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론

 

1990년대와 그 이전에도 간헐적으로 과학소설에 관한 연구가 있었지만, 과학소설이 본격적으로 연구 대상이 되고 과학소설 관련 저서가 나오기 시작한 것은 2000년대에 들어서였다. 특히 고장원, 박상준, 전홍식 등 1970~1980년대부터 SF를 즐겨온 이들이 한국 SF의 자료를 수집하고 정리하면서 100년에 걸친 과학소설사를 정리하고 소개하려는 여러 시도가 있었고, 그 결과물들이 블로그, 웹진, SF 커뮤니티, 각종 행사 등을 통해 SF팬과 대중에게 소개되기 시작했다.#1

그러나 그동안 SF팬들이 주도해 시도되었던 한국 과학소설사 서술은 여러 측면에서 한계가 있었다. 먼저 지적되어야 할 것은 그동안 한국 과학소설사 서술이 한국 소설사에 얽힌 문학사적․역사적 맥락을 충실히 반영하지 않은 채 진행되었다는 점이다. 근현대소설사와 근현대사의 기존 연구 결과와 최신 연구를 반영해 실시간적으로 갱신하고 이를 공개하는 노력이 지속적으로 이루어지지 못했으며, 어떤 경우는 발표한 지 채 1년도 지나지 않아 최신 연구로 새로운 사실이 밝혀졌지만 수정되지 않은 채로 남아 있거나,#2 근대소설사에 대해 오해하는 부분도 있었다.#3

또한 근대에 수입되었던 다른 장르소설 – 특히 추리소설, 탐정소설 – 과 달리 과학소설 계열에서는 창작이 활성화되지 못했던 이유에 대해 명확히 규명하지 않으려 한 것도 아쉬운 일이었다.#4 이 글은 기존의 한국 과학소설사에서 자세히 다루지 않은 채 넘어가곤 했던 문제, ‘왜 1910년대-1920년대 근대소설의 태동기에 한국에서는 과학소설이 활발하게 번역, 창작되지 못했는가’의 문제를 본격적으로 다뤄보려 한다. 본론에서는 크게 ①소설의 대중성 문제 ②다른 장르소설의 상황과 비교 ③과학 대중화의 문제 등을 통해서 1900~1920년대 한국 과학소설사를 살펴보도록 하겠다.

 

 

0. 장르 명칭의 유실, 낯선 ‘소설’

과학소설이 대중화에 실패해왔던 것은, 김내성 등 추리소설가들의 활약에 힘입어 대중소설 시장에 성공적으로 안착했던 추리소설의 상황과 비교되곤 한다.#5 과학소설의 역사는 추리소설보다도 더 앞서 있다. 1908년에 출간된 『철세계』#6부터 벌써 ‘과학소설’이라는 명칭이 등장하는 데 비해, 추리소설은 1911년 『쌍옥적』에서야 비로소 ‘정탐소설’로 대중 앞에 선보이기 시작했다. ‘과학소설’이라는 명칭은 1926년에 창간한 대중 지향의 과학-취미 잡지인 『별건곤』에서 H. G. 웰즈의 『타임 머신』이 번역 연재될 때도 등장한다.#7 그렇다면 추리소설보다 긴 역사를 지닌 과학소설은 어째서 그 명칭조차도 유실된 채 대중화에 계속 실패했던 것일까? 이는 과학소설의 창작뿐만 아니라 대중의 ‘소설’에 대한 인식 자체도 일본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뒤떨어진 상태였다는 데 그 문제의 핵심이 있다.#8

실제로 이해조는 『매일신보』의 지면을 통해 신소설의 작법을 이해하지 못하는 독자들에게 직접 자신의 소설관을 피력하기도 했는데, 당시의 정황을 살펴보면 대중 독자가 아직 ‘소설’을 낯설게 느꼈으며, ‘소설’의 특징과 구조를 잘 이해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9 이와 달리 일본은 소설이라는 개념을 한국보다 먼저 받아들이면서 빠르게 창작소설을 생산하기 시작했고, 과학소설가도 여럿 등장하기 시작한다.#10 이러한 차이는 어디서 비롯했을까?

이 수수께끼는 일제강점기에 한국에서 ‘소설’과 ‘대중소설’, ‘장르소설’이 얼마나 대중화되었는지를 살펴보면 자연히 풀리게 된다. 다시 한 번 정답부터 말하자면, ‘한국과학’과 ‘한국소설’은 일제강점기에 ‘일반 민중’의 향유물이 아니었다는 데 수수께끼의 실마리가 있다.

 

1. ‘소설’과 ‘번안소설’의 여러 문제점

처음 SF 번안이 시작됐던 1900년대 말~1910년 말 당시에, ‘소설’에 대한 대중의 인식은 너무나 빈약했다. 대부분 신문 연재소설의 주독자층은 고전소설의 양식에 익숙했던 일반 독자들이었고, 이들을 상대로 ‘소설’의 취지와 목표를 인식시키고 ‘계몽’시키는 데는 상당한 시간이 걸렸다.#11

초기에 ‘소설’을 번안하고 창작하기 시작한 소설가들의 목표는 ‘흥미/취미’와 ‘계몽’의 두 마리 토끼를 잡는 것이었는데, 과학소설의 번안은 이러한 ‘소설’ 작가들이 택하기 좋은 장르였다. 특히 쥘 베른의 경우는 소설 사이사이에 과학 지식을 잡다하게 늘어놓는 방식으로 집필했는데, 이러한 특징은 번안 과정에서도 그대로 재생산됐다. 1900년대의 과학소설 번안 작품인 『해저여행기담』과 『철세계』는 각각 쥘 베른의 『해저 2만리』와 『인도 왕비의 유산』을 번안한 것으로, ‘흥미’와 ‘계몽’의 2가지 요소를 두루 갖춘 쥘 베른 소설의 특징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번안자들은 소설을 통한 ‘교육’을 실현하고자 했다. 번안 과정을 통해 조선 민중의 눈높이에 맞춘 과학 지식을 담아내고 당대의 정치적 상황(이 점에서 베른과 웰즈의 과학소설은 ‘과학’ 그 자체보다는 정치소설, 또는 유토피아/디스토피아 소설로서 수입된 측면이 짙다고 봐야 할 것이다)에 대한 자신의 입장을 직접적으로 작품에 녹여 넣으려 한 것이다. 원작인 『인도 왕비의 유산』이 프로이센의 제국주의적 팽창에 대한 프랑스의 위기의식을 반영하고 ‘착한 애국심’을 고취하려는 쥘 베른의 의지를 드러낸 작품이라면, 그 번안 작품인 『철세계』는 일한병합조약으로 식민지화된 조선의 현실에서 『인도 왕비의 유산』이 민중에게 어떻게 받아들여질 수 있을지, 어떻게 번안해서 우리의 현실로 이끌어올 수 있을지를 고민한 결과물이다.#12

 

문제는 이러한 ‘소설’의 뚜렷한 목표가 결론적으로 큰 효과를 보지 못했다는 데 있다. 근대소설 최고의 베스트셀러라 할 이광수의 『무정』만 해도 1918년부터 1924년까지, 햇수로 6년 동안 총 판매부수가 1만 부였는데, 『심청전』이 해마다 1만 부 정도 팔렸던 것에 비하면 그 역사적인 유명세에 비해 ‘대중소설’로 봤을 때는 그리 큰 판매량을 올리지 못했다는 점을 알 수 있다.#13 『무정』이 나오기 10년 전 이해조의 『철세계』와 『화성돈전』이 같은 해(1908년)에 나왔을 때 『화성돈전』이 3000부를 제작해 매진됐던 것을 이례적인 일이라고 했던 당시의 상황을 생각해보면, 이 ‘새로운 계몽적 소설’의 독자는 노동자/농민과 같은 민중이라기보다는 소수의 지식인 계층에 가까우며, 그 독자 수도 이후에 형성된 딱지본 소설의 노동자/농민 독자 수보다 훨씬 적었음을 유추할 수 있다. 일제강점기 시절에도 여전히 노동자/농민과 같은 ‘민중 독자’는 ‘소설’보다 방각본/활자본 고소설을 선호했던 것이다.

신문에 실리는 ‘소설’을 쓰는 작가들은 ‘대중독자’를 상정했지만, 신문연재소설이나 ‘소설’에 호응한 독자는 소수의 지식인 계층과 정숙한 여성에 한정되어 있었고, 진짜 대중이라 할 독자는 ‘소설’ 바깥에 있었다. “지금 가르쳐지는 문학사는 역사의 합목적적인 방향에 따라 근대문학이 세상을 일거에 장악한 것처럼 서술하고 있지만, 실제 1920~30년대 다수의 독자가 선택한 것은 염상섭이나 이상의 소설이 아니라 『춘향전』, 『조웅전』, 『추월색』 등의 고전소설이나 구활자본 신소설이었다.”#14 ‘통속소설’의 범주로 끌어들일 수 없는 ‘소설’들은 일제강점기 후기에도 여전히 대중에게 사랑받지 못했다.

또한 1910년대까지도 독자뿐 아니라 신문사에서도 ‘소설’의 개념을 완전히 확립하지 못했다. 당시의 신문을 보면 논설이나 기사 등 ‘사실’과 완전히 분리된 ‘허구’로서의 소설 분류도 모호했던 것으로 보인다.#15 일제강점기 초기에 근대적인 신문(연재)소설 자체가 일반 대중에게 아직 낯선 것이었다는 점을 생각하면, 또 소설과 기사와 논설과 이야기가 한데 얽혀 있었던 당시 신문 지면의 상황을 보면, 일반 대중에게 소설은 모호한 장르일 수밖에 없었다. 신문에서 ‘문예’가 다른 기사들과 분리되기 시작한 것은 신문이 생긴 지 한참 뒤의 일이었다.#16

 

문제는 이뿐만이 아니었다. 당시의 대중은 ‘소설’의 형식에만 익숙하지 않았던 것이 아니라 ‘분량’에도 익숙하지 않았다. 당시만 해도 사람들에게 이야기라는 형식은 짧은 단편소설 아니면 노벨라novella, 즉 중편소설 분량에 가까웠다. 고전소설들은 모두 저렴한 가격(20전짜리가 대부분이었다)을 내세웠고, 단가를 맞추기 위해 질 낮은 종이에 인쇄했을 뿐 아니라 가격을 낮추기 위한 방편으로 내용을 20쪽 남짓한 분량으로 축약해서 유통하기도 했다.#17

이러한 상황은 외국소설을 번안하는 사람들에게도 영향을 끼쳤을 것으로 보인다. ‘대중’을 자신의 독자층으로 상정했던 당시의 번안소설 작가들은 출판사의 요구든 독자의 기호를 의식한 것이든, 일반대중에게 익숙한 고소설의 분량에 원작 소설을 끼워 맞출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또한 신문연재소설도 지나치게 길게 연재하는 것은 신문사의 입장에서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이해조의 『철세계』만 해도 그 분량은 200자 원고지로 300쪽이 넘지 않는다.#18 원작 소설을 번안하면서 원작의 1/3가량으로 분량을 줄인 것이다. 한국의 현실적인 문제를 가미하면서 원작에 없는 내용이 첨가된 것까지 따지면 원작의 내용은 2/3 이상 생략됐다고 봐야 할 것이다. 또한 홍명희의 대하장편소설 『임꺽정』이 1929년에 연재를 시작하면서 장편소설이라는 표현 대신 ‘신강담’이라는 표현을 쓴 것만 봐도, ‘장편소설’이라는 개념은 대중에게 여전히 익숙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 해준다.#19 #20

이처럼 번안 축약본이 유통되는 상황은 일제강점기 전체를 통틀어 관례화됐다. 외국에서 모험소설을 비롯한 대중적인 장르소설의 상당수가 연재(또는 연작)소설이었거나 장편이었던 사실을 상기해보면, ‘완역’은 ‘흥미’와 ‘계몽’ 두 마리 토끼를 노리는 상황에서 그리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을 것이다. 이처럼 줄거리 위주로 요약한 번안 작품들로 원작 장편소설의 정수를 대중에게 전달하기에는 한계가 있었고, 번안 과정에서 작품의 개성과 매력도 깎여나갈 수밖에 없었다.#21 #22

 

 

2. 다른 장르소설과의 비교

소설보다 고소설이 더 많은 일반 민중을 독자로 확보했다면, 과학소설보다 다른 장르의 소설이 더 많은 독자를 확보했던 것도 과학소설의 문제였다. 다시 말해 ‘소설’은 고소설에도 밀리는 판국이었는데, 그 소설 중에서도 과학소설은 다른 장르에 비해 독자가 적었다. 추리소설이 신문 저널리즘의 연장선상에서 당대 대중의 관심사였던 개인의 문제와 도시의 엽기적인 사건 등을 다루기 시작하며 대중 독자를 확보하기 시작했던 때,#23 과학소설도 간헐적으로 다시 번역 작업이 시작됐지만 활발한 창작으로까지 나아가지는 못했다. 대중소설 작가들은 일제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고, 엘리트들은 현실과 밀접한 리얼리즘이나 최신의 문학조류인 모더니즘을 통해 한국의 사회적 문제를 다루는 데 천착했다. 특히 대중작가들의 입장에서는 과학적 세계관이 낯선 식민지 조선의 대중에게 과학소설을 선보이기보다는, 비슷하게 과학적이고 논리적이지만 좀 더 대중적인 추리소설이나 모험소설이 ‘흥미와 계몽’을 전달하기에 알맞았을 것이다.#24 이는 조선인에게 “전문적인 고급 지식을 제공하는 대신 실용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하급 지식을 제공하고 교육했던” 일제의 식민지 과학기술 교육 정책에도 그 원인을 찾을 수 있다. 조선인에게 구체적이고 전문적인 과학상(想)이 부재했던 것은, 과학 교육의 ‘사다리 걷어차기’가 이뤄진 탓도 있었다.#25 #26

또한 1920년대 이후부터 사회주의 계열의 과학소설이 유입되기 시작하면서 ‘과학’소설보다는 ‘사회’과학소설에 가까운 작품들이 주로 소개되기 시작했던 것 또한 과학소설이 대중적 확장보다는 이데올로기적 흐름으로 나아가는 데 영향을 끼쳤다.

추리소설은 엽기적인 사건이나 치정 사건과 같은 자극적인 소재와 흥미로운 묘사로 당대의 문제를 다뤘고, 연애소설은 자유연애를 주제로 삼으며 기존의 가치에 반발하는 작가들에게 도전의 대상이 됐다. 모험소설은 새로운 세계와 문물을 간접경험하기에 좋은 장르였다. 이처럼 각 장르소설들이 저마다 장르의 장점을 살려 독서시장에서 자리를 잡기 시작했지만, 과학소설은 여전히 제자리를 찾지 못했다. 1920년대에 들어온 과학소설들이 모험소설적 성향이 짙은 쥘 베른의 소설(『지구에서 달까지』)이나 정치/풍자소설(『로숨의 유니버설 로봇』, 『타임 머신』), 또는 극명한 선악대립구도와 엽기적인 사건(당대의 추리소설적 특징)이 등장하는 소설(『지킬 박사와 하이드 씨』)들이었다는 사실만 봐도, 이러한 과학소설의 문제를 읽어낼 수 있다. 과학적인 모험소설(scientific romance)이 아닌 과학소설(science fiction)은 결국 식민지 조선이라는 신세계에 자리 잡지 못한 것이다. 또한 과학소설을 싣고 있던 『별건곤』 등의 잡지에서도 ‘과학’을 ‘취미’ 또는 ‘기담’과 같은 흥밋거리로 다루는 판국이었다.#27

이러한 상황은 오늘날까지도 지속된다. ‘과학적 로망스’의 계보를 잇는 스페이스 오페라와 모험/추리소설적인 성격의 대체역사소설, 시간여행 SF, 추리/스릴러의 외피를 입은 SF와는 달리, ‘과학소설’ 자체는 여전히 대중에게 익숙하지 않고, 상업적으로도 별다른 영향력을 끼치지 못하고 있다.

 

이처럼 과학소설이 대중의 관심을 끄는 데 실패한 것은 ‘유교적 실용’이나 ‘괴력난신’에 대한 거부감#28 때문이라기보다는 오히려 과학소설의 형식과 분량, 가격, 사상 등이 일반 대중에게 낯설었기 때문이라는 추론이 더 타당하다고 보인다. 이는 일반 대중이 ‘소설’보다 고전 내러티브를 선호했던 당시의 상황에서 오히려 당연한 일이라고 할 수 있다. 문제는 과학소설이 ‘허황한 이야기’이기 때문이 아니었다. ‘소설’은 지식계층 독자와 일반 대중 독자로 양분된 상황에서 지식계층 독자에게 그 매력을 효과적으로 전달하지 못했으며, 고전 내러티브 방식에 익숙한 일반 대중 독자에게는 낯설기만 했다는 게 문제였다.#29 이러한 정황 속에서 『철세계』를 번안하며 과학소설을 조선에 처음 들여온 이해조가 과학소설이 가진 대중적인 파급력의 한계를 넘어설 수 있는 방법을 찾은 끝에, 과학소설보다 더 쉽고 대중적인 ‘모험소설’과 ‘추리소설’ 장르로 선회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소설을 통해 대중에게 흥미와 교훈, 계몽을 전달하려 했던 이해조의 입장에서, 좀 더 대중 친화적인 장르를 선택한 것은 필연적인 귀결이었다.

 

3. ‘과학’과 관련한 일제강점기의 문제점과 한계

과학소설의 문제는 또 있었다. 이해조가 『철세계』 이후 과학소설에서 손을 뗀 것은, 단지 더 대중 친화적인 장르로 옮겨가려 했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보다 더 현실적인 문제, 바로 일제의 탄압에도 그 원인이 있었다. 

1909년 출판법이 공포되고 이해조의 『철세계』는 1913년 발매금지 처분을 받았는데, 이는 『화성돈전』이 앞서 1910년에 발매금지 및 압수 처분을 받았던 것과 궤를 같이 한다.#30 #31 일제가 이해조의 소설을 금서로 지정한 결정적 이유는 바로 ‘계몽’적인 성격 때문이었다. 『철세계』는 실제 집필 의도도 조선 민중을 과학적으로 계몽하고 반제국주의적인 메시지를 전달하는 데 있었다.

 

중국과 일본이 다양한 번역서를 통해 대중에게 근대소설을 인식시키고 대중소설의 창작을 시작했을 때, 한국은 일제의 탄압과 대중의 외면으로 제대로 된 대중소설의 창작을 꽃피우지 못한 채 시간을 보내야만 했다. 1920년대 들어 겨우 ‘문화통치’라는 미명 하에 우민화정책을 실시하며 대중문화가 허용됐을 때가 되서야 본격적으로 대중소설의 번역 작업이 재개됐으며, 창작 대중소설도 하나둘 등장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여전히 대중에 대한 ‘과학적 계몽’의 의도가 있는 과학소설을 번안/창작하기는 어려웠을 것으로 보인다. 대중에게 과학을 알리거나 과학을 배우게 하는 시도들은 지속적으로 일제에게 방해를 받아야 했다. 

이러한 상황은 일제강점기 후기로 접어들던 1934년에 시작된 ‘과학 데이’에서도 볼 수 있다. 1934년 처음 개최된 ‘과학 데이’는 1938년까지 5번에 걸쳐 치러졌지만, 행사가 점점 계몽-민족운동과 독립운동의 색채를 보이자 일제는 실무책임자를 투옥시켜버렸다.#32 #33 이 사례에서도 볼 수 있듯이 일제강점기 전체에 걸쳐 ‘과학적 계몽’으로 민족의 각성을 이끌고자 했던 사람들은 일제에 탄압받았고, 계몽의 일환으로 과학소설을 활용하려던 소설가들도 결국 정치적으로 탈색된 ‘과학적 모험소설’로 작품 성향을 바꿀 수밖에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나마 1933년에 창간한 『과학조선』과 발명학회의 활동이 없었다면 1930년대에도 과학대중화운동 자체를 찾아보기 힘들었을 것이다.#34 이러한 상황 속에서 조선의 일반 대중은 1920년대 이후까지도 여전히 과학을 별스러운 취미로 인식하고 있었다.#35

 

 

결론

과학소설의 초기 역사를 한 마디로 정리하자면, ‘흥미’와 ‘계몽’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기 위한 ‘소설’ 작가들의 노력이 일제의 방해와 일반 대중의 외면으로 결국 실패했던 역사라고 할 수 있다. 과학소설을 번안했던 작가들은 ‘소설’의 재미를 통해 대중의 흥미를 이끌어내고, 과학소설에 녹여낸 과학 지식을 통해 과학적 세계관에 대한 대중의 관심을 이끌어내고자 했다. 하지만 과학소설에 ‘흥미’로운 이야기와 과학적 ‘계몽’을 담아 조선 민중의 힘을 키우려던 작가들의 노력은 ‘흥미’ 면에서 고소설의 통속적인 대중성에 밀리고 ‘계몽’이라는 목적은 대중의 외면과 일제의 탄압으로 좌절되면서 실패했다. 당시의 일반 대중은 ‘과학소설’뿐만 아니라 ‘소설’이 꿈꾸던 세계관 자체를 이해하지 못했으며, 자극적이면서도 저널리즘의 성격을 지닌 추리소설이나 호기심을 자극하는 모험소설에만 환호했을 뿐이었다.

이러한 상황은 오늘날에도 크게 다르지 않다. 비록 과학적 계몽을 억압하는 세력은 사라지고 겉으로 보기에는 국가에서 과학을 장려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여전히 과학은 대중에게 호기심이나 취미(교양)의 일환으로 소비되고 있으며 과학보다는 기술, 이학보다는 공학이 더 많은 관심을 받고 있다. 기초과학의 부실과 상상력의 부재를 꼬집지만 딱히 해결책은 없는 답답한 상태만 지속되고 있다. 돌파구가 보이지 않는 현실 속에서 과학소설은 앞으로 어떻게 새로운 과학적 상상력을 제시하고 대중의 흥미를 끌어낼 수 있을까. 이러한 고민이 100년 전에도, 100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라는 점에서, 1910~1920년대 한국 과학소설사의 문제는 현재 한국 과학소설계의 문제와 크게 다르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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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혜진, 『1930년대 한국 추리소설 연구』, 어문학사, 2009.

이희정, 『한국근대소설의 형성과 매일신보』, 소명출판, 2008.

정혜영, 『식민지기 문학과 근대성』, 소명출판, 2008.

조성면, 『한국 근대대중소설 비평론』, 태학사, 1997.

 

하정일, 『탈식민의 미학』, 소명출판, 2008.

 

 

 #1 저술활동으로는 고장원의 『SF의 법칙』, 『세계과학소설사』 등의 저서와 《사이언스 타임즈》에 연재한 「한국 과학소설 100년사」, 「한국SF를 찾아서」 등의 기사, 박상준의 「한국의 과학소설 약사」, 전홍식의 「한국 SF의 과거와 미래」(웹진 판타스틱, 2012) 등이 있다.

 #2 고장원은 2011년 3월에 쓴 글에서 김교제의 번안소설 『비행선』과 『지장보살』의 원작이 불명확하다고 기술했는데(고장원, 「흥미위주 번안소설이 판치던 시기」, 사이언스타임즈, 2011.3.28), 같은 해 말에 발표된 강현조의 연구에 의해 김교제의 『비행선』과 『지장보살』의 원작이 밝혀졌다. 강현조, 「김교제 번역·번안소설의 원작 및 대본 연구-<비행선>․<지장보살>․<일만구천방>․<쌍봉쟁화>를 중심으로」, 『현대소설연구』 48권, 한국현대소설학회, 2011. 그 뒤 2016년에는 이지용이 「정체를 밝히는 것부터, 김교제의 『비행선』(1912) 원작 찾기에서 나타난 한국 SF의 선결과제」를 통해 기존 과학소설사 서술의 문제점들을 지적하기도 했다. https://brunch.co.kr/@jiyonglee/15

 #3 예를 들어 고장원은 1920,30년대에 딱지본 등 통속적 대중물이 수만 권씩 판매되었다는 국립중앙도서관 ‘한글판 딱지본소설 컬렉션’의 소개문을 인용하면서, 당시 출간된 신소설 중에는 “저급한 상업문학 내지 어린이용 오락거리의 일환이라고 치부된 탓에 사장된 사례”, 즉 1920,30년대에 출간된 과학소설이 그간 알려져 있는 것보다 실제로 더 많을 수도 있다고 주장한 바 있다(고장원, 「뿌리깊은 한국 과학소설의 굴욕사」(사이언스타임즈, 2011년 4월 11일). 그러나 딱지본으로 발매되었던 소설의 절대 다수가 고전소설이었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딱지본의 흥행을 과학소설의 발매 가능성과 연결시키는 것은 지나친 추측이다. 설령 1920,30년대에 (그간 알려지지 못한) 과학소설들이 출간되었다 하더라도 번안소설이었을 가능성이 크며, 그 소설들이 ‘사장’된 것은 상업적 성격이 강했기 때문이라기보다는 오히려 그 소설들에 상업성이 부족했기 때문이었을 가능성이 크다. 실제로 식민지시대에는 몇 차례 과학소설들이 연재되었지만, 대부분 연재 중단되었다.

 #4 고장원은 이에 대해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20세기 초 곧바로 식민지의 나락으로 떨어지는 바람에 이러한 해외문물(과학소설)의 도입이 지식인층과 일반 민중을 각성시키는 대중문화기제로 건강하게 작동하지 못하고 오히려 조선인들의 과학계몽을 꺼려하는 일제의 눈치를 보느라 현실의 삶과 유리된 도피문학이나 유희문학 차원에서 맴돌고 말았다”고 간략히 언급하고 있다. 「흥미위주 번안소설이 판치던 시기」(《사이언스타임즈》, 2011년 3월 28일)

 #5 오혜진은 1930년대를 식민지시대 중 대중문학이 가장 호황을 누린 시기로 정의하면서, 같은 시기에 추리소설이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대중소설의 주요한 장르로서 자리를 잡았고, 다수의 대중들로부터 관심을 끌었다.”고 지적했다. 여기서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이라는 수사가 들어간 것은 1930년대 대중소설의 흥행이 1930년대의 출판 검열 강화와 경제 불황 속에서 이루어진 것이었기 때문이다. 오혜진, 「1930년대 추리소설의 존재방식에 관한 일고찰-‘환상’ 속에 감추어진 ‘전복’과 그 한계」, 『우리문학연구』 20집, 우리문학회, 2006, 321~322쪽.

 #6 『쌍옥적』의 표지에 ‘뎡탐소설’이라는 장르명이 쓰여 있듯이, 『철세계』의 표지에는 과학소설이라는 장르 명칭이 쓰여 있다. 참고로 『철세계』의 번안은 모리다 시켄의 일본어판 『철세계』를 포천소가 중국어로 중역한 것을 번안한 것으로, 프랑스어→일본어→중국어→조선어를 거친 번안소설이다. 강현조, 「한국 근대초기 번역·번안소설의 중국·일본문학 수용 양상 연구」, 『현대문학의 연구』 46권, 한국문학연구학회, 2012.

 #7 송명진, 「1920년대 과학소설 수용 양상 연구」, 『대중서사연구』 제10호, 대중서사학회, 2003.

 #8 이러한 상황은 중국과 일본을 통해 번안된 소설이 다시 번안되면서 이중적인 토착화를 거쳐 수입될 수밖에 없었던 현실적 한계와도 연관이 있다. 강현조, 「한국 근대초기 번역·번안소설의 중국·일본문학 수용 양상 연구」, 『현대문학의 연구』 46권, 한국문학연구학회, 2012.

 #9 이희정, 『한국근대소설의 형성과 매일신보』, 소명출판, 2008.
 #10 1907년 박용희가 『해저여행기담』을 번역한 것보다 30년 앞서, 1878년 가와지마 츄노스케가 『80일간 세계일주』를 프랑스어 원전 번역으로 소개했다. 이어서 1880년 이노우에 츠토무가 『지구에서 달까지』를 번역한 뒤로 다이헤이 산지, 미키 아이카, 타카스 지스케, 모리다 시켄 등에 의해 쥘 베른의 소설들이 대거 번역되기 시작한다. 번역작업이 활성화된 뒤 야노 류케, 오시카와 슌로 등의 과학소설가들이 쥘 베른의 영향을 받은 작품을 창작하기 시작했다. 자세한 내용은 다음을 참조. 김종방, 「한국 과학소설의 성립과정 연구」, 세종대학교 석사학위논문, 2010.
 #11 1910년대 신소설 등장 시기에도 활자본 고소설은 여전히 인기를 누렸으며, 이러한 상황은 1920년대에도 마찬가지였다. 그리하여 적지 않은 신소설 작가들이 신소설 작법으로 고전 서사를 개작해서 출간하기도 했으며, 동양의 전래 서사와 서양 외래 서사의 재제와 요소를 동시적으로 수용하며 혼합해 창작하는 집필 방식이 1907년 신소설 등장 초기부터 1910년대까지 이어져왔다. 강현조, 「근대 초 고소설의 전변과 담론화 야상; 근대 초기 활자본 소설의 전래 서사 수용 및 근대적 변전(變轉) 양상」, 『연구 고소설연구』 36권, 한국고소설학회, 2013.
 #12 『인도 왕비의 유산』과 『철세계』의 차이점에 대해서는 다음을 참고. 유봉희, 「사회진화론과 신소설 작가, 이해조와 이인직」, 『한국학연구』 제24집, 인하대학교 한국학연구소, 2011.
 #13 이러한 상황에 대해서 김기진은 1929년 「대중소설론」에서 활자본 고소설이 당시의 신문 문예소설보다 “놀라울 만큼 비교할 수도 없게 대중 속에로 전파(傳播)되어 있는 것도 또한 사실”이라고 고소설의 성행을 인정한다. 김기진, 「대중소설론」, 『동아일보』, 1929년 4월 14일, 3쪽.
 #14 김찬기, 「근대계몽기 단행본 소설 출판물의 현황과 그 성격」, 『현대소설연구』 제29호, 한국현대소설학회, 2006.
 #15 김영민, 「1910년대 신문의 역할과 근대소설의 정착 과정」, 『현대문학의 연구』 25권, 한국문학연구학회, 2003.
 #16 김영민, 「한국의 근대 신문과 근대 소설」, 『현대소설연구』 제29호, 한국현대소설학회, 2006.

 #17 김찬기, 「근대계몽기 단행본 소설 출판물의 현황과 그 성격」, 『현대소설연구』 제29호, 한국현대소설학회, 2006.
 #18 http://ko.wikisource.org/wiki/%EC%B2%A0%EC%84%B8%EA%B3%84

 #19 김영민, 「한국의 근대 신문과 근대 소설」, 『현대소설연구』 제29호, 한국현대소설학회, 2006.
 #20 김주리는 한글 고소설(장편소설)에 대해 언급하면서 “상류층 부녀자라면 50권이나 100권씩 되는 긴 소설을 읽을 수 있는 충분한 시간과 경제적 여유가 있지만, 남녀를 불문하고 중하층의 독자라면 이런 여유가 별로 없다. 그러므로 장편소설과는 다른 비교적 짧은 소설에서 비로소 조선의 독자적인 형식과 내용이 나타나게 된다.”고 설명했다. 이윤석, 「한글 고소설의 탄생과 유통」, 『인문과학』 제105집, 2015.
 #21 과학소설의 번역에 관련한 난점과 과학의 대중화에 관련한 문제에 대해서는 다음을 참조. 송명진, 「1920년대 과학소설 수용 양상 연구」, 『대중서사연구』 제10호, 대중서사학회, 2003.
 #22 줄거리, 즉 사건 중심의 이야기 재편은 번안소설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장유정은 “‘사건 중심의 이야기’ 주도 현상은 주로 활자본 고소설에서 나타났다. 1920년대 활자본 고소설은 중세문학의 애정류, 군담류보다는 역사⋅전기물 소설이 대거 등장하고 재판(再版)되었다.”고 1920년대 당시의 상황을 설명했다. 장유정, 「계승과 통속-활자본 고소설의 존재방식에 대한 규명 -」, 『인문과학』 58호, 2015.
 #23 추리소설이 대중성을 획득하기까지의 과정과 구체적 정황에 대해서는 다음을 참조. 이정옥, 「송사소설계 추리소설과 정탐소설계 추리소설 비교 연구」, 『대중서사연구』 제21호, 대중서사학회, 2009.
 #24 김종방, 「1920년대 과학소설의 국내 수용양상 연구」, 『현대문학의 연구』 44권, 한국문학연구학회, 2011.
 #25 이에 대해 송명진은 “과학소설의 ‘과학’은 ‘공상’과의 관계에서 만들어낸 의미론적 스펙트럼 위에서 독서되었다”고 서술하고 있다. 송명진, 「近代 科學小說의 ‘科學’ 槪念 硏究」, 『어문연구』 42, 한국어문교육연구회, 2014.
 #26 “1910년대 잡지들에서 과학과 기술 담론은 ‘신기한 발명품’과 ‘가공할 신기술’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과학자의 연구태도’ 등에 대한 소개로 집중된다. (……) 필자들의 종언은 신기한 물질, 괴상한 물질로서의 라듐과 그에 접근하지 못하는 피식민 지식인의 상황, 조선의 상황에 대한 안타까움을 담는다.” 김주리, 「1910년대 과학, 기술의 표상과 근대 소설」, 『한국현대문학회 학술발표자료집』, 한국현대문학회, 2013.
 #27 “일제강점기 조선인들은 과학을 ‘통속과학’, ‘생활의 과학’, ‘취미의 과학’이라는 방식으로 수용하고 이해하였다. 민족주의적인 과학열풍에 힘입어 대중잡지에는 짧은 기사의 형식으로 과학 상식이 자주 소개된다. 그런데 그 내용의 상당수는 과학이라는 용어를 제목에 내세웠을 뿐, 기담(奇談)이나 한담(閑談)의 성격을 지녔다.” 한민주, 「인조인간의 출현과 근대SF문학의 테크노크라시 - 『인조노동자』를 중심으로」, 『한국근대문학연구』 25, 한국근대문학회, 2012.

 #28 전홍식, 「한국 SF의 과거와 미래」(웹진 판타스틱, 2012) 에서 전홍식은 유교적 실용과 허황한 이야기가 대중에게 외면받았기 때문에 과학소설이 대중에게 다가가지 못했다고 주장하지만, 고장원은 이러한 논리에 대해 “좀 더 구체적으로 연계성이 검증될 필요가 있다”, “보다 실증적인 분석이 뒷받침되어야 하지 않을까”라고 언급하면서 신중한 입장을 취하고 있다. 「국난극복의 지혜, 그때는 무리였을까?」(사이언스타임즈, 2011년 4월 18일) 특히 1930년대에는 이미 카프 등 사회주의 계열의 문인들이 세력을 이루기 시작했고, 사회적으로도 유교가 소설에 영향을 끼칠 만큼의 영향력이나 이데올로기로써 힘을 잃어버렸다고 보는 것이 맞을 듯하다. 김현, 「식민지시대의 문학-염상섭과 채만식」, 『문학과지성』 5호, 1971. 9.
 #29 소설과 근대 초기 서사의 지형과 경쟁의 문제에 대해서는 다음의 책을 참조. 김찬기, 『서사란 무엇이었는가』, 소명출판, 2015.

 #30 장신, 「한국강점 전후 일제의 출판통제와 ‘51종 20만권 분서 사건’의 진상」, 『역사와 현실』 80, 한국역사연구회, 2011.
 #31 김종방, 「1920년대 과학소설의 국내 수용양상 연구」, 『현대문학의 연구』 44권, 한국문학연구학회, 2011.
 #32 과학 데이의 성공은 다윈의 사회진화론에 영향을 받은 지식인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사회진화론이 조선에 유입되면서 진화론을 주장한 다윈의 사망 50주년을 기념하여 그의 사망일인 4월 19일에 과학 데이를 개최하게 되었다. 1회 개최부터 투옥 사건까지의 자세한 내용은 네이버캐스트 인물한국사, 「과학 대중화 운동의 기수 김용관」을 참조. http://navercast.naver.com/contents.nhn?contents_id=5206
 #33 일본 유학생이 결성한 과학문명보급회 또한 장소 문제로 경찰의 간섭이 있어 강연회가 중지되는 일이 발생하기도 했다. 「과학강연회중지」, 『동아일보』, 1927년 8월 4일자, 2면.
 #34 그나마 『과학조선』이 대표적인 과학 잡지로서 명맥을 이어갔으나, 다른 과학 잡지들은 채 1년을 넘기지 못하고 폐간됐다. 한편 발명학회나 과학지식보급회의 활동에 대해서 김우필과 최혜실은 “실용적인 기술 중심의 과학담론에 주로 치중하면서 과학주의적 근대성으로 의식이 심화되기에는 역부족인 인식 수준을 보여주었다”고 평가하고 있다. 김우필·최혜실, 「식민지 조선의 과학·기술 담론에 나타난 근대성」, 『한민족문화연구』 제34집, 2010.

 #35 송명진, 「1920년대 과학소설 수용 양상 연구」, 『대중서사연구』 제10호, 대중서사학회, 2003.

 

 

※ 이 글은 2012년 8월 1일에 장르비평모임에서 발제문으로 작성하였고, 《미래경》 4호(도서출판42, 2016)에 실렸습니다.

2012년의 발제문과 2016년 잡지 수록본은 내용상 차이가 없고, 참고문헌을 몇 개 추가하였습니다.

2019년 현재의 시점에서 맞지 않거나 글쓴이의 생각이 바뀐 부분도 있으나, 2012년 당시의 문제의식을 공유한다는 의미에서 수정 없이 그대로 게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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