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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타지를 만든 영웅들〉

전민희 작가님을 만나다 (2)

 

: 작가님의 경우는 웹소설 연재로 빠르게 적응하신 듯한데, 그럴 수 있었던 원동력이 있었을까요?

 

: 게임 아키에이지의 홈페이지에서 「루키우스의 기록」을 연재했던 경험이 도움이 좀 되었던 것 같아요. 저는 그 작품을 소설이라고 전혀 생각 안 하고 설정집이라는 생각으로 썼거든요. 본래 아키에이지 게임의 제작에 참여하는 내내 그런 스타일의 글을 많이 썼는데, 게임 제작에는 일정이 있으니까 모두 소설로 써서 전달할 시간은 없어서 책으로 치면 몇 권이 넘는 글을 전부 그런 식으로 썼어요. 지금도 게임의 업데이트는 거기에 맞춰져 있어요. 

「루키우스의 기록」을 쓸 때도 ‘소설보다는 개요만 빠르게 전달해야지. 그게 게임에 도움이 되고 이용자분들도 세계관을 이해할 수 있고, 그러면 좋겠다.’ 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많은 분들이 그걸 그냥 소설이라고 하시더라구요. 이상하다. 소설 아닌데. 그렇게 몇 번이나 생각했는데 보도 자료도 소설연재라고 이야기하더라구요. (웃음) 나중에 웹소설을 읽어보니까 왜 사람들이 소설이라고 여겼는지 알게 되었어요. 물론 이 형식이 지금의 웹소설과 일치하는 건 또 아니에요. 대사도 그렇게 많지 않고 서술을 통해 스토리를 빠르게 전달하는 정도에서 그치고 있으니까요. 단지 어느 정도의 스토리가 전달되면 소설이라고 느끼는 독자가 많아졌고, 그 감각을 빠르게 알 수 있었던 거죠.

 

: 문학동네쪽과의 유튜브 라이브에서 PC통신과 웹소설의 연재가 무척 다르단 것을 연재하시며 직접 느끼셨다고 하셨죠. 독자나 소통, 유행과 경향이 아닌 창작의 관점에서 같은 점과 다른 점은 무엇이 있나요?

 

: 저는 매일 연재하는 것이 아니라서 방식 자체에 큰 변화는 없어요. 미리 한 권 분량을 만들어서 연재를 들어가죠. 대부분의 다른 작가분들은 1주일에 매일, 또는 5회 연재를 하게 되는데, 그 압박감은 이해가 가요. 제 작품은 다 써놓은 글을 일주일에 세 번 정도 연재하는 것인데도 긴장감이 느껴지거든요. 심지어 다 써놓은 글이 연재되는 만큼 내용을 바꿀 수 없는데도 말이죠. 매일 써서 매일 반응을 보시는 분들의 스트레스는 크겠죠. 

물론 제가 매일 연재의 경험이 없는 건 아니에요. 『세월의 돌』 연재하던 시기에도 거의 매일 연재를 하다시피 했고, 그리고 당시에는 작품의 알람이 따로 있는 게 아니라서 올리던 시간을 맞추지 않으면 글이 올라왔는지 안 올라왔는지도 모르게 쭉 밀리니까 되도록이면 비슷한 시간대에 올리려 한다든가, 그런 노력을 했던 기억은 있죠.

그래서 제 창작 방식에 일어난 가장 큰 변화는 유료로 연재를 하고 나서 종이책으로 나온다는 점 같아요. 작품을 만들고 쓰는 방식 자체가 큰 차이를 내진 않아요. 다만 포맷에 따라 전달되는 느낌은 분명히 달라진다고 느껴요. 제가 초고를 스크리브너에 쓰는데, 출판사에 1차 교정을 맡기기 위해 그걸 한글 포맷에 부어보면 어딘가 달라 보이고, 그 이후 카카오페이지 연재 포맷에 넣어보면 또 달라 보여요. 그럼 그에 맞춰서 글을 수정해요. 마지막으로 종이책으로 낼 때도 다시 연재 이전의 버전을 되살리는 게 아니라, 그 상황에서 또 한 번 수정을 해요. 어떤 작업을 할 때든 일부 수정되는 표현들이 생기는데 그걸 다 살려내어야 하니까 모든 작업은 그때그때 새롭게 하는 편이에요. 줄바꿈을 한다거나, 어떤 것은 나열이 될 때 답답하면 끊어준다거나, 그런 것들도 도로 원위치 시켜줘야 하죠. 그렇게 수정된 것을 가지고 출판사에 가져다주면 교정지가 다시 오잖아요? 교정지를 PDF 파일로 보는데 그걸로 보면 또 고쳐야 할 부분이 보이고, 그렇게 두 번이고 세 번이고 일을 하는 과정을 거치죠.

 

: 엄청나게 고생을 많이 하는 작업방식인데, 과거 SNS에서는 작가님의 기존 종이책 문장과 카카오페이지 문장을 분석해서 수정한 부분을 다 찾아주신 독자분들도 계시더라구요.

 

: 저는 저의 글을 읽는 독자분들의 이해력을 충분히 존중하며 글을 쓰지만, 이러한 포맷 차이를 중시하는 이유는 오늘날 모든 사람들이 같은 상황과 조건에서 글을 읽지는 못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에요. 어떤 분은 지하철에서 흔들거리며 보시기도 하겠고, 또는 5분 안의 급한 시간 동안 보실 수도 있잖아요. 그럴 때마다 비슷한 듯 다른 경험을 갖게 되시는 거죠. 저만 해도 포맷에 따라 글이 달라 보이는데, 독자분들이 모두 똑같은 독서를 하고 계신다는 생각을 안 해요. 그것을 생각해서라도 스마트폰 독서 상황의 포맷에 맞춰 쓰는 것은 필요한 일이죠. 그 작업은 다른 사람이 해줄 수 있는 것이 아니에요. 제가 봤을 때 끊고 싶은 곳에 끊는 것이니까요. 물론 그것을 되돌리는 것도 제가 해야 할 일이고요. 

어떤 독자분들은 카카오페이지의 경우 뷰어의 설정을 조절할 수 없어서 불편함을 이야기하시기도 해요. 저는 ‘오히려 아, 그럼 내가 의도한 것과는 편집이 다르게 보일 수도 있는데 어떻게 나올까?’ 하고 걱정을 하기도 했어요. 하지만 독자들이 원하는 독서 경험이 모두 다르니 조절 가능한 포맷도 제공하는 것이 맞을 것 같아 얼마 전에 리디북스와 한국이퍼브 등을 통해 그런 형태의 이북도 내게 되었습니다. 

 

: 시간에 대한 이야기를 말씀 안 드릴 수 없겠네요. 올해가 작가 데뷔 20주년이신데, 20년 동안 작가로서의 나는 어떻게 변해왔다고 생각하시나요?

 

: 변해온 시작점과 도착점이 있다고 느끼진 않아요. 저는 변화를 좋아하는 편이기도 하고요. 20년이 흐르는 동안 쓰는 글도 바뀌고 트렌드도 바뀌고 출간 방식도 바뀌고, 독자분들의 나이도 바뀌고 새로운 독자가 생기고, 변화가 계속 있었잖아요. 변화가 닥친 그 순간은 저 역시 어렵지만 이런 방식으로 하면 되지 않을까? 저런 방식으로 하면 어떨까? 그런 생각들이 계속 떠오르고 그 자체가 도전처럼 느껴져서 재미있어요. 

웹연재를 하게 된 것도 저에게는 큰 변화였죠. PC통신에서 연재를 하다가 책으로 낸 것도, 웹 연재를 하게 된 것도. 그때마다 처음에는 낯설지만 곧 그 변화가 주는 장점들을 떠올려보곤 했어요. 물론 접근법이 틀릴 때도 있는데, ‘아, 이게 아닌가?’ 하면서 가벼운 마음으로 또 바꿔봐요. ‘아, 이러면 안 됐는데.’하고 기억은 하지만 감정적인 후회는 오래 가지 않는 편인 것 같아요. 웹 연재라는 새로운 시장에서도 저에게 가능한 방식으로 노력해서 적응해 보려고 합니다.

 

: 그 변화가 『룬의 아이들』이라는 한 작품 속에서도 끊임없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게 독특한 지점 같아요.

 

: 『룬의 아이들』이 오래 가는 시리즈가 된 것이 오히려 변화에 빠르게 적응해야겠다고 생각한 계기이기도 해요. 『룬의 아이들』을 소설로서 제일 처음 선보인 것이 17년 정도 전이네요. 포리프의 인물들을 처음 설정한 것은 1999년이었고요. 이 긴 세월 동안 사랑해주신 독자들이 『룬의 아이들』을 이미 알고 있기 때문에 쉽게 손이 오고, 인기도 좋을 것 같지만 그보다 이런 생각을 하게 되더라구요. 내가 어떤 대상을 엄청 좋아했다고 하더라도 20년이나 보면 식상하지 않을까? 왜냐면 저 자신이 그런 사람이거든요. 작품을 쓰면서 최초에 했던 설정을 고스란히 재현하기만 한다는 것이 그렇게 재미있는 일은 아니거든요. 

제가 변해온 만큼 독자분들도 분명히 변해왔을 텐데, 그럼에도 변하지 않는 이야기를 하고 있으면 좋기도 하겠지만, 새롭게 사랑에 빠질 계기도 없는 셈이죠. 3부를 구상할 때도 그랬어요. 아무도 그렇게 얘기하시진 않았습니다만, 저 자신만은 ‘이 시리즈를 알긴 하지만 새로 읽어볼 의욕은 없는 분들’이 분명히 존재할 거라고 생각했어요. 제가 스스로 변주하지 않는 한 모든 캐릭터의 프로필은 이미 포리프를 통해서 공개되어 있고, 20년 전부터 좋아했던 캐릭터이니까 물론 반갑겠지만 신선하지는 않잖아요. 그렇다고 완전히 다른 캐릭터로 바꾸는 것이 아니라 근간은 유지하되 새롭게 해석되는 모습, 다르면서도 납득되는 모습을 보여드리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독자분들이 윈터러와 데모닉이 다르고, 블러디드도 다르다는 말씀을 해주셔서 좋아요. ‘나는 셋 중 어느 것이 가장 좋다, 왜냐하면…….’과 같은 의견이 활발한 것도 저는 긍정적으로 생각해요. 셋을 다르게 썼으니 달라 보이는 것은 당연하고, 다른 것들을 놓고 호불호를 말하고 싶은 것도 당연합니다. 한 시리즈 안에서 그런 이야깃거리가 지속적으로 발생한다는 것도 어찌 보면 흥미로운 장점이 아닐까요?

 

: 긴 세계관의 소설들을 쓰고 계시면 또 새로운 아이디어가 떠오를 듯도 합니다. 특히 오랫동안 하나의 세계관에 묶여서 소설을 쓰다보면 그런 욕심도 많이 드실 것 같은데요.

 

: 새로운 아이디어는 자주 떠오르고, 그때그때 써 놓는 편이에요. 뭔가를 보다가, 아는 사람들을 만나다가도, 별거 아닌 일상에서도 잘 떠오르죠. 이를테면 영화를 볼 때 작가분들은 대부분 그러실 것 같은데, ‘이 부분은 이렇게 전개되면 더 좋지 않을까?’ 같은 생각이 떠오르잖아요. 그런 아이디어를 놓치지 않으려고 생각을 이어가다가 눈앞의 스토리를 놓치기도 하고 그러죠. 

다만 오래된 아이디어를 다시 펴보는 일은 잘 없어요. 제가 2015년도부터 맥북을 쓰고 있는데 그때 이전까지 쓰던 데스크탑에서 핵심 원고만 옮겼거든요. 그후로 데스크탑을 거의 켜보지도 않았어요. 가끔 필요한 자료가 있을 때 켜서 옛날에 써둔 구상을 들춰보지만 금세 “아, 이건 안 봐도 되겠네.(웃음)” 하면서 꺼버리죠. 

지난 것들 중 정말 좋았던 것은 제가 굳이 묵은 자료를 뒤지지 않아도 제 안에 머물러 있다가, 새로운 계기가 생기면 더 쓸모있고 매력적으로 업그레이드되어서 다시 나타나는 것 같아요. 하지만 그렇지 않은 대부분은 그저 지난 것일 뿐이에요. 재밌지 않거든요. 그때만 재미있다고 느꼈을 뿐이죠.

 

: 그럼 묵혀놓는 아이디어와 사용한 아이디어의 가장 큰 차이는 지금 창작하시는 소설과의 연결인가요?

 

: 아이디어의 신선도에는 유효기간이 있는 것 같아요. 활용하려면 서둘러야 해요. 그렇기 때문에 새로운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1차적으로 이 아이디어를 지금 쓰는 소설에 연결할 수 있는지 살펴봐요. 저 같은 경우 아이디어가 대부분 서사 형태로 떠오르기 때문에 어떤 세계관에든 연결하기가 좋아요. 물론 안 되면 묵혀두지만 아무리 길어도 3, 4년 안에는 반드시 사용하는 편이 좋은 것 같아요. 

저는 월드의 세팅 자체에 끌리는 경우는 드물고 그 안에 잘 녹아든 서사에 관심이 있어요. 그런 지점을 발견해야만 해당 세계관이 매력적으로 다가오게 되죠.

 

+

 

텍스트릿이 기획한 전민희 작가님의 인터뷰는 매편 이틀의 텀을 가지며 3부작으로 연재될 예정입니다.

인터뷰의 저작권은 텍스트릿에 있으며, 외부로 퍼가실 경우는 꼭 출처를 남겨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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