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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무협의 시대와 그 기록〉 - 좌백, 진산 선생님을 만나다 (5편)

 

: 좌백 선생님께서 늘 받으시는 질문이고, 언제나 반복되는 질문이지만. 좌백선생님에게 있어서 무협소설에 있어서 무와 협이 어떤 느낌으로 다가오시는지 여쭤보고자 합니다.

 

좌백: 내가 보기에는, 애초에 협은 무협지에 없었다고 생각해요. 80년대 무협에도, 중국 무협에서도 없었어요. 70년대 고룡이 수필을 썼는데, 중국무협사를 이야기하면서. 원래 협은 그런 게 아닌데, 협을 진짜로 소설 속에서 쓰면 독자들이 싫어하니까 독자들이 좋아하는 대인, 군자를 위주로 쓰게 된다는 거예요.

협이라는 것은 중국에서도 낮은 차원에서 조폭의 의리, 조폭의 가오. 이런 거란 말이죠. 유협열전 등을 봐도 그렇고. 그런 측면에서 보면, 우리 애가 저기 가서 맞았다. 우리가 가서 패주자. 이게 기본적인 거란 말예요. 일본 야쿠자의 협도 그렇고. 거기서 중국은 거기에다가 대인, 대협이라는 것을 집어넣어가지고 그런 협객들이 나라도 구하고 가치가 있는 것처럼 넣는 게 그런 것이고. 한국에서는 협이라는 것은 조선왕조실록에서 협을 사용한 것을 보면 누구는 기질이 호협해서 말썽만 부리고 다닌다.’ 늘 그런 식. 그런 문장이 두 군데가 있어요. 인협이라고 해서 일본에서 항상 야쿠자와 관련해서 이야기되고 있죠. 동양 삼국의 협에 대한, 그런 차이가 있는데. 중국에서도 말하자면 을 살린 작품은 많지가 않아요.

제가 봤을 때는 김용하고 양우생 정도. 그 두 사람을 제외하면 고룡이 가끔 내용 중에, 주인공은 아니지만 주인공 주변의 인물들이 협을 위해서 의리에 살고 의리에 죽고, 협을 위해서 고난을 당해도 변하지 않죠. 나머지 작가들은 거의 없어요. 우리나라로 넘어오면서 애초에 협은 낯선 글자고, 그런 개념도 없었기 때문이기도 하고 더더구나 그걸 쓰는 사람이 드물었죠. 정말. 협객의 풍모 이런 것은 없었죠. 행여 지금 무협에 협이 없는 건, 지금만 아니라 원래 없었다. 그래서 저는 무협에서 협이라는 것은 별로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해요.

 

진산: 협이라는 개념에 가장 가까운 건 사적 정의라고 봐요. 미국에서의 총기 보유문제를 보면서 그런 생각을 했어요. 폭력은 국가만이 독점해야 하나? 민간은 총을 갖지 않아야 하는 걸까? 한데 미국은 건국 과정 자체가 총 가진 개척자들에 의해서 이뤄졌거든요. 비극적인 총기사고에도 불구하고 버티는 그 심리가, 물론 다른 중요한 원인들이 더 있겠지만, 협에 대한 고민과도 연결이 되더라고요. 협 중요하지. 멋지지. 그런데 실제로 협이 실현된 사회를 생각해보면 너무 지옥일 거야. 사적 정의라는 측면에서 보면.

여하튼, 무협이 망했다는 것에서. 이쪽은 장르의 부침 자체를 여러 번 봐왔기 때문에, 이번 위기도 한 번 지나가는 것 같기도 하지만, 한 편으로는 그 우려가 맞아 들어가지 않을까 싶은 게 있어요. 옛날에는 아무리 상상력의 공간을 확장시켜도 존, 메리가 주인공인 것은 어색하고, 멀리가도 중국이었어요. 중국 정도면 타협하고 환상을 실현시킬 수 있겠다. 요즘은 세계가 글로벌화 돼서. 이제 서양사람, 서양까지 포함한 어떤 이상한 무국적인 판타지 공간도 모든 세대가 적응을 하고. 거기다가 이제 중국은 죽의 장막 너머 신비의 나라가 아니야. 너무 빤히 보이는데다, 여러 가지로 희화화가 된 공간이죠. 외교관계에 따라서는 얕보이기도 하고. 신비화가 안 되는 공간이다 보니, 무협이라는 틀 안에서 추구하던 신비감과 통속적인 대리만족 이런 것이 꼭 무협의 틀이 아니어도 되는 거예요.

오히려 세대가 달라지면서부터는 게임화 된 판타지처럼, (무협처럼)막 어렵게 설명하는 것보다 무협에서의 능력 상승그러니까 기가 어쩌고 단전이 어쩌고 보다는 레벨이 올랐습니다이렇게 표현할 수 있는 것이 더 점점 접근하기 쉬워가는 코드가 되어가지 않나. 계속 그렇게 옮겨가면 무협이라는 옷이 별 필요 없어지는 시대가 올 수도 있겠다 싶죠. 무협이라는 틀 안에서 누리고자 했던 재미가 다른 곳에서 다 가능해진 거고. 무협이라는 옷이 지겨워지면, 그러면 그럴 수도 있겠지. 그럼 갈아입어야지. 더 이상 다시 입을 필요가 없는 옷이라면 버려야지. 그런 생각도 드는데. 그렇게 될 것이다 확신하기에는, 아직 모르겠어요.

 

: 저는 진산 선생님 소설의 문장이 굉장히 수려하다고 느꼈습니다. 헌데 이 수려한 문체가 당시 시장에서 어떻게 받아들여졌는지 알고 싶습니다. 여성이라서 드리는 질문이라기보다는, 당시 사람들 중에는 좌백 선생님과 진산 선생님이 결혼 했을 때, “둘이 결혼한다고? 그러면 좌백이 여자였어?” 하시는 분이 있으셨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지금 이미 선생님이 여자인 걸 알고 읽었을 때와, 그 당시 사람들이 그걸 모르고 읽었을 때는, 다른 느낌으로 그 문장을 읽지 않았겠는가 싶어서요.

 

진산: 일단, 작가로서의 나는 문장에 큰 신경을 쓰지 안 써요. 내가 생각하는 문장은 이야기 전달의 수단일 뿐예요. 그 도구로서의 가치가 제일 중요해요. 여러 가지 문장의 기능이 있지만, 특히 장르소설에서는 이야기를 전달하는 것이 주목적 인 거기 때문에, 거기에 복무하는 게 좋아요.

특히 내가 좌우명처럼 삼고 있는 문장이 있다면. <신부님 우리들의 신부님>을 쓴 조반니노 과레스키, 그 이탈리아 작가가 있는데. 그 사람의 수필을 보면, “단어 500개만 알면 할 수 있는 제일 좋은 직업이 작가다라고 했어요. 나도 사실 그래요. 화려하다, 아름답다 이렇게 묘사되는 문장들은, 잘 쓰지 않는 단어, 고운, 미려한 단어를 쓴 거죠. 이건 약간의 장신구 같은 거예요. 이런 것은 문장을 반짝반짝 빛내죠. 하지만 나는 잘 안 쓰는 단어를 잘 쓰지 않아요. 일단 기억도 못 할 뿐도 아니라, 어떻게 쓰다가 보면 이것은 독자들이 잘 모르겠다 싶으면, 단어를 쉬운 것으로 바꾸는 편으로 퇴고를 해요.

물론 그런 것도 있긴 해요. 어떨 때는 생경하고 잘 안 쓰는 단어를 갈고 닦아서, 그 가치를 새로이 발굴하여 쓰기도 해요. 그때 좋은 점도 있지만, 그건 노리고 쓰는 거지. 일상적으로 그런 단어를 다 쓰지 않아요. 여기서 여기까지는 속도감 있게 이야기해야겠다, 이 경우에는 기억을 끄집어내는 단어를 의도적으로 배제해요. 거기는 속도감이 중요하니까. 여기는 곱씹고 곱씹고, 영화로 치면 느린 화면의 장면이라면 그런 단어를 쓸 수도 있죠. 용도가 다르다고 봐요.

그런데, 데뷔를 했을 때에는. 제가 장편 데뷔가 <홍엽만리>잖아요. 그때 제가 동학농민 100주년 기념 대본을 쓰고 있었기 때문에, <홍엽만리>의 원전이 그거예요. 야설록 대표가 장편 한 번 써보자했을 때, 장편 사이즈로 떠오르던 이야기는 자료조사 열심히 준비했던 동학농민운동 대본이었거든요. 처음 그게 떠올랐죠. 처음부터 무협을 떠올린 게 아닌 거야. 그래서 <홍엽만리>를 보면 중간 중간 한시 비슷하게 나온 게 있잖아요. 그 부분을 최근의 나이 든 독자가 너무 아름다운 문장이었다고 기억을 하세요. 마교처럼 핍박받는 종교 집단에서 바람비 서리 눈이 몰아쳤다가 그것이 다시 간 다음에 가고 나서 붉은 꽃이 천하에 물들고, 그런 식의 시가 있는데. 상징시가 있는데. 그게 내가 쓴 게 아니라 동학농민의 후예인 천도교 경전에 나오는 시예요. 그거를 무협식으로 바꿔서 한자를 달고 한거죠.

그러니 내가 생각할 때 좋은 문장은 어휘에서 나오는 게 아니고, 이야기를 써나가는 데에서 어느 부분을 묘사하고, 어느 부분에서 행간을 남겨놓고 뛰어넘느냐, 이거의 차이였다고 봐요. 당시의 무협작가들과의 차이였다면. 다른 작가들은 싸우면 부수고 제압하는 것이 시원하니까 그 부분을 다 쓰는데, 나는 그 부분을 생략하고 행간으로 두고 다음 장면을 쓰는 경우가 많았어요. 그것이 특이하게 보이고. 의미 있는 문장처럼 보였을 거라고 생각해요. 근데 그것은 연극 하면서 대본 쓰면서 몸에 익은 거예요. 왜냐하면 연극 대본을 쓸 때는 대사를 a, b, a, b 이렇게 주고받는데, 모든 것을 설명하면 재미없는 대본이 되거든요. 나머지는 현장에서 배우가 채워야 하는 것이죠. 그런 연극의 특성이 배어서 제가 특이해 보이는 것인데, <홍엽만리> 그 뒤로 다른 문장은 오히려 건조한 쪽에 가깝다고 생각해요. 화미한 문체는 오히려 야설록 씨 아닐까. 굉장히 탐미적이니까요. 또 이재일 씨나.

 

: 저는 <가스라기> 보면서, 아 이분이 (문장에) 힘을 주시는구나 생각했어요.

 

진산: 한 줄 한 줄을 공들여서 쓰는 게 아니라, 이 만큼은 달리는 부분, 이 부분은 영화처럼 쭉 지나가는 화면이고. 그리고 웹소설 식으로 치면 마지막 부분에서 힘 빡! 주고. 그런 것이 훨씬 더 효과적인 게, 독자들은 스토리를 따라가지 매 문장을 기억하지 못해요. 쭉 가다가 한 페이지에 힘 빡 준 문장을 쓰잖아요. 그러면 독자들은 그 문장을 보고 이 작가는 문장을 잘 쓴다고 생각하게 된답니다. (웃음) 모든 문장의 밀도가 좋으면 오히려 골치 아프다고 생각하기 시작해요. 그래서 오히려 중기부터 모든 문장에 힘이 들어가니까 사람들이 골치 아프다고 하더라고요.

 

: 아무래도 진산 선생님의 무협은 다른 작가들과 색채가 많이 다른 거 같아요. 죄인이거나 평범한 주인공이 스스로를 희생해서 역경을 헤쳐 나가는 구조가 많고, 그래서 그런지 <대사형>처럼 먼치킨 서사와는 조금 차이가 나는 글이 주로 나오는 것 같습니다. 이걸 두고 팬들은 진산 무협이라고 칭하기도 하는데, 이런 개성 강한 글들을 어떤 방식으로 쓰셨는지 알고 싶습니다. 그리고 진산 선생님은 그 구조 안에서 대리만족이나 사이다와는 조금 다른 재미를 추구하시는 것 같은데, 이에 대해서도 간략히 답변 부탁드립니다.

 

진산: 이게 좀 재미있다고 생각한 게. 전형준 선생님이 나에 대해 쓴 글을 보면, 운명적인 서정성, 비극의 서정성으로 읽으셨어요. 하이텔 무림동의 어떤 독자의 평은, 가족 막장이라고 해야 하나? 굉장히 극단적으로 밀려나간 가족의 비극적인 드라마, 그게 내 이야기의 핵심이다. 헌데 질문자는 내 이야기가 평범한 주인공이 희생해서 역경을 헤쳐 나가는 구조이렇게 했잖아요. (이렇게) 보는 관점도 가능하구나, 그래서 신선한 질문이라고 생각했어요.

이것을 다 합쳐보면 이게 그리스 비극적인 구조인 거예요. , 이거 다 합쳐진 건 그리스 비극 아닌가? 내가 학교 때 배운 그게 몸에 붙어있나? 하는 생각이 났죠. 무협 장편들 까지는 다 비슷한 계통이었죠. <가스라기>도 어느 정도 그럴 거고. 오히려 나의 대한 평을 보고 거꾸로 그렇게 생각하는 거예요. 내가 의도를 가지고 이렇게 쓴 게 아니라.

또 하나, 평범한 주인공에서 시작한다는 구조는, RPG 게임의 구조에요. 가장 낮은 레벨에서 시작한 평범한 영웅이 세계 전체의 시스템과 싸우는. 근데 마지막에 가면 그렇게 성공을 한 사람이 세계의 1인자가 되거나 최강자가 되면서 마무리 되는 것이 보통이죠. 그런데 나는 그것은 별로 안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그 과정에서 나 주인공이 뭘 얻었고 뭘 버리기로 결정 했느냐가 더 중요한 거죠. 내 주인공의 마지막을 그릴 때, 세속적인 성공보다는, 사람의 실제적인 행복이나 깨달음 등 뭘 얻었느냐가 아니라, 날 둘러싸고 있는 요소들 중에서 어느 것을 포기하기로 결정했느냐, 그것이 나머지의 나를 결정한다고 봐요. 그것이 반영되어서 그런 것이라 생각하죠. 그러니 마지막에서 주인공이 뭘 얻었는가?’ 라는 걸로 결론 나는 거죠.

그리고 어떤 종류의 재미를 추구하느냐고 묻는다면. 짧게 대답한다면. <반인기>의 작가인 유사하씨가, 그 당시에 몇 안 되는 같이 이야기를 할 수 있던 여성작가인데. 유사하 씨가 나를 보면서 한 이야기가, ‘진산 선생님은 패턴 위에서 능숙하게 춤을 추는 댄서 같다.’라고. 결국 내가 추구하는 재미는 거대서사와 개인이 마주치는 이야기이자, 어떤 장르의 컨벤션 요소들을 패러디하거나 발굴해서 재해석하며 재미를 느끼거나에 있는 거 같아요. 나 스스로는 제일 재미있어 하는 건, 여태껏 조명되지 않은 것을 조명하는 거구요.

독자 분 중에 <홍엽만리>에서 가장 재미있어 한 것이. 초반에 기존 80년대 무협에 나오는 미공자, 주인공 같은 캐릭터가 조연으로 나오는데. 보무당당하게 전장에 도착했는데 실제로 싸움이 시작되니까 피가 튀고 사람이 쓰러져 나가고 하다보니까 자기가 생각한 싸움과 너무 다른 거야. 얘는 이야기 전체에서 보면 작은 조연인데 그 사람이 망가지는 과정을 보여주는, 그런 부분들이 지금까지의 무협에서 못 봤던 특이한 시각이었다. 그래서 그걸 좋아한 사람이 있었어요. 그런 식의 재미를 추구하는 것이 나의 재미인가 봐요. 당연히 마이너지! (웃음)

 

 

  <6편에 계속>

 

 

 

 

 

※ 텍스트릿에서 기획·진행한 좌백, 진산 선생님과의 인터뷰입니다. 6회에 걸쳐 이틀 간격으로 연재될 예정이며, 퍼가실 경우에는 출처를 명기해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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