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2월에 던전이라는 이름의 문학 플랫폼이 개장했다. <체공녀 강주룡>으로 유명한 소설가 박서련을 비롯해 여러 소설가와 시인, 비평가들이 모여서 만든 저 웹진은 한 달에 7000원의 구독료를 내면 그곳에 올라온 소설과 시와 비평을 읽을 수 있는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그런데 최근에 이 웹진의 정체성(?)과 관련해서 자그마한 논쟁이 발생한 거 같다. 그 논쟁이 발달하게 된 과정을 시간 순서대로 정리하자면 다음과 같다.

 

1. 던전 웹진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자신들을 유료 순문학 플랫폼으로 소개했다.

 

2. 그 뒤에 던전은 SNS 계정에서 던전에서 문학을 추구하면 안 될까?’와 같은 라이트 노벨 제목을 패러디한 문구로 자신들을 흥보했다. 이에 대해서 텍스트릿의 이지용 평론가는 SNS에서 던전이란 곳은 서브컬쳐 밈을 적극적으로 갔다가 쓰면서 던전에서 문학을 하면 안되는 걸까라고 하는데, 거기서 문학은 또 순문학이라고 한정해 놓았네.”와 같은 코멘트를 남겼다.

 

3. 텍스트릿의 이융희 팀장은 <문학과 메일링 서비스, 형태보다는 알맹이>라는 칼럼에서 차도하 시인의 메일링 서비스를 비롯해서 새롭게 나타난 여러 문학 플랫폼을 소개하면서 던전 웹진에 대해서는 초기에 청탁 텍스트의 정체성을 순문학 유료 웹진으로 한정했으며 이는 기존의 문학이 가지고 있었던 권력지형도를 오프라인 공간에서 온라인으로 이식한 것에 불과할 뿐 변화가 아니다라고 평했다. 그리고 문학이 대중에게 다가가기 위해서는 단순히 매체를 오프라인에서 온라인으로 옮길 뿐만 아니라 그 내용에도 변화가 생길 필요가 있다고 평했다.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_id=202003252048005&code=990100

 

 

4. 이융희 팀장은 그 뒤에 SNS에서 다음과 코멘트를 남겼다. “칼럼이 이야기한 것은 '인터넷'이라는 매체적 창구를 이용한 순간 "500명 내외의 문청들이나 겨우 보던 문예지" 라는 공간을 벗어나 불특정 다수에게 새로운 공간으로 보이게 되고, 고블린들에게 일을 시킨다는, 서브컬처 밈을 보여준다면서 인터넷 밈을 본격적으로 다루면서도 그 안에서 다루는 문학에 대해 '순문학'이라는 워딩을 쓰는 그 자체의 아이러니를 다루는 거다. 그러니까 정확히 말하자면 (자기 것이라고 생각한) 밈을 뺏긴 서브컬처 측의 분노가 아니라, 서브컬처의 밈을 잔뜩 써놓고도 '순문학'이라는 프레임을 고집하는 행태에 대한 비판이다.” https://twitter.com/StoSeller/status/1243133324861693952

 

 

5. 박서련 작가는 SNS에서 다음과 같은 내용의 설명문을 남겼다. 던전이 순문학 웹진을 표방한다고 한 것은 창립 멤버들이 등단 제도로 돌아가는 문단 문학을 지향했기 때문이다. 우리가 순문학이라는 표현을 썼을 때 그것은 우리가 장르문학보다 우월하다는 의미를 담은 적은 없다. 우리는 순문학도 여러 장르문학 중에 하나라고 생각한다. https://twitter.com/fancyshortcake/status/1243110753013358592

 

 

개인적으로는 어째서 이런 논란이 일어나고 있는 것인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이지용 평론가의 코멘트부터 봐보자. “던전이란 곳은 서브컬쳐 밈을 적극적으로 갔다가 쓰면서 던전에서 문학을 하면 안되는 걸까라고 하는데, 거기서 문학은 또 순문학이라고 한정해 놓았네.” ‘던전이 순문학 웹진을 표방한다는 것은 던전이 문학의 범주를 순문학으로 한정지어놓았다는 것하고 동일한 의미를 지닐 수 없다. 누군가가 순댓국밥 집을 차렸다고 해서 그게 국밥의 범주를 순댓국밥으로 한정짓는 것이라고 할 수 있나? 그냥 자기가 잘 하는 음식을 갖고 식당을 차린 의미밖에 없다. 그리고 누구한테나 자기 가게에서 어떤 음식을 차릴지 메뉴를 한정지을 자유는 있다. 그건 자기 식당 바깥에 있는 무수한 음식 취향을 무시하는 일이 아니다. 다양성을 위해서 끓일 줄도 모르는 설렁탕을 메뉴에 올려놓고 손님들한테 어설픈 음식을 대접하는 게 이상한 일 아닌가? 현실적으로 던전의 작가들이 순문학(혹은 문단 문학) 플랫폼을 만든 것은 그것을 올릴 만한 다른 매체가 없기 때문이다. 문단 문학에는 브릿지나 거울이 없기 때문이다.

 

 

한 가지 사실을 짚고 가자. 던전을 대표하는 필진인 박서련이 문단 작가이기도 하지만 장르소설 작가이기도 하다는 것 말이다. 박서련은 2018년도 4월에 출간된 <서로의 나라>라는 앤솔로지에 <오직 운전하는 이들만이 살아남는다>라는 단편을 실었다. 저 단편은 포스트 아포칼립스 좀비 소설로 정말로 장르적인 글이다. 장르적인 설정을 차용해서 쓰인 문단 문학이 아니라 진짜로 장르소설이다. '문단 문학은 걸어다니는 소설이고 장르 문학은 뛰어다니는 소설이다'라는 정세랑의 표현을 빌려서 설명하자면 <오직 운전하는 이들만이 살아남는다>는 주인공이 문자 그대로 미친 듯이 뛰어다니고 차를 몰면서 자신을 공격하는 좀비와 인간으로부터 도망다니는 내용이다. 김언수의 <설계자들>이나 구병모의 <파과>가 장르 소재를 가져다가 쓴 문단 문학이라면 박서련의 <오직 운전하는 이들만이 살아남는다>는 순수한 의미에서 장르소설이고 좋은 장르소설이다.

 

 

박서련은 좋은 장르소설을 쓸 능력이 있다는 게 이미 증명되어 있다. 그런데 어째서 던전에는 장르 소설을 올리지 않는 걸까? 답은 그럴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장르소설을 인터넷에 올리고 싶으면 굳이 사이트를 하나 만들 필요가 없다. 박서련이 인터넷에 <오직 운전하는 이들만이 살아남는다>의 후속작을 발표할 생각이면 그냥 브릿지에 올리는 편이 나았을 것이다. 이미 수많은 프로 작가들이 브릿지에 유료나 무료로 글을 올리면서 독자들을 만나고 있고 그런 작품들은 추후에 종이책으로 출간되고 있다. 심지어 SF 어워드에서는 프로 데뷔를 하지 않은 작가들이 브릿지에 올린 단편이 기성 작가들을 재치고 상을 탄 경우도 있다. 이렇게 시스템이 다 갖춰져 있는데 뭐하러 사이트를 하나 만든 말인가?

 

 

현재 던전에는 송한별을 비롯해서 SF 소설을 연재하고 있는 작가들이 있다. 아마 브릿지에 SF 소설을 올리고 있는 작가들도 던전에 투고해서 필진으로 합류할 수 있는 이들이 많을 것이다. 브릿지에 올라가는 소설들은 던전에 올라갈 수 있다. 그런데 그 역은 가능할까? 지금 던전에서 연재되는 소위 순문학소설들이 브릿지의 공모전에서 입상해 황금가지 출판사에서 출간되는 일이 가능할까? 현실적으로 힘들 것이다. 정세랑의 표현을 다시 인용해서 뛰어다니는 소설들을 발굴하려고 만든 사이트에서 걸어다니는 소설이 발탁될 일은 드물기 때문이다.

 

장르문학을 위한 인터넷 플랫폼은 존재하고 있지만 문단 문학을 위한 인터넷 플랫폼은 사실상 없는 형국이다. 그래서 던전이 만들어졌다. 그렇다면 던전에서 순문학이라는 명칭을 쓴 것이 문제가 될 여지가 있는가? ‘순문학통속문학의 이분법적인 구도를 강화시키고, 특정한 집단에 권력을 가져다주는 표현이기 때문에?

 

 

일단 순문학’, ‘제도권 문학’, ‘문단 문학같은 단어의 의미부터 정리해보자. '순문학'이나 '본격 문학'이라는 용어는 지나치게 정의가 불분명하고 가치 편향적이라는 이유에서 쓰지 말자는 말들이 많이 나온다. 이때 그 대안으로 흔히 언급되는 단어들로 '주류 문학', '일반 문학', '제도권 문학', '문단 문학' 등이 있다. 여기에서 '주류 문학'이라는 표현은 영미권에서 주로 쓰이는 단어로 어슐러 르 귄, 조지 마틴, 스티븐 킹 같은 이들의 글을 읽다가 보면 흔하게 접할 수 있는 표현이다. 하지만 문단 문학을 '주류'로 상정하고 장르문학을 '비주류'로 상정하는 것 자체가 소모적인 인정 투쟁의 뉘앙스를 풍기기 때문에 국내에서 전면적으로 애용받지는 못하고 있다. '일반 문학'이라는 단어는 가치중립적인 뉘앙스를 지니고 있기 때문에 무난하게 쓰임직하지만 문단 문학이 그 자체로 매우 특수한 집단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저 단어가 담지 못하는 맥락이 분명히 존재한다. 남은 것은 '제도권 문학''문단 문학'이다. 개인적으로는 이 중에서 문단 문학이라는 표현이 더 정확하다고 생각한다. 문단 문학이란 무엇인가? 답은 문단 문학은 문단 문학이라는 것이다. 문단이라는 막연한 집단에서 가장 중심적으로 담론을 주도하고 상징 자본을 배분하는 이들에 의해서 정의되는 것이 문단 문학이다.

 

 

제도권 문학이라고 하면 제도적인 지원을 받는 문학이라는 뜻이 담겨 있다. 문예진흥기금이라는 형식으로 정부가 문예지에 주는 돈을 예로 들면 설명하기 편할 것 같다. 근데 현실적으로 문예진흥기금을 받는 모든 문예지가 문단 문학의 담론과 연결되어 있는 것은 아니다. 대부분의 문예지는 작가들한테 이후에 작품을 발표할 지면마저 제공하지 못하고 있다. 보통 문단 문학의 작가 지망생들이 등단을 하기를 바라는 지면은 제도적으로 지원을 받는 문예지 전체가 아니라 작가한테 지속적으로 작품 활동을 할 수 있는 문예지이고, 문단 문학의 담론에 흐름을 주도하는 문예지다. 문단 문학의 독자층 역시 마찬가지다. 문단 문학의 독자층을 자임하는 소비자가 있다면 그는 지방지 신춘문예로 데뷔를 해서 문예지가 없는 중소 출판사에서 작품집을 낸 작가의 소설을 읽는다기보다는, 문학동네 젊은 작가상 수상집에서 배명훈이나 김이환의 수상작을 읽고 문학과 지성사에서 출간된 <첫숨>이나 <디저트 월드>를 읽을 가능성이 더 높을 것이다(장르 작가들이 문단 지면에 글을 실으면 정체성이 변한다는 뜻이 아니라 문단 문학 독자들의 소비 패턴이 그렇다는 얘기다). 문단 독자층을 움직이게 하는 것은 '훌륭한 문학'이라는 상징 자본이고 그것은 문예지 체제를 통해 유지된다. 그런데 지면이 절대적으로 적다. 그 한정된 지면 안에서 분배되는 상징 자본에 소설가, 비평가, 독자들이 죄다 끌려다닌다. 이상문학상이 작가들한테 수상작의 출판권을 요구했거나 문학동네 젊은 작가상이 젊은 비평가들한테 심사료를 한 푼도 주지 않고 100편 가까이 되는 단편 소설을 읽게 시킨 것은 근본적으로 저 상징 자본 때문에 일어날 수 있던 일이다. ‘문단의 흐름안에 들어가기 위해서 작가들과 비평가들은 저러한 희생을 감수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던전에 있는 비등단 작가들은 제도권 문학문단 문학중에서 어느 범주에 들어가는가? 제도권 문학이라고 부를 수는 없다. 그들은 등단을 하지 않았고 문학 제도 바깥에 있기 때문이다. 문단 문학이라고 부르기도 사실 애매하다. 문단 문학이라는 것은 결국에 문예지에 단편을 실고 비평을 받으면서 상징 자본이 분배되는 시스템 속에서 생산되는 문학을 가리킨다. 문예지에 글 한 번 실어본 적 없는 던전 작가들 대부분은 저 범주에 속하지 않는다.

 

 

제도권 문학이나 문단 문학이라는 표현은 결국에 특정한 시스템을 가리키는 말이다. 던전의 작가들은 그 시스템 바깥에 있다. 굳이 말하자면 이들은 문단 문학을 읽고 문단 문학 스타일의 글을 쓰고 있지만 문예지에 글을 실은 적도 없고 제도적으로 지원을 받은 적도 없는 작가들이라고 할 수 있다. 때문에 이들이 우리는 순문학을 표방한다라고 말했을 때 그것은 문학성이라는 상징 자본을 분배하는 특정한 권력 체계를 가리키는 게 아니라 그냥 문학적인 스타일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던전에 올라온 작품들의 잠재적 소비자는 소위 순문학 독자들일 테고, 던전은 자신들을 소개할 표현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순문학이라는 표현을 쓴 것일 거다.

 

 

물론 저 순문학이라는 단어 선택이 거슬린다고 할 수는 있다. 그런데 그렇다면 그들이 대체 어떤 대체어를 쓰면 적절할지 제시해줬으면 좋겠다. 제도권 바깥에서 등단하지 않고 살 길을 모색하는 사람들한테 자신들이 제도권 문학을 지향한다고 말하기를 바라는 것인가? 교육 제도 안에서 전파되는 문학적인 이데올로기를 따랐다고 해서 제도권 작가라고 부른다면 국문과를 나와서 판타지 소설의 문학성을 주장한 이영도도 제도권 작가이지 않는가? 문예지에 글 한 번 실어본 적 없는 사람들한테 자신들이 문단 문학을 지향한다고 말하기를 바라는가? 던전을 만든 작가들 대부분은 등단도 못했고 그저 자기들 사비 털어서 사이트를 만든 것일 텐데 어째서 그들이 순문학이라는 이름을 올린 순간에 등단 제도를 통해서 구축되는 권력 질서의 프레임을 강화시키는 게 된다는 말인가?

 

 

던전에서 송한별과 정재민의 소설이 ‘SF’라는 장르로 분류된 것을 두고 문제가 있다고 말하는 의견도 있다. 솔직히 말하면 어처구니가 없는 심정이다. SF 작품에 대해서 SF라는 라벨이 붙는 것은 차별이 아니라 편의를 위한 조치다. SF를 찾는 독자들을 위한 일인 것이다. 그리고 SF 독자들이 SF라는 장르에 끌리는 것은 그들이 문단에서 만들어낸 순문학 vs 장르문학의 프레임에 갇혀 있기 때문이 아니라 그들이 그냥 SF를 좋아하기 때문이다. ‘장르 간의 구분이 순문학이라는 권력에 의해 파생된 것이라는 식의 생각은 사실 장르 팬덤을 지워내는 매우 오만하면서도 천진난만한 발상이다.

 

 

이융희 팀장은 경향신문 칼럼에서 문학이 대중한테 다가서기 위해서는 그것이 전달되는 매체에만 변화를 줄 게 아니라 그 콘텐츠가 대중 친화적인 것이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라는 말을 남겼다. 이어서 그는 SNS에서 다음과 같이 논의를 전개시켰다.

 

 

제가 기획에 대해서 납작하게 하지 말라, 또는 무의미하다고 한 것이 아니라, 매체적 형식을 고민하는 것보다 조금 더 컨셉적 기획을 고민하라고 했고, 그 과정에서 차도하 시인의 예시를 초반에 배치했습니다. 솔직히 텍스트를 읽고 거기에 좋은 의미가 있으면 인터넷 창구에서 읽어줄 거란 인식은 나이브 하지 않나요? 그래서, 매체 외부의 텍스트적 고민이 이루어졌다구요? 전 솔직히 크게 동의 못 하거든요. 그건 인터넷 매체에 맞는 글쓰기를 고민하는 사람들에 대한 모욕 아닌가요.” https://twitter.com/StoSeller/status/1243129139738980352

 

 

간략히 요약하면 1. 글이 좋다고 해서 사람들이 인터넷에서 그걸 읽어줄 것이라는 발상은 순진하며 2. 현재 던전에 올라와 있는 작품들이 인터넷 매체에 맞는 글쓰기를 시도했다고 하는 것은 실제로 그러한 일을 하고 있는 이들한테 모욕적일 만큼 미흡하다는 것이다.

 

 

일단 한 가지 분명히 하자. 던전이 인터넷 시대에 얼마나 적합한 매체인지를 평가할 때 그 비교 대상은 문피아나 카카페 같은 웹소설이 아니라 거울이나 브릿지 같은 단편 소설 웹진이 되어야 한다. 웹소설하고 단편 소설은 아예 지향하는 방향과 형식이 다르기 때문이다. 웹소설의 기준으로 보자면 거울이나 브릿지에 올라오는 단편들도 가독성이 현저히 떨어지고 쉽게 몰입되지 않는 작품들일 수 있다.

 

 

김보영은 거울 웹진에 <몽중몽>이라는 작품을 발표했었다. <몽중몽>은 주인공이 꿈을 꾸며 의식의 흐름에 따라 환상적인 풍경이 계속 펼쳐지는 구성을 띠고 있다. 꿈의 세계이기 때문에 논리적인 질서가 존재하지 않고 그 때문에 명쾌하게 이해될 수 있는 내용은 아니다. <몽중몽>인터넷 시대에 독자들한테 다가갈 대중 지향적인 문학을 고민해서 나온 결과물이 아니라는 것은 자명해 보인다. 거울 웹진은 그런 문학을 발굴한다는 취지를 가진 적이 없을 것이다. 하지만 거울 웹진은 작가들한테 자신이 쓰고 싶은 글을 쓸 매체를 제공했고 성과도 거두었다. 2007년을 시작으로 해서 장르문학 앤솔로지가 출간되기 시작했을 때 그 지면을 채운 것은 대부분 거울 필진들이었다.

 

 

김보영이 웹진 크로스로드에 발표한 <땅 밑에>는 어떤가? 이 소설이 처음 발표되었을 때 독자들은 대혼란에 빠졌다고 한다. SF의 독법에 적응되지 않은 일반 독자들만을 말하는 게 아니다. 크로스로드의 과학자들 역시 소설의 내용을 이해하지 못해서 자기들끼리 열심히 상의를 했고, 심지어 거울 웹진에 소속된 장르문학 작가들마저 이 소설에 묘사된 세상이 어떤 형태인지를 두고 논쟁했다고 한다. <땅 밑에>가 대중 친화적인 글이었을 리는 없지만 인터넷 매체에 글을 올려서 작품 생활을 이어간 김보영은 한국 SF를 대표하는 작가가 되었다.

 

 

거울 웹진이 처음에 생겨났을 때 인터넷 시대에 발맞추는 대중 지향적인 문학의 정체성을 고민했을 가능성은 적었으리라고 본다. 차라리 이들을 견인한 것은 자신들이 가치 있는 문학을 한다는 믿음이었을 것이고 이들의 활동 영역이 종이 지면으로 확장된 것 역시 외부에서 그들의 성과를 알아봐줬기 때문일 것이다. 어쩌면 인터넷에 좋은 글을 올리면 알아봐줄 것이라는 발상이 순진할지 모르지만 그들은 성공했다. 중단편 소설 위주의 장르 문학을 표방하는 거울 웹진이 처음 출범했을 때 그들을 둘러싼 환경은 던전이 처한 상황 따위하고는 비교도 안 될 만큼 열악했겠지만 거울이 있기 때문에 장르문학 앤솔로지가 나올 기틀이 형성되었고 이후에는 브릿지 같은 플랫폼도 나오게 되었다.

 

 

이융희 팀장이 던전에 대해서 대중 친화적인 문학에 대한 내용적 고민이 필요하다고 한 것에 동의하기 힘든 게 이 지점이다. 던전에 올라온 소설들 중에선 아예 난해한 구성을 취하는 소설도 있었지만 그래봐야 <몽중몽>보다 더 난해하다고 보긴 어려웠기 때문이다. 인터넷 웹진에서도 당연히 난해한 문학을 실험할 수 있고, 좋은 문학을 읽고 싶다는 믿음 아래에서 독자들이 모일 수도 있다. 그것을 두고 단순히 순진하다고 하는 것은 단편 소설 매체를 웹소설의 기준으로 무리하게 평가하는 게 아닌가 싶다.

 

 

 

물론 던전 웹진에는 여러 종류의 문제가 산재해 있다. 나는 던전의 무료 체험 기간이 끝난 뒤에 정식으로 구독을 신청한 적이 없다. 아무리 생각해도 던전을 구독할 만한 동기를 부여 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내가 보기에 던전의 문제는 두 가지로 요약될 수 있다.

 

 

1. 던전은 필진들의 작품이 일주일에 한 번씩 업로드되는 구성을 취하고 있다. 웹툰이나 웹소설이 그렇듯이 말이다. 근데 문제는 던전에 올라오는 소설들은 장편 소설도 아니고 단편 소설인데, 그 일부분을 조금씩 떼어내서 올리고 있다는 것이다. 웹툰이나 웹소설은 한 회의 분량 안에서 자체적인 기승전결의 이야기 구조를 지니고 있기 때문에 사람들이 한 회를 볼 때마다 만족감을 느끼고 다음 회를 기다릴 수 있다. 명확한 이야기 구조가 있으니 독자들이 앞서 연재된 내용을 기억할 수 있고, 장기 연재를 견딜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던전에 올라오는 소설들의 1회 연재분은 독립적인 구조를 지니고 있지 않다. 아마도 몇 주 정도의 분량이 쌓여야 이 내용을 한 번에 읽고 이해할 수 있을 텐데 독자 입장에서 이것을 장기적으로 구독해야 할 이유가 있을까? 던전이 웹소설처럼 장편 소설을 장기 연재하는 플랫폼으로 기획되지 않았다면 브릿지나 거울처럼 단편 작품 위주로 활성화된 웹진과 비교해볼 수도 있다. 브릿지나 거울에서 올라오는 단편들은 웹소설보다 종이책의 형식을 지향하고 있으며 독자들은 그 단편의 전문을 한 호흡에 처음부터 끝까지 읽을 수 있다. 하지만 던전은 말했듯이 단편 소설을 조금씩 올리는 구조를 취하고 있다. 장편 소설에 걸맞는 형식으로 단편 소설을 연재하고 있는 것이다.

 

2. 여기에 더 나아가서 '쓰는 사람''읽는 사람'이 엄격하게 구분되어 있는 던전의 구조 자체도 아쉬운 부분이 있다. 문단 문학의 특징은 소비층과 창작층이 거의 일치하는 구조를 지니고 있다는 것이다. 문단문학을 사 읽는 것은 작가 지망생들이지만 등단 제도 때문에 기성 작가와 아마추어의 차이가 극명하게 나뉜다. 그래서 '등단'을 시켜줄 수 있는 집단에 문학 권력이 발생하고 그 문학 권력을 중심으로 신인 작가나 습작생들을 향한 착취가 발생한다. 던전과 같은 웹진이 등장하면서 아마추어와 프로의 격차가 줄어드는 순기능이 생겨날 것이라고 기대했지만 현재로서는 그런 방향성을 취하고 있지는 않다. 황금가지가 런칭한 웹진 브릿지는 장르문학에서 기성 작가외 지망생의 경계를 무너뜨리는 데 성공했다. 이산화, 김성일, 심너울 같은 작가들이 아마추어의 입장에서 올린 글들이 웹상에서 인기를 끌고 종이책으로 출간한 다음에 기성 SF 작가들을 재치고 SF 어워드에서 상을 받는 경우까지 생긴 것이다(물론 이는 SF가 문단문학보다 더 합리적인 문학상 제도를 갖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문단 문학에도 저러한 방식의 신인 등용문이 생기면 등단 제도로 인해서 생기는 병폐의 상당 부분이 사라질 것이라고 생각하는데(당장 천재 작가들이 줄줄이 나타나진 못한다고 해도 일단 작가 지망생들한테 독자와 작품으로 만날 기회를 주고 장기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던전은 그런 플랫폼을 지향하고 있진 않다. 던전의 소설가들은 등단을 하지 않은 이들이 많은 거 같은데, 이 플랫폼 자체가 프로와 아마추어의 경계를 허물고 제도권 바깥에서 독자들과 만날 방법을 모색하려는 시도로 보이지만 그럴 거면 아예 브릿지나 거울처럼 작가를 양성하는 식의 개방적인 플랫폼을 지향했어야 하지 않나 생각한다. 직설적으로 말해서 한 달에 7000원씩 내가면서 몇 주에 걸쳐서 조금씩 올라오는 던전의 단편 소설을 읽느니 차라리 신문사 홈페이지 들어가서 신춘문예 당선작 읽는 게 돈도 안 들고 기다릴 필요도 없고 더 낫지 않나? 독자들한테 던전이라는 웹사이트에 관심을 가질 메리트를 만들려면 차라리 소비자 참여형 플랫폼으로 만드는 게 낫지 않았을까 싶다.

 

 

브릿지에서는 아마추어 작가라도 글을 올리면 독자들한테 덧글을 받을 수 있고 편집부 우수작에 선정될 수도 있다. 거울 웹진에서는 독자들이 올린 글을 심사해서 우수작을 선정하고 거울 필진에 정식으로 합류할 권한을 주기도 한다. 그렇게 우수작으로 선정된 작품들은 SF 어워드에서 기성 작가들과 동등한 자격으로 평가를 받게 된다. 언제든지 아마추어 독자에서 프로 작가로 올라갈 수 있는 유연한 구조를 지니고 있는 것이다. 거울 웹진에서는 니그라토라는 닉네임을 쓰는 특정한 사용자가 <히키코모리 방콕기>라는 수기 형식의 소설을 써서 독자 단편 우수작을 탄 적이 있다. 저 작품은 장르적인 색채가 조금도 들어가지 않은 사실주의 소설이다. 하지만 거울은 환상 문학을 표방하는 사이트라는 것을 명시해놓았음에도 저 작품을 심사해서 상을 주었다. 역설적이게도 당신이 사실주의 소설을 쓰는 작가 지망생일 때 피드백을 얻을 수 있는 인터넷 사이트는 거울뿐이다. 과거에는 문장 웹진에서 아마추어 작가들이 글을 올리면 평가를 받을 수 있는 게시판이 있었지만 폐쇄된 지금은 거울밖에 없다. 문예진흥기금을 타먹는 문예지들 중에서 아무도 하지 않는 일을 거울이 하고 있는 것이다.

 

 

던전 웹진이 정말로 문단 제도의 부실한 부분을 때우기를 원했다면 등단 제도로 인해서 고장 난 작가 양성 시스템을 대안하는 형식을 지향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물론 그들한테 한국 문학의 고장 난 부분을 고쳐야 할 공익적인 의무는 없지만, 기존에 나와 있는 성공적인 인터넷 단편 소설 플랫폼인 거울과 브릿지에서 주요한 기능 중에 하나가 새로운 작가를 키워내는 것이라는 걸 생각하면 던전이 단편 소설 플랫폼을 만드는 과정에서 참고할 여지가 있었지 않나 생각한다.

 

 

개인적으로 던전 웹진에 대해서 아쉬운 부분은 웹소설과 같은 대중 친화적인 문학을 지향하지 않고 있는 점이 아니라 브릿지나 거울과 같이 이전에 나온 단편 플랫폼을 참고하지 않은 부분이다. 까놓고 말해서 인터넷에서 공짜로 기성 작가들의 소설을 읽을 수 있는 환경에서 자신들의 매체가 어떤 의의를 지닐지, 과거에 생겨나서 지금까지 지속되고 있는 단편 소설 플랫폼은 어떤 구조를 취하고 있는지에 대해 연구한 흔적이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던전 웹진이 자신을 순문학이라고 소개했다고 해서 그게 논란으로 번진 지금 상황에 대해서는 동의하기 힘들다. 이융희 팀장은 트위치 강의에서 판타지 소설은 게임의 모방이 아닌 문학이다라는 입장을 가진 이영도와 게임을 소설로 옮기고 싶어서 판타지 소설을 썼다라고 말한 이상균, 이경영의 입장을 비교하면서, 이영도에 대해 순수문학으로서의 판타지를 추구하는 분도 계시죠.”라는 말을 했다. 자신이 순수문학이라는 표현으로 판타지 작가를 정의하는 것은 괜찮지만 등단도 안 한 작가들이 사비로 플랫폼 만들면서 순문학이라는 단어 선택을 한 것은 큰 문제라는 말인가? 납득하기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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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고소설 속 여성 원귀 전혜진 2019.03.31 5028
19 조선왕조실록과 귀신 관련 키워드 file 전혜진 2019.04.01 773
18 15세기(조선 전기)의 여성 원귀들 전혜진 2019.04.21 478
17 16세기(조선 중기)의 여성 원귀들 전혜진 2019.04.21 178
16 17세기(조선 중기)의 여성 원귀들 전혜진 2019.04.21 403
15 전삼혜 - '분명함'과 '불분명함'을 통해 들여다본 작품 세계 아서고든핌 2019.05.18 347
14 문단과 언론의 장르 문학 지워내기에 대하여 아서고든핌 2019.05.18 625
13 (단신/번역) 중국, 시대극을 금지하다 -〈연희공략〉관련 〈베이징일보〉 사설 번역- 서원득 2019.08.20 440
12 순문학이란 없다 (1) - 순문학이란 통치 이융희 2019.09.04 709
11 순문학이란 없다 (2) - 독해 불가능성 이융희 2019.09.07 314
10 순문학이란 없다 (3) - 문학이라는 부정신학 이융희 2019.09.07 555
9 드라마 랑야방과 타로 카드의 코트 카드에 대한 분석 전혜진 2019.09.14 357
8 판타지 장르가 한국에 받아들여진 방식 - 이영도와 이융희 아서고든핌 2019.12.24 615
7 (단신/번역) <국제 게임과 미래 10년의 중국문학>-최근 중국SF 비평 중 하나 서원득 2020.02.02 165
6 창조주-피조물의 전복 (서석찬 장편소설 『에덴』) 제야 2020.02.08 183
» 던전을 둘러싼 논쟁에 대하여 - 인터넷에서 순문학을 추구하면 안 되는 걸까? 아서고든핌 2020.03.27 558
4 누더기가 된 주장을 꿰메며 - '던전 논란' 프레이밍 제기에 부쳐 이융희 2020.03.27 401
3 인터넷에서 순문학을 추구하면 안 되는 걸까? 2 - 이융희와 위래에 대한 답변 [1] 아서고든핌 2020.03.30 601
2 (번역) 해설 | 홍콩무술영화, 주연 이소룡, 성룡, 이연걸, 견자단 : 당신이 알아야 할 모든 것 서원득 2020.07.02 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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