력을 획득하는 방식으로 정의된다. 여기서 한정적인 자료는 현실의 법칙이나 구조들이기도 하고, 장르적 특징에 걸맞게 자연과학 내지는 인문⦁사회과학적인 논거들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언제나 객관적이고 사실에 근거한 자료들이 제시되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외삽을 위한 추정의 데이터 역시 작품 내에서 개연성을 획득할 수 있다면 얼마든지 제시가 가능하다. 사실 우리의 인지 바깥에 있는 것들은 우리가 그저 추정할 수 있을 뿐, 그 실재를 알 수는 없다는 것을 감안하면 SF의 외삽이 보여주는 상상력의 결과들을 공상(空想)이라 폄하할 이유들은 어디에도 없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리얼리즘을 기준으로 핍진성에 대한 가늠을 했을 때만 성립하는 것이다.

 

『예술과 중력가속도』에 등장하는 작품들에서 제시되는 세계들도 이와 같은 외삽의 형태로 이해해야한다. 이 책에서 추정을 위해 반복적으로 주어지는 자료는 ‘언어(言語)’다. 언제나 인간의 관심사에 존재해 오면서 다양한 변용을 통해서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이후로도 다양하게 확장될 소통과 관계 맺기의 근본적인 방법론으로서의 언어 말이다. 그러기 때문에 작품집에서는 다양한 언어의 형태가 등장한다. 기술의 발달과 세계의 영역이 확대되면서 언어를 대하는 개념들이 조금 달라지고(유물위성), 인공지능이나 기술의 발달로 인해 언어 사용 방식이 달라진 것(스마트 D, 예비군 로봇)과 같은 변화가 있지만 근본적으로는 언어에 대한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인간 대 인간의 언어만이 존재하는 것도 아니고(예언자의 겨울, 조개를 읽어요), 매니악한 사람들 간의 일종의 사인(티켓팅 & 타겟팅)도 포함된다. 뿐만 아니라 예술로 전달되는 언어(예술과 중력가속도)까지도 섭렵하고 있다. 게다가 이 언어들은 지표의 역할을 충실히 담당하고 있기 때문에 세계관을 형성하는 골자가 되면서도 작품 내에서의 사건들을 객관적으로 전달할 수 있게 하는 매개가 되기도 한다. 이야기에서 나타나는 사건들은 이 언어를 통해 전달되고, 정제되어 지표로 제시된다. 그곳에는 감정이 과다하게 몰입할 공간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객관적으로 주어진 지표 내에서의 가능성 여부에 대한 판단이 충실하게 수행된다.

 

그러기 때문에 작품에서 나타나는 공간은 상호확증파괴(MAD)가 시작된 세계의 종말 시점에 바다 밑을 부유하고 있는 핵잠수함이거나(예언자의 겨울), 몇 달 동안 정체를 알 수 없는 실험을 위해 바닷속을 떠 도는 잠수함(티켓팅 & 타겟팅) 혹은 우주에서 마주하는 알 수 없는 유물(유물위성)이거나 개발을 위해 떠한 화성(예비군로봇)으로 나타난다. 공간의 한정성에 대한 설정은 배명훈이 대표작 『타워』(2009)를 비롯해 여러 작품에서 사용하고 있는 방식이다. 이러한 공간의 제한은 그 안에서 제시되는 법칙들만으로도 외삽의 추정을 안정적으로 획득할 수 있게 해주기 때문에 오히려 상상력의 범위를 확장시키는데 효과적인 방법론이라고 할 수 있다.

 

더욱이 배명훈이 가지고 있는 전문분야(국제정치학 전공, 연구원 경험)의 특징적 면모들은 외삽에서 제시되어야 하는 법칙들이 무엇인지를 명확하게 간파하고 있다. 이러한 그의 전문적인 시각은 특히 구조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고, 논리들이 작품의 세계를 지탱하는 중심축이 될 수 있게 함으로써 상상력에 의해 창조된 세계의 안정성을 극대화 시킨다. 뿐만 아니라, 작은 결함에 의해 구조가 붕괴되고, 사건이 확장되어 개인의 문제로 돌아오는 서사의 개연성 역시 제공한다. 이러한 바탕이 있기 때문에 외삽이 힘을 얻고, 그걸 토대로 지금, 여기의 이야기가 애소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 너머의 이야기를 자유롭게 할 수 있는 것이다.

 

문학이 지금, 여기를 직시함으로 인해 인간의 삶과 그것을 구성하고 있는 관계들을 밝히는 예술의 형태라고 한다면, 외삽을 통한 상상력으로 그 너머를 지향하는 SF의 이야기 방식 또한 현대적 의미로 적합하다고 할 수 있다. 외삽을 통해 새롭게 획득한 중력으로 상상력의 범위를 확대하고 달에서 활동하던 무용수의 예술 같이 지금까지와 다른 형태의 움직임을 보이는 곳까지 도달하는 셀레스철 스토리(celestial story)가 된다면 그것은 낭시(Jean Luc Nancy)가 말한 외존(外存, ex-position)으로 설명되는 해석의 방식이 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상상력의 가속도를 허하라

 

배명훈은 언제나 과감하고 자유로운 상상을 통해 세계를 만들고 이야기 한다. 그의 상상이 과감하고 자유로울 수 있는 이유는 세계에 대한 새로운 상상이나 접근방법의 차이를 전제하기 때문이다. 전혀 새로운 세계에 대한 이야기를 하게 되면 그전까지 우리에게 당연한 것처럼 작용하던 중력 또한 의미가 없어진다. 작가가 만들어 놓은 세계에 작용하는 새로운 중력을 이해하고, 그를 통해 새롭게 규정되는 세계의 법칙들에 접근하게 되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맥락을 공유하지 않으면 작품에서 그리고 있는 세계가 무엇인지를 제대로 판단하기 어렵다. 이야기에 접근하지 못하고 중력에 적응하기 위한 어지러움 만 느끼다가 끝나버리는 경우가 많다.

 

이는 우리가 아직까지 변인인 중력의 영향으로부터 쉬이 벗어나고 있지 못하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지구 중력의 1/6인 달에서 하던 공연과 같은 모습의 공연을 지구에서 관람하기 위해서는 항공기가 상승과 하강을 반복하면서 중력가속도를 통해 중력의 차이를 만들어낼 수밖에 없다. 그것을 견뎌내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상상력의 가속도로 인해 발생하는 중력의 차이가 혼란을 일으킬 수도 있는 일이지만 결국 영혼은 남아 있으니 (예술과 중력가속도) 충분히 시도해 볼만한 일이다.

 

이와 같은 사실들을 감안할 때 우리는 SF 작품들을 대할 때 한국문학의 리얼리즘이라는 중력으로부터 벗어날 필요가 있다. 어떻게 벗어나야 하는가하는 것도 난제일 수 없는 것이, 중력은 절대불변의 법칙이 아니라 이 거대한 우주에서 변인에 불과하다는 것만 인지하면 되기 때문이다. 인식을 조금 바꾸면 우리가 다른 중력으로 넘어갈 수 있는 역량이 충분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게다가 상상력의 가속도를 경험해 보아야 하는 것은 아직은 그곳에 갈 수 없기 때문이 아니라, 이제 곧 가야할 곳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렇다고 건너간 그곳이 전혀 다른 세계는 아닐 것이다. 달에도 무용수는 있었고, 바다 속에서도 전술핵잠수함을 돌려 JYJ 콘서트 티켓팅을 하려는 것이 인간이다. 결국 우리는 예술을 원하고, 이야기를 원하며, 본질적으로는 그것을 통해 우리가 누구인지, 우리의 삶이 무엇인지를 들여다보고 싶어 하는 욕구로부터 멀어지기 힘들다. 그러니 우물쭈물하지 말고 상상력의 가속도를 조금 더 과감하게 허해도 될 일이다. SF를 비롯한 환상영역의 많은 서사들이 이미 만들어 놓은 중력들에서 파생되는 예술의 형태들을 통해 다양하게 의미를 발견하는 것을 기대하면서 말이다. 순수문학, 장르문학이 있는 것이 아니고 문학이 있다. 그리고 그보다 더 위에 예술이 있고, 이야기가 있다. 우리의 상상력은 그 본질적인 것들을 위해 가속도가 필요하다.

 

 

“생명(문학)의 본질이라는 것도 깊이 파고 들어가면 결국 물질(이야기)의 본성을 만나게 되는 것 같아서일까요? 무슨 말인지 저도 잘 모르겠어요. 아, 저도 몰라요.” (예비군 로봇, 258-259쪽. 괄호는 필자 수정)

 

 

 

+

 

 

텍스트릿 필진 이지용 의 글입니다.

포스텍웹진 <크로스로드> 2017.10(vol.145) SF Review에 실린 글입니다. "SF와 한국 문학의 새로운 중력들 - 배명훈의 『예술과 중력가속도』에서 나타난 상상력의 의미"

 

출처 : http://crossroads.apctp.org/myboard/read.php?id=1250&s_para4=0027&Page=2&Board=n9998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게시판 사용시 유의사항 및 업로드 팁. 텍스트릿 2020.02.10 144
공지 자유비평 게시판입니다. 발췌를 해 갈 경우 출처를 꼭 밝혀주세요. Textreet 2018.04.18 292
60 SF 연구는 새로운 세계를 만드는 것이다 Textreet 2018.04.20 316
59 옆집의 영희 씨와 함께 지내는 방법 - 정소연의 『옆집의 영희 씨』와 한국 SF의 사고실험 file Textreet 2018.04.20 416
58 우리는 읽을 수 있는가, 우리를 읽을 수 있는가 Textreet 2018.04.20 227
» SF와 한국 문학의 새로운 중력들 - 배명훈의 『예술과 중력가속도』에서 나타난 상상력의 의미 Textreet 2018.04.20 271
56 결국엔 이야기가 남게 될 것이다 - 김창규의 『우리가 추방된 세계』가 보여준 한국 SF의 이야기 가치 file Textreet 2018.04.20 576
55 『회색인간』에 대한 소고 file 텍스트릿 2018.04.20 713
54 게임 판타지와 가상현실 (1) file 텍스트릿 2018.04.20 1299
53 무협의 정의와 연구 범위에 대해 텍스트릿 2018.04.23 575
52 사랑과 돈, ‘사치’의 이중주 -로맨스에 등장하는 ‘신데렐라 플롯’의 변화에 대하여 file 손진원 2018.04.24 3576
51 로맨스, 과거부터 현재까지 (1) 텍스트릿 2018.04.25 1870
50 재미는 아집적이다. [3] 진a 2018.04.29 519
49 메타 웹소설에서 나타난 장르문학과 웹소설에 대한 인식 file 이융희 2018.04.29 1242
48 웹소설 작가 서바이벌 가이드 텍스트릿 2018.05.03 823
47 웹소설 문장 전략(1) file 텍스트릿 2018.05.05 1310
46 웹소설 문장 전략(2) file 텍스트릿 2018.05.07 725
45 로맨스, 과거부터 현재까지 (2) file 텍스트릿 2018.05.14 1094
44 작품은 플랫폼의 공짜홍보물인가 - 플랫폼은 왜 남의 노동력을 공짜로 쓰는가? [10] 텍스트릿 2018.05.21 17320
43 #웹소설_관련_이야기를_타래로1 텍스트릿 2018.06.03 271
42 SF 작가로 산다는 것(김보영 : SF 작가) 텍스트릿 2018.06.09 1243
CLOS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