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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무협의 시대와 그 기록> - 좌백, 진산 선생님을 만나다(1편)

 

이주영(이하 이): 본격적인 질문에 들어가기 전에 먼저 좌백 선생님에 대한 간단한 소개 부탁드립니다.

 

좌백: 95년에 <대도오>를 출간하면서 데뷔를 했고요. 그 이후로 지금까지 쭉 무협을 쓰고 있습니다.

 

서원득(이하 서) : 이어서 진산 선생님께서도 소개 부탁드립니다.

 

진산 : 필명은 진산을 쓰고, 무협으로 시작을 해서 로맨스도 쓰고 판타지도 쓴. 그러나 무언가 알 수 없는 게임 관련한 글이나 인생 에세이가 더 많이 팔린. 정체를 알 수 없는 작가 진산입니다. <이매진>에서도 1년 정도 편집장 일을 했었죠.

 

: 좌백 선생님께서 95년도에 <대도오>로 데뷔 하실 때, 야설록 선생님이 창립하신 뫼 출판사에 들어가셔서 습작생활을 한동안 하셨다고 들었습니다. 그때의 경험에 대해 들을 수 있을까요? 특히 창작실 별로 서로 다른 무협소설 족보가 있었다고 들었습니다.

 

좌백: 한국 무협이 번역사무실에서 시작한 바람에 서로 다른 족보를 가지게 되었죠. 번역사무실은 한 명이 하는 게 아니고, 운영자나 대표가 한 명이 있고, 그 밑에 번역하는 사람들이 여럿이 같이 있는, 그런 경우가 많았어요. 물론 요즘은 단독으로 하는 경우가 많지만.

 

그런 식으로 하다 보니까 80년대 창작 무협이 시작되었을 때도, 작가들이 단독으로 작품 활동을 하는 것이 아니고 작업실을 만들었어요. 그 중에서 성격이 작업실과 안 맞는 사람의 경우는 그냥 혼자서 했지만, 성격이 되는 사람은 습작생들끼리 모였죠. 그렇게 누구는 사무실 실장이 되고, 그 밑에 습작생들을 모아두고, 또 그 다음에 거기서 신인들을 받고 하면서, 거기서 무협 쓰는 법을 가르치곤 했죠.

 

무협이라는 게 대부분 문학 전공자가 시작하는 게 아니다 보니까, 처음에 들어오면 소설 쓰는 법부터 지도를 해줘야하죠. 그리고 문학 전공을 했다 하더라도 무협이라는 것은 일종의 전문분야이기 때문에, 단어 등 무협적 시스템의 교육이 필요했죠. 헌데 그런 사무실 형태가 80년대 무협이 망하면서 85-6년쯤에 없어졌어요.

 

그러다가 90년도에 제가 무협 쓰겠다고 출판사를 찾아갔을 때는, 원고를 들고 들어갈 때, 생각해보세요. 일반 출판사라고 했을 때 무협 쓰겠다고 들어오면 평가할 분들이 잘 없잖아요. 무협을 모르는 사람이 무협소설을 보면 이게 뭔 소린가 싶죠. 그렇다고 작가보고 잘 모르겠다고 돌아가라 이렇게 하면 무협 쓸 사람이 없겠죠. 그러니까 출판사에서는 일종의 감수자를 한 명 내세웠죠. 보통은 옛 무협 작가가 특강을 하면서 가르쳐주고. 90년대 초에는 사무실이 없었어요. 사무실을 만들어도 잘 되지 않을 만큼 무협이 잘 되지 않았을 때라. 그때는 작가가 집에서 원고를 만들어 출판사에 오면, 감수자가 고쳐서 가르쳐주고, 그걸 고쳐오면 또 그 사람이 봐주고. 이런 식으로 반복했죠. 그런데 뫼 출판사에서부터 무협이 잘 될 조짐을 보고 사무실을 만들기 시작한 거죠.

 

처음엔 출판사 귀퉁이에 사무실을 만들어서 용대운, 좌백, 그리고 다른 습작생들이 같이 작업을 하다가, 제가 데뷔하면서부터 좀 더 가능성 있는 신인들이 들어왔어요. 장경이나 풍종호 등. 아예 건물을 따로 해가지고 2층에 한 40평 되는 사무실을 얻고, 실장 용대운 이렇게 올리고. 그런 식으로 무협을 쓰기 시작했죠.

 

족보라는 것은…… 90년대 중국 수교하기 전까지는 우리나라에 중국 책이 거의 안 들어왔어요. 중국 관련해서 우리나라 사람들이 쓴 책도 많지 않았고. 특히 어학이나 역사 쪽 책은 있었지만 문화나 풍습이나 건축이나 의복이나 이런 세세한 것에 관한 책은, 글을 쓰려면 필요했지만, 거의 없었어요. 게다가 무협 관련 자료라는 것도 없었죠. (당시에는) 있는 게 이상한 거잖아요. 그러니까 무협소설 텍스트가 캐논(정전)인데, 그전에는 대부분 70년대 번역된 무협들에서 당시 독자들이었던 사람들이 쓸 만한 단어, 지명, 인명 등을 다 뽑았어요. 그리고 그걸 일일이 타자를 쳐서 정리를 했는데, 그게 무협 용어가 된 거죠. 그 뒤에 용대운님이 만든 게, 백과사전을 꺼내서 앞에서부터 중국 관련 지명, 설명 등을 다 빼가지고 정리를 했어요. 그걸 습작 초기에 보았는데, 그런 것을 보여주면서 참고로 하라고 했죠. 초보시절에는 단어집 같은 게 무협 쓸 때 도움이 됐죠. 웬만큼 쓰다보면 새삼 그런 것에 얽매이지 않아도 쓸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는데, 완전 처음 쓰는 생초보 시절에는 그런 게 없으면 쓰는 게 힘들었을 거예요. 그런데 그런 걸 용대운님만 가진 게 아니고. 검궁인 사무실의 검궁인이 만든 자료집이 유명했고요. 금강 역시 개인적으로 있었죠. 아마 대부분 옛날 작가들은 그런 것을 하나씩 가지고 있었을 거예요. 그 중에 쓸 만하다고 유명한 것은 검궁인의 것이었고.

 

진산: 그때 당시 교환된 자료 중에서는, 아래아 한글에 보면 자전 있잖아요. 확장한자 사전. 그것도 무협 한자는 특이한 게 많으니까, 그런 것도 작가들끼리 주고받고.

 

좌백: 그거는 금강님이 만들었지. 문피아에 무협 자료실이라고 있는데, 거기에 보면 그런 자료들이 있어요. 나중에는 제가 만든 자료들도 있고. 자료끼리 차이나 특색이라고 할 건 별로 없어요. 단지 그 작가 취향에 따라서 무협 용어 모아놓은 게, 그쪽에 꽂히는 용어 위주로 각각 있는 정도죠. 제가 본 거는 용대운님이 돌린 거 하고, 나중에 금강님이 만든 겁니다.

 

아, 그런 게 있다. 종로에 가면 중화서국이라고, 중국 원서 파는 곳이 있어요. 지금도 있는지는 모르겠는데. 그곳에서는 화교들을 대상으로 중국이나 대만 같은 데서 책을 가지고 와서 팔았어요. 저도 가서 봤는데, 좀 성의가 있는 작가들은 그런 곳을 가서 중국 책을 뒤져봤어요. 거기에는 무협도 있고, 무협 자료집도 있었어요. 무협 사전이라든지.

 

재밌는 게, 금강님의 자료집을 처음 보게 되었는데, 그때 나한테 꼬깃꼬깃한 비급을 주더라고. 거기에 혈도의 종류와 증상, 그리고 한자 원문이 실려 있었어요. 제가 그걸 번역해가지고 돌렸는데, 그게 지금도 문피아 자료실에 있을 겁니다. 그런 식으로 각자 자기의 비급이 있는 거죠. 우리 집에도 <달마역근세수경> 비급이 있어요. (웃음) 누가 만들고 어디서 만들었는지 모르지만, 있더라고요.

 

: 잠시 진산 선생님께도 질문 드리겠습니다. <진산 무협단편선>에 수록된 짤막한 이야기를 제외하면, 지금 진산 작가님에 대한 인터뷰가 남아있는 게 많지 않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무협 작가가 되셨는지에 대해 일종의 전사(前史)로써 듣고 싶습니다. 특히 <홍엽만리> 서문에서는 야설록 작가님의 작품을 즐겨 읽으셨다고 하셨는데요.

 

진산: 일단 저는 대학 때 연극을 전공을 했었어요. 연극 연출.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활동을 하면서, 그 무렵이 정확히 기억은 안 나지만, 연극 대본작업을 하는데 그때가 동학혁명 100주년이 다가오는 시점이었어요. 그래서 동학혁명 관련한 대본작업을 하고 있었는데, 그 와중에 동시에 대학로에서 연극도 하고, 또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에서 조교 근무를 했었어요. 그리고 동기 후배들이랑 하고 있던 실험극 단체도 하고 있었죠.

 

연극 제작비를 위한 알바를 하려고 했는데, 그 무렵 하이텔을 시작했어요. 헌데 ‘무림동’에서 공모전을 하더라고요. ‘앗 그러면 이거라도 하나 내볼까?’ 그렇게 가볍게 처음 쓴 단편이 무협이었죠. 그때 당시에는 상금이 세다거나 그런 건 아니었어요. 1회 <광검유정> 때에는 상금이 없었고, 상품으로는 용대운 <태극문> 전집이 있었죠. 1회는 그냥 재미로 했던 거 같아요. 그 다음해에는 상금이 걸렸더라고요. 그래서 <청산녹수>를 두 번째로 썼어요. 그때 하필 나보다 조금 더 많이 쓰고 잘 쓴 이재일이 <칠석야>를 내는 바람에, 나는 대상을 놓치고. 나랑 이우형씨의 <비애>가 우수상을 받았죠.

 

첫 번째 <광검유정>은 정말 단편 공모전이었기 때문에, 시상식은 따로 하지 않고 상품만 나중에 배송 받았는데, 두 번째 해에는 시상식을 서교호텔에서 했어요. 행사를 좀 세게 하더라고요. 갈까 말까 귀찮아 하다가, ‘가야 상금도 제대로 받겠지.’ 이런 생각이 들어서 갔죠. 그때 좌백도 처음 만났고, 무협 관계자도 처음 만났죠. 다들 온라인으로만 알고 있었는데, 그때 실명 아이디를 쓰고 있기는 했지만, 누나나 엄마 아이디를 쓰는 경우도 많았기 때문에 제가 남자작가라고 생각했었어요. 그런데 수상자가 왔더니 여자라서 좀 놀랬던 분위기였어요. 그때 저는 상금을 받고 신난다 했었죠. 얼마 안 되는 돈이지만. 사실 그 돈이 연극 제작비에 필수적이라기보다는, 약간 무협 쓰면서 한숨 돌리고 싶은 기분이었고, 거기에 플러스 알파로 상금을 제작비에 보태야지, 하는 기분이었어요.

 

그러고 있었는데 며칠 후에 야설록씨가 따로 보자 해서 뫼 출판사에 갔어요. 출판사에서 ‘정식으로 장편 데뷔를 해보는 게 어떻겠느냐’하고 데뷔를 제안했고요. 그때까지도 약간 그런 느낌이었어요. ‘그럼 장편으로 데뷔하면 계약 제대로 하면, 알바도 되고 그럼 나는 직장 다니면서 버는 돈은 내 생활비로 쓰고, 이 외의 일로 연극 제작을 하면 되지 않을까.’ 이런 머릿속에 박혀둔 꿈을 꾸고, ‘예 그렇게 하죠.’해서 시작을 했어요. 그 뒤로 장편을 뫼 사무실에서 쓰면서, ‘개인적으로 나의 성향에는 연극보다 소설이 더 맞겠다.’ 그런 판단이 들었어요. 그래서 어느 날 연극판을 다 정리하고 이쪽으로 일을 전업으로 하게 시작했어요. 데뷔 과정은 대충 이래요.

 

<홍엽만리> 서문에 ‘야설록 작가의 작품을 즐겨 읽었다’고 했는데, 난 전혀 기억이 없어. 만약 있었다면, 아마 야설록 대표님에 대한 나의 절절한 사회생활 아니었을까! (웃음). 그런데 아주 거짓말은 아닌 게. 나는 무협작가지만 무협 독자로서 그렇게 뼈대 깊은 독자는 아니에요. 원래는 추리 소설이나 여러 가지 대중 장르소설을 좋아하는 보통의 독자들이 좋아하는 루트를 따라왔고요. 무협도 박스무협을 먼저 보긴 했지만 그것은 작가별로 보거나, 의미 있게 본 것이 아니에요. 순정만화를 보러 만화방에 가면, 옆에 무협지가 있으니까. 혹은 명절 때 친척 집에 가서 심심하게 있다 보면 친척 오빠나 아저씨들이 빌려놓은 무협지 일부가 방구석에 굴러다니니까. 그런 것을 봤으니 작가도 모르죠. 표지는 다 뜯겨져 있고, 본문 내용 중에 주요부분도 다 뜯어져 있고. 뭐 이렇게 접하기 시작했다가, 소위 김용 등의 무협들이 서점에 꽂히기 시작하는 것을 보았어요. 당시 아가사 크리스티 전집을 다 보고 너무 볼 게 없었는데, 김용이 이렇게 길게 꽂혀 있는 거야. 그래서 나는 김용을 <영웅문>부터 본 게 아니라 <천룡팔부>부터 봤어요. 되게 그 병적인 이야기를 좋아해요, 그 기괴한 인상들. 그렇게 접하기 시작했다가, 무협쓰기 직전에 하이텔 통신을 시작했는데, 하이텔 무림동에 당시 사라져버린 옛날 무협들 텍본이 있어서 그걸 보러 들어갔어요. 되게 쉽게 볼 수 있었으니까. 자취생이나 대학생들인데 10권 넘는 책을 살 수도 없고, 갖고 다닐 수도 없었으니까. 이사하면 책이 다 없어지기 마련이죠. 온라인에서 그 텍스트를 볼 수 있다는 것이, 직장도 다니고 골치 아픈 실험극도 하고 이런 상황에서 쉴 수 있는 공간이었기 때문에 무림동을 다니게 됐죠. 그 당시에 단기간에 그런 걸 보았죠.

 

그런데 백일장을 한다더라고. 마침 제가 고등학교 때 문학반이었거든요. 그래서 글 쓰는 것에 대한 거부감이 없으니까, ‘무협 백일장이 있다니 해보자.’ 그렇게 접근한 게 첫 단편이었죠. 그렇게 접한 80년대 무협의 일부 중, 야설록 작가의 작품이 있긴 했어요. 선명하게 기억에 남긴 해요. 야설록 대표의 글은, 지금으로 치면 BL계에 도는 속담 중에, ‘내가 아무리 동인지를 한들 세상에 시헤남들만큼 BL을 잘 쓸 수는 없다.’ 본인들은 전혀 인정 못하지만, 동인녀들의 시각에서 볼 때는, 시헤남들이 뿜어내는 동인적인, 남과 남의 뜨거운 우정, 남과 남의 충성심! 왜 고룡의 <다정검객무정검> 보면서 나는 뿜었던 게, “약혼녀는 버릴 수 있어. 그러나 친구는 버릴 수 없어!” 이런 남성 간의 뜨거운 우정이 무협에 굉장히 많아요. 그런데 그게 여성의 눈으로 볼 때는 어떤 면에서는 같잖으면서, 어떤 면에서는 그걸 고도로 패러디하면 BL이 되는 거야. 근데 야설록 대표의 글이 그런 정서가 강해요. 그게 좀 본인이 노리는 것과는 다르게 굉장히. 그리고 야설록 대표의 글은 탐미적이거든. 그런 게 좀 인상적이어서, 좋아하기는 좋아해요. 그 좋아함이 오그라들면서 으아아 하며 좋아하는 거지만. 초기에 무협을 접한 것은 그런 쪽이에요.

 

<2편에 계속>

 

※ 텍스트릿에서 기획·진행한 좌백, 진산 선생님과의 인터뷰입니다. 6회에 걸쳐 이틀 간격으로 연재될 예정이며, 퍼가실 경우에는 출처를 명기해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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