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소설의 '대리만족'과 서사성의 문제

 

 

1. 웹소설과 기존 소설

 

웹소설은 기존의 소설과 다르다는 이야기는 많이 회자된 바 있다.

 

오히려 웹소설과 소설을 너무 대립적인 것으로 보는 게 아니냐는 문제 제기가 조심스럽게 이루어지기도 하는 요즘이다. 가령 웹소설이 탈권위적이고, 기성 문단에 기대고 있는 기존 소설은 권위적이라는 이분법이 그러하다. 웹소설의 장 안에서도 이미 그 안에서 ‘권위’를 만들려는 움직임이 포착되고 있으니, 웹소설은 ‘소설과 태생적으로 달리’ 아무런 노력을 기울이지 않고 탈권위성을 유지할 수 있다고 생각해 버리면 자가당착에 빠질 수 있는 위험이 내포되어 있기도 하다.

 

하지만 웹소설과 소설이 대립적이라고 할 정도로 다른 지점들도 엄연히 존재하는 것이 사실이다. 가령, 서사성과 관련한 문제가 그러하다.

 

웹소설을 접하는 문학 전공자들은 웹소설의 서사가 과연 서사인가, 의아해하는 경우가 있다. 어떤 관점으로 보면 웹소설의 서사는 우리가 ‘서사적’이라고 하는 것과 반대를 추구하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웹소설의 서사가 왜 ‘반反서사적’이라고 할 수 있는지 논의한 사례는 아직 쉽게 찾을 수 없다.

 

이 글에서는 ‘대리만족’이라는 웹소설의 키워드와 반서사성이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점에 대해 서술해 보도록 하겠다. 이는 웹소설과 기존 소설이 어떻게 같고 어떻게 다른지에 대한 논의이기도 하다. 이를 통해 웹소설 특성의 한 단면이 잘 부각될 수 있으리라고 믿는다.

 

 

2. 서사성이란?

 

‘서사성’은 당연히 ‘서사(이야기)적인 성격’을 의미한다. ‘이야기’란 무엇일까? 우리는 어떤 걸 이야기라고 부르고, 또 어떤 걸 이야기라고 부르지 않을까.

 

서사라는 말은 풀어 쓰면 ‘사건을 서술하는 것’이다. 그런데, 서사학에서 말하는 ‘사건’이란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말하는 ‘사건·사고’의 ‘사건’과는 좀 다르다.

 

서사학에서 사건이란, 앞의 상황과 뒤의 상황 사이의 ‘격차’가 있는 것을 가리킨다. 가령, 도저히 서로 사랑하지 않을 것 같은 남녀가 결혼했다든지, 아니면 절대 변하지 않을 줄 알았던 친구간의 우정이 파탄났다든지 하는 것이다. ‘사랑하지 않는 사이’, ‘변하지 않을 우정’이 앞 상황이고, ‘결혼’, ‘우정 파탄’이 뒤의 상황이다.

 

각 상황 사이에는 상당한 격차가 있다. 독자들은 이런 이야기를 들었을 때 ‘어떻게 된 일이지?’, ‘도대체 왜?’라는 의문을 느끼고, 흥미롭게 그 이야기에 빠져들게 된다. 이것이 서사학에서 말하는 ‘사건’이고, 또 서사의 조건이다.

 

그러니까, 우리가 무언가를 ‘서사’라고 부르려면, 최대한 서로 매우 다른 두 개 이상의 상황이 필요하다. 이것을 우리가 서사라고 할 수 있고, ‘서사성’은 이러한 상태를 일컫는 말이다. 이 서사성이 웹소설에서 어떻게 굴절되고 있는지 살펴보기로 하자.

 

 

3. 웹소설 독자들의 욕망 - ‘대리만족’

 

웹소설의 제작자와 유통자들이, 웹소설 독자들의 독서 욕망을 설명하는 데 있어서 흔히 손꼽는 키워드로 ‘대리만족’이 있다. 웹소설의 독자들이 재미를 느끼는 요소, 작품을 읽는 동기 같은 것들은 기존 소설의 독자들을 기준으로 하면 이해하지 못할 것들이 많다. 이것을 설명하기 위해서 ‘대리만족’ 같은 기호들을 포함한 가설들이 제시된다.

 

“웹소설의 독자들은 대리만족을 가장 중요한 독서의 의미로 삼는다.”는 필자가 웹소설을 창작하는 과정에서 가장 흔하게 들었던 명제이다. 사실 CP(contents provider:웹소설의 기획/출판 등을 담당하는 업체)의 담당자는 작품의 방향을 기획하고 제안하면서, 작가에게 이 명제를 전제로 제시하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최근 독자들은 사회에서 소외받아 박탈감이 심하고 인정욕구가 강하기 때문에’라는 근거를 제시하는 경우도 많다. 이유야 어쨌든 독자들이 웹소설의 주인공에게 감정이입을 하는 경향이 강하고, 그들의 성공담/승리담을 보는 것을 즐기는 것은 분명한 사실로 보인다.

 

웹소설은 매우 강력한 주인공 중심 서사이다. 5000자 한 화당 100원을 지불하고 구매하는 독자들은, 자신이 구매 결정을 내린 하나의 상품에 주인공 이야기가 나오지 않으면 손해 보는 느낌이 들만도 하다. 각각의 화가 하나의 독립된 상품의 성격을 띠고 있는 웹소설의 중요한 특성에서 기인한 속성이다.

그러다 보니 장편 대중서사에서는 즐겨 사용되지 않던 ‘1인칭 서술’이 웹소설 작가에게는 흔히 권해지기도 한다. 서사의 진행을 주인공에게 집중시키기 위해서는 3인칭보다 1인칭이 유리하다는 것이다. 이건 기존의 대중서사에서는 쉽게 발견할 수 없었던 속성이다. 「반지의 제왕」, 「삼국지」같은 장편 대중서사의 3인칭 시점이 얼마나 많은 인물 사이를 자유롭게 오가는지를 기억해보자.

 

그렇다면, 독자가 주인공에게 집중하여 느끼는 것은 어떤 종류의 ‘대리만족’인가? 주인공의 승리와 성공이라면 기존의 대중서사 장르에서도 중요하게 다루어졌던 것 아닌가? 같은 질문들이 대두될 수 있다.

 

기존의 대중서사의 주인공들을 보자. 배트맨, 스파이더맨 등의 정체를 숨긴 수퍼히어로들. 나라를 구했지만 자신은 전사하는 「명량」의 이순신, 엄청난 역량을 갖고 있지만 통일을 이룩하지 못했던 「삼국지」의 인물들. 대중서사에서는 독자들의 사랑을 받던 주인공들이다. 하지만 웹소설의 기준으로 보면, 이러한 인물들은 주인공으로서 적합하지 않다.

 

일단 배트맨과 스파이더맨은 ‘인정욕구’를 충족시키지 못하기 때문에 웹소설 주인공으로서 문제를 안고 있다. 정체를 숨기고, 세계를 구하거나 지키지만 그 공은 인정받지 못하는 것은, 웹소설에서는 ‘고구마’(웹소설에서 흔히 쓰이는 말로, 진행이 답답할 때 독자들이 느끼는 감정을 일컫는다)로 비판받을 가능성이 다분하다.

 

또, 주인공의 죽음으로 서사가 마무리되는 경우도, 웹소설의 독자들에게 사랑받기 힘들다는 믿음이 강하게 존재한다. 자신이 무언가(세계이든, 국가이든)를 지키려는 목적은 성공했지만, 그 성공의 대가를 누리지 못하는 결말 또한 웹소설 독자에게는 ‘고구마’로 받아들여질 수 있는 것이다.

 

자신의 업적을 숨기는 주인공, 성공의 대가를 누릴 수 없는 주인공. 기존 대중서사에서는 흔히 사용되는 요소이지만, 지금 웹소설 기획자들은 만류하는 이 두 가지 유형이 갖고 있는 공통점은 뭘까? 그것은 바로 ‘보상’이다. 유비나, 이순신이나, 배트맨이나 모두 ‘보상’으로부터는 거리가 먼 인물들이다.

 

주인공이 승리를 향해 나아가는 과정보다, 승리와 성공의 보상을 즐기는 과정이 웹소설에서 더 중요하다는 것. 이것이 웹소설과 관련된 독자의 욕망을 구성하는 중요한 요소가 된다. 그리고, 이것은 작품 전체에도 해당하는 이야기지만, 독자들이 구매한 단일상품으로서의 한 화에도 해당하는 이야기다. 주인공의 보상은 작품의 결말뿐 아니라, 진행 과정에서 일관적으로 이어져야 하는 것이다.

 

이런 점 때문에, 단적으로 말해 웹소설의 주인공들은, 비극적인 결말 이전에 아예 위기에 빠지거나 고생을 하지도 않는다. 위기에 빠지고 고초를 겪는 것은 주인공의 계획 하에서일 때나 독자에게 용인된다. 예를 들어서 라이벌을 더 골탕먹이고 약올리기 위해서, 혹은 더 큰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일 때나 주인공은 위기에 빠지는 것이다.

 

 

4. ‘대리만족’과 서사성

 

자, 그러면 웹소설의 서사에 있어서 몇 가지 조건들이 마련된다. 첫째, 웹소설이 철저하게 주인공 중심 서사라는 것이다. 둘째, 주인공이 성공/승리를 하되, 자신의 보상을 충분히 챙기고, 그 보상은 작품의 결말이 아니라 진행 과정에서 꾸준히 제시되어야 한다. 셋째, 주인공은 위기에 빠지거나, 고초를 겪지 않는다.

 

그렇다면, 사실 우리에게는 한 가지 결론이 도출된다. 그것은 ‘웹소설의 주인공은 이미 작품이 시작되면서부터 승리해 있다는 것’이다. ‘승리할 운명으로 정해져 있다’라는 말은 웹소설의 주인공을 설명하는 데 있어서 모자라다. 왜냐하면 그는 시종일관, 계속 성공과 승리를 거듭하고 있기 때문이다.

바로 이 지점이 앞에서 서술한 ‘서사성’과 웹소설이 상충하는 부분이 된다. 서사성은 전술한 바와 같이, 앞의 상황과 뒤의 상황 사이의 격차로 발생한다. 그런데, 철저하게 주인공 중심인 웹소설에서, 즉 웹소설의 핵심이 될 수밖에 없는 주인공 서사가, 주인공이 이미 승리해 있는 상태에서 시작해서 승리하는 상태로 귀결되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이야기된 것들을 종합하면, 이 글의 독자에게는 다음가 같은 의문이 생길만 하다. ‘주인공이 이미 승리해 있는 이야기라고? 그것이 과연 가능할까?’ 이에 대한 설명을 위해 몇 작품을 예로 들겠다.

일단 절대로 패배하지 않는 주인공을 만드는 것은 이론적으로 어렵지 않다. 웹소설의 초기 작품인 「투명드래곤」이나, 일본 만화 「원펀맨」 같은 작품들은 어떤 적이 나와도 패배하지 않는 주인공을 설정하고 있다. 하지만 이것을 서사적으로 작동시키는 것은 문제다. 결국 서사에서 해결해야 할 가장 중요한 지점이 이미 해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웹소설 작가들이 흔히 사용하는 모티프는 ‘전지’이다. 모든 것을 알고 있는 주인공. 가령 회귀자(일정 시점으로 돌아가서 다시 인생을 시작하는 것)이 대표적인 예이다. 회귀 전에는 자신을 배신했던 친구나 동료에게, 회귀자가 다시 속아주는 척하면서 역으로 그를 더 크게 골탕 먹여 호쾌한 복수를 이루는 모티프는 웹소설의 클리셰처럼 흔히 쓰이던 소재가 되었다.

 

「재벌집 막내아들」은 그런 회귀를 다룬 최근 웹소설 작품 중 가장 성공적인 사례였다고 할 수 있다. 그는 자신이 몸담았던 기업의 희생양으로 지목되어 죽음을 당했다가, 그 기업 총수 집안의 아들로 회귀하여, 자신이 기업 일을 하면서 쌓은 정보와 기억을 바탕으로 총수의 총아가 되어 복수를 해나간다. 자신의 할아버지가 되는 기업 총수의 인정은 처음부터 주인공에게 보상으로 작용하고, 그는 차원이 다른 정보력을 이용해서 주변 인물들을 자유롭게 요리해 나가며 자신의 목적을 달성한다.

 

이러한 회귀 중심의 전지는 몇 가지 방법으로 변주된다. 다음과 같은 사례들이다.

「전지적 독자 시점」은 「멸살법」이라는 작품의 독자가, 결말까지 다 알고 있는 상태에서 그 작품 속 세계가 되어버린 세상에서 살아남는 이야기이다. 그의 작품에서도 회귀자는 등장하지만, 그 회귀자는 「멸살법」의 주인공이고, 이 멸살법의 결말까지 읽은 「전지적 독자 시점」의 주인공 김독자는 그것보다 한 단계 높은, 그야말로 ‘전지적’이라고 부를 만한 정보력을 갖고 있다. 회귀자는 주인공의 라이벌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초반부터 그가 대단한 인간임을 인정하는 배역 또한 맡고 있다. 주인공은 자신을 따르는 동료들에게 추앙받고, 신뢰를 받으며 멸망한 세계를 헤쳐나간다.

 

「규격 외 등급해석사」는 전설의 고서를 통해 다른 인물들의 여러 가지 상태를 파악할 수 있는, 앞의 두 작품과는 다른 경로로 압도적인 정보력을 획득해가는 이야기다. 이 작품은 소위 말하는 ‘헌터물(세계에 괴물이 출몰하게 되었고, 이들을 사냥하여 돈과 명예를 얻는 ‘헌터’를 주인공으로 하는 웹소설 하위 장르)’에 해당하는데, 작품속 세계에서 최고의 위치에 올라 있는 헌터에게 끊임없이 인정을 받고, 스카웃 제의를 받는 것을 통해 ‘보상’을 획득한다.

 

이와 같이, 세 작품은 모두 주인공이 압도적인 정보력으로 다른 인물들보다 사실상 게임이 되지 않는 경쟁을 하고 있다는 설정을 공유하고 있다(여타의 인물들이 속해 있는 ‘룰’에서 벗어나 있다는 점에서 그들은 게임의 ‘치터cheater’와도 일견 닮아있다). 그런 정보력 때문에 그들은 근본적으로 위기에 빠지지 않으며, 또 서사의 초반부터 이루어지는 ‘보상’과 ‘인정’도 예외 없이 마련되어 있다.

 

가장 대표적인 작품을 예로 들었지만 로맨스를 제외한 거의 모든 웹소설 장르의 대표작에서 이러한 일반적인 성격을 공유하는 작품이 다수를 차지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문제는 웹소설의 독자들이 이런 작품들에서 느끼는 ‘재미’는 전통적인 의미의 서사를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추구하는 독자들에게는 이질적으로 느껴진다는 점이다. 이렇게 주인공의 승리가 결정된 이야기에서도 부분적으로는 서사적 조건을 충족하는 이야기를 끼어넣을 수 있지만, 가장 중심이 되는 내용이 ‘반서사적’이라는 사실은 웹소설 작가에게는 이러한 서사적인 어려움을 어떻게 돌파할 것인가, 라는 숙제를 주고, 독자에게는 기존의 서사성, 서사의 조건에 대해, 더 나아가서 이야기의 재미란 무엇인가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볼 기회를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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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칼럼은 텍스트릿과 고려대학교 대학원 신문이 공동 기획하여 8회에 걸쳐 연재됩니다.

 텍스트릿 필진 김준현의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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