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노베라는 장르가 실패한 이유

 

 

라이트노벨(이하, 라노베)이 가지고 있던 본질적 한계는 다음과 같다. 바로 국산 판타지 소설에서 일본산 캐릭터소설로의 이행과정에 있었던 과도기적 장르였다는 점이다. 이 글에서 캐릭터소설에 대한 정의는 오쓰카 에이지에서 시작되어 아즈마 히로키의 논의로 이어지는 개념을 차용했다.

 

아즈마 히로키의 저서 <게임적 리얼리즘의 탄생>에 따르면, 캐릭터소설이 성립되기 위해서 전제되어야 하는 환경이 존재한다. 바로 캐릭터 데이터베이스를 기반으로 삼는 상상력의 환경이다.

 

이는 만화 애니메이션적 리얼리즘이라는 이론에 근거한다. 요컨대 자연주의 리얼리즘소설(여기에서는 일반적인 의미의 소설(순문학 etc)을 의미한다.)은 현실세계를 사생(寫生)한다. 다시 말해 소설 속 세계를 현실 세계에 최대한 가깝게끔 그려낸다. 이는 자연주의 리얼리즘소설이 현실세계를 모방·재생산하는 것을 그 목적으로 삼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만화 애니메이션 리얼리즘소설(, 일본 라노베를 의미한다.)은 만화 애니메이션 세계를 사생한다. 소설 속 세계를 만화 애니메이션 세계에 최대한 가깝게끔 그려낸다. , 라노베는 만화 애니메이션 세계를 모방·재생산하는 것을 그 목적으로 한다. 기존의 만화 애니메이션 장르를 활자화하고 싶었다는 고백이 일본 초기 라노베 작가들을 통해 술회되는 것을 보면 위와 같은 논의가 충분한 개연성을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렇기에 라노베는 이러한 만화 애니메이션 리얼리즘을 통해 일본 사회에 내재된 캐릭터 데이터베이스를 기반으로 형성된 범 장르적인 캐릭터소설이라고 이야기한다.

 

그러나 이는 거꾸로 말하면, 전후 일본을 거쳐 현대에 이르는 기간 동안 만화 애니메이션적 리얼리즘이라는 상상력의 환경이 일본 사회에 암묵적으로 형성돼있었다는 뜻이다. 때문에 라노베라는 캐릭터소설이 성립할 수 있었다고도 말할 수 있다.

 

요컨대 일본 전후 50년의 세월동안 다양한 만화와 애니메이션이 일본 사회에 등장했다. 이를 통해 캐릭터 데이터베이스가 그 사회 내부에 내재적으로 구축될 수 있었고, 그 덕분에 캐릭터소설이라는 라노베가 향유될 수 있었다는 말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에 있어 이 캐릭터 데이터베이스란 자생적인 것이 아니었다. 우리나라에 있어서(특히 나 자신의 세대에 있어서) ‘모에를 연발하며 향유하곤 했던 이 캐릭터 데이터베이스2000년대를 전후해서 일본 서브컬쳐계로부터 이식받은 것이었다.

 

캐릭터에 집중하는 캐릭터소설이란 종래의 한국 서브컬쳐계(장르소설계)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독특한 양식이었던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한국 발 라노베가 출범하려하니 근본적인 문제가 발생할 수밖에 없었다. 이는 콩 심은 데에서 팥이 날수는 없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캐릭터소설의 A to Z, ‘모에할 수 있는 캐릭터에 공감할 수 있는 작가 풀이며 독자 풀, 그리고 그 수준까지 질적·양적인 면에서 너무 얕았던 것이다.

 

일본산 라노베가 한국에 처음 수입되기 시작한 시점을 특정 짓기란 쉽지 않다. 그래도 몇몇 작품을 중심으로 짚어보자면, <슬레이어즈>가 수입 번역된 1997년이나 <풀메탈패닉> 또는 <부기팝> 시리즈가 수입 번역된 2002년 즈음을 그 시작점으로 볼 수 있겠다. 그리고 한국산 라노베가 생산되기 시작한건 2007년 오트슨, 임달영, 반재원등의 작가들이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부터로 볼 수 있다.

 

이는 한국산 라노베가 나오기 까지 최소 5, 최대 10년의 시간이 걸렸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시간의 갭이 바로 캐릭터소설이라는 장르가 한국에 적응하기 까지 필요했던 시간이었다. 다시 말해, ‘캐릭터소설이 태어날 수 있는 최소한의 캐릭터 데이터베이스가 형성되기까지 걸린 시간이었던 셈이다. 또 상술한 세 명의 작가가 모두 기존 한국 서브컬쳐계에서 판타지 소설을 쓰던 판타지 작가 출신이라는 점 또한 눈여겨볼만 하다.

 

그러나 결론적으로 말해 이들 작가들의 캐릭터소설작가로의 우화(羽化)는 실패했다. 실패할 수밖에 없었다. 한국에선 아직 캐릭터 데이터베이스라는 내재적 환경이 고작 정착했을 뿐, ‘캐릭터소설이란 메타장르를 뒷받침해줄 만큼 깊이가 있지 않았다.

 

뿐더러 위 세 작가의 초기작들을 보면 캐릭터소설로서의 라노베스럽기보다는, 기존 판타지 소설의 특징이 녹아있는 하이브리드적 개성을 뽐냈다. 이는 그들 작품의 가장 큰 장점이었다. 하지만 캐릭터소설로서는 치명적인 단점이었다. 단적인 예로, 그들의 작품은 서사적 측면에서 분명 재밌었지만, 그들이 만들어낸 캐릭터에 모에할 수는 없었다.

 

물론 이는 지극히 주관적인 감상에 의거한 것이다. 그러나 이 감상이 주관적이라는 것을 전제하고서, 한 가지 예시를 들어보자면 다음과 같다. 다음 인용은, 오트슨 작가의 <미얄의 추천>(이하 추천) 1권에서 히로인인 미얄이 등장할 때의 외견묘사에 해당하는 부분이다.

 

 

나는 자유로워진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는 하얀 그림자 하나가 서 있었다.

어깨너머까지 흘러내리는 검은 머리카락, 소복처럼 온몸을 감싸는 하얀 트렌치코트, 그리고 이 세상 사람이라고는 여겨지지 않는 아름다운 얼굴.

누구?

소리없는 질문이었지만, 그녀는 소리로 대답해줬다.

미얄이다.” (밑줄 인용자 강조)

 

 

라노베가 캐릭터소설임을 전제한다면, 히로인의 외견묘사는 해당 소설의 핵심이라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더군다나 그 히로인이 작중에서 최초로 등장하는 장면이라면 두말할 것도 없다.

 

그러나 <추천>에서 묘사되는 히로인의 외양은 너무나 단편적이고 피상적이며 무미건조하다. 심지어 필자는 오타쿠로서 위의 묘사가 불성실하게까지 느껴졌다. 적어도 저 묘사만으로는 미얄에 대해 어떠한 모에도 느낄 수 없었다.

 

왜 그런 것일까? 이는 캐릭터 데이터베이스와 그에 대한 이해가 아직 한국 사회 내부에 제대로 자리 잡지 못했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좀 더 명징한 비교를 위해, 아즈마 히로키의 <게임적 리얼리즘의 탄생>에 인용된 일본 라노베 작품을 살펴보기로 하자.

 

아즈마 히로키는 해당 저서에서 캐릭터의 데이터베이스에서는 이야기가 아닌 캐릭터가 기초적인 단위로 감지되고 있다고 한다. 그렇기에 라이트 노벨 역시 그 환경을 공유하고 있으며 조금이라도 오타쿠들의 표현에 익숙하다면 이러한 기술을 직감적으로 이해할 수 있겠지만 그렇지 않은 독자들은 이해하기 어려울 수도 있을 것이라고 전제한다.

 

그리고 그는 한 예시를 들어 독자의 이해를 돕는다. 바로 타니가와 나가루가 2003년에 발표한 소설 <스즈미야 하루히의 우울>(이하 우울)이다. 그는 <우울>의 중요 캐릭터인 나가토 유키, 아사히나 미쿠루가 소설속에 최초로 등장하는 장면을 예시로 가져온다.

 

 

나는 다시 한 번 그 특이한 문예부원을 관찰했다.

하얀 피부에 감정이 없는 얼굴, 기계처럼 움직이는 손가락 . 보브 컷을 한층 짧게 친 듯한 머리스타일이 나름대로 잘 자리잡은 얼굴 위를 덮고 있었다. 가능하면 안경을 벗은 모습도 보고 싶은 심정이다.

어딘지 인형 같은 분위기가 존재감을 희박하게 만들고 있었다.

노골적으로 말하자면, 좀 뻔한 이야기지만, 소위 신비한 무표정 타입이랄까. (밑줄 인용자 강조)

 

 

난 반사적으로 아사히나 미쿠루를 쳐다보았다.

작은 몸집이다. 참고로 동안이다. 아하, 잘못하면 초등학생이라 오해를 살 수 있을 법했다. 미묘하게 곱슬거리는 밤색 머리카락이 부드럽게 목 언저리를 가리고 있었고, 강아지처럼 이쪽을 올려다보는 촉촉한 눈동자가 지켜주세요 광선을 발산하며, 반쯤 벌어진 입술 사이로 엿보이는 백자처럼 하얀 이가 자그마한 얼굴과 절묘한 조화를 이루어, 빛나는 구슬이 달린 스틱이라도 든다면 바로 마녀로도 변신할 수 있을 법한, 아니 내가 지금 무슨 소릴 하는 거지? (밑줄 인용자 강조)

 

 

외견 묘사에 할애한 글자 수를 정략적으로만 파악해도 그 비중의 차이가 확연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심지어 미얄은 주연 캐릭터고 유키나 미쿠루는 조연 캐릭터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그러나 주지해야할 점은 절대 오트슨이 묘사실력이 모자라거나 혹은 남성 독자들은 휘어잡을 만한 대중적인 감각이 없기 때문에 미얄의 묘사를 축소한 건 아니라는 것이다. 오히려 <추천>의 도입부를 보았을 때, 그 세련된 점에서 <우울>을 한참 능가하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등이 아름다운 소녀였다.

다른 어떤 신체부위보다, 등의 아름다움은 각별하다. 목덜미에서 엉덩이까지 이어지는 아찔한 곡선은 장인의 손으로 빚어진 도자기를 연상케 한다. 그것은 아무리 옷이나 머리카락으로 감추려 해도 감출 수 없었다.

나는 그녀의 등을 보고 있었다.

그렇게 볼 때 그녀의 등은 완벽했다. 검은 폭포처럼 흐르는 머릿결과 단정한 매무새의 교복 속에 감춰진, 완전무결한 곡선을 나는 발견할 수 있었다. 그것은 잘 깎여진 낚시바늘과도 같았다. 어떠한 미끼도 필요 없이, 다만 그 자체로도 물고기들을 현혹시키는 흉기였다. (밑줄 인용자 강조)

 

 

위와 같은 묘사를 미얄의 등장 부분에 활용해주었다면, 필자는 기꺼이 낚시 바늘에 낚인 물고기가 됐을 것이다. 그러나 오트슨은 그러지 않았다. 아니, 그러지 못했다고 보는 편이 타당할 것이다. 왜냐하면 저 묘사간의 괴리는 바로 데이터베이스의 부재로 인한 현상이기 때문이다.

 

<우울>의 인용부분을 살펴보자. 그 인용을 보면 신비한 무표정계라던가, “마법소녀로도 변신과 같은 묘사가 눈에 띈다. 이는 신비한 무표정계마법소녀로 표상되는 모에요소=캐릭터성이 데이터베이스화 돼있음을 의미한다.

 

사실 <우울>의 해당 묘사 인용부분을 세세히 살펴보면, 번역된 소설인 걸 감안하고서라도, 그다지 묘사력이 뛰어나지 않음을 알 수 있다. ‘하얀 피부’, ‘감정이 없는 얼굴’, ‘기계처럼 움직이는 손가락’, ‘미묘한 웨이브의 밤색머리카락’, ‘강아지처럼 이쪽을 올려다보는 촉촉한 눈동자’, ‘백자 같은 치아등등. 어느 면으로 보더라도 즉자적인 직유법에 기반 한 묘사뿐이다.

 

그러나 상술한 묘사 모두가, ‘신비한 무표정계마녀(마법소녀)’라는 모에요소를 설명하기에는 최적화돼있다. 요컨대 상술한 묘사들은 신비한 무표정계마법소녀라는 데이터를 데이터베이스로부터 불러오는데 적합한 코드였던 것이다.

 

그렇기에 저 묘사만으로 일본 오타쿠 독자들은 유키미쿠루어떤 캐릭터인지 상상해내는 게(불러오는 게) 가능했다. 이를 아즈마 히로키는 작가가 독자의 상상력을 먼저 읽고 게다가 작가가 미리 읽은 그것을 독자에게 전달하는 것이라고 표현한다.

 

더군다나 재밌는 점은 인용한 번역문에서조차도 한국에 캐릭터 데이터 베이스가 얼마나 뿌리내리지 못했는가를 알 수 있다는 점이다. 아사히나 미쿠루라는 캐릭터를 묘사하는 구절의 마지막 줄을 보자.

 

인용한 한국 번역본에서는 빛나는 구슬이 달린 스틱이라도 든다면 바로 마녀로도 변신할 수 있을법한이라고 나온다. 그런데 저 마녀라는 표현이 어딘가 어색하지 않은가? 우리들은 저 자리에 왠지 마법소녀라는 단어가 들어가야만 할 것 같다는 공통감각을 갖고 있지 않은가? 원서의 묘사를 확인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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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당 마죳코라는 표현이 다소 생소하기는 하나, 일본에 마법소녀라는 표현이 정착되기 이전 그와 같은 의미로 쓰였던 단어이다. 실제로 일본 위키백과에 마죳코라고 검색하면, ‘마법소녀페이지로의 바로가기가 문서 상단에 표시된다. 위키백과가 대중들의 집단지성으로 이루어진 사이트라는 것을 감안하면, 저 두 단어가 거의 같은 뜻이었다고 파악하는 데 무리가 없을 것이다.

 

당대 우리 사회에 캐릭터 데이터베이스가 어느 정도 형성이 돼있었으면, ‘마죳코라는 단어를 바로 마녀라고 잘라서 번역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지금의 우리에게 마법소녀마녀의 뉘앙스 간에 큰 차이가 있다는 것은 누구나 인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이는 작품이 번역된 2006년에도 아직 캐릭터 데이터베이스가 한국 사회에 제대로 정착하지 못했음을 보여주는 일례라 할 수 있다.

 

각설하고, 이렇듯 그러한 데이터베이스의 구축이 미진했던 당시 한국의 서브컬쳐계로서는, ‘캐릭터성을 떠올리고 히로인에게 그것을 부여하는 행위 자체가 난제였을 가능성이 크다. 어쩌면 당시의 오트슨은 스스로도 모에한 미얄에 대한 구체적인 상()을 제대로 떠올릴 수 없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이는 그들 작가들이 아직 캐릭터 데이터베이스라는 개념이 낯설었기 때문이라고 볼 수도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 당시 그것을 향유하던 한국의 독자층 또한 캐릭터 데이터베이스에 대한 이해가 피상적이었기 때문이라고도 할 수 있다.

 

실제로 그 당시(2000년 즈음) 우리들은 츤데레캐릭터라고 하면, 트윈테일에 눈꼬리가 위로 올라갔으며 흐흥, 딱히 네가 좋아서 해주는 건 아냐. 착각하지 마!”와 같은 대사를 남발하는, 극히 피상적인 차원에서 밖에 그를 연상해내지 못했다.

 

그러나 캐릭터소설의 본고장이라 할 수 있는 일본은 달랐다. 예컨대 일본에서는 츤데레라는 캐릭터성이 정립된 후, 다양한 바리에이션이 생산됐다. ‘쿨데레얀데레와 같은 변주가 바로 그것이다.

 

이러한 변주야 말로 일본 서브컬쳐계 내부에 집적돼있는 데이터베이스의 수준이 무척 깊다는 증거다. 그러나 우리는 아직까지도 츤데레와 같은 일본어 표현조차 변변히 로컬라이징 하지 못하고 있지 않는가. 이는 캐릭터 데이터베이스가 한국에서 깊이 자리 잡지는 못했다는 반증과 같다.

 

결국 판타지소설에서 건너와 라노베를 쓰기 시작한 이들 작가들은 캐릭터소설을 창작해내는 데에는 실패했다. 그리고 이들을 나는 한국 라노베 1세대라고 부르고자 한다. 그리고 1세대라는 세대 구분을 시도했다는 것은 이 뒤에 도래할 2세대를 상정하고 있다는 이야기가 될 것이다. 필자는 이 한국 라노베 2세대에 이르러 캐릭터소설로서의 라노베 특성이 점점 전면에 나오기 시작했다고 본다.

 

그 시작점이 된 작품으로 필자는 <숨덕부>를 꼽는다. 이 소설이 2011년에 출간됐으니, 1세대로부터 다시 5년 즘의 시간이 걸린 셈이다. 그러나 2세대 역시 아직 캐릭터를 중심에 두는 메타장르로서의 특성을 완벽히 체화해내지는 못했다.

 

그 증거로, 우선 2세대에 이르러서도 대부분의 라노베 타이틀들이 판타지세계관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라노베란 캐릭터를 작품의 중심에 놓는 것으로, 다양한 세계관을 포섭할 수 있다는 장점을 가진다.

 

요컨대 확고부동한 캐릭터 데이터베이스만 있으면, 그 데이터베이스로부터 파생한 캐릭터들이 뛰어노는 세계관이야 판타지가 됐든, SF가 됐든, 현실기반이 됐든,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뜻이다.

 

물론 캐릭터소설에 있어서 세계관의 중요성을 무시하려는 의도는 아니다. 또한 판타지세계관에서는 매력적인 캐릭터들이 나올 수 없다 따위의 소리를 하려는 것도 아니다. 다만 세계관 또한 캐릭터의 개성을 결정짓는 중요한 요소라는 점을 짚고 넘어가고자 한다. 오쓰카 에이지는 본인의 저서 <캐릭터 소설 쓰는 법>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이쯤 되면 캐릭터 소설의 본질은 캐릭터라고 하지 않았던가라는 의문을 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캐릭터를 형상화하는 과정에서 작중의 캐릭터가 세계를 어떻게 보고수용하는지를 묘사하는 과정은 필요 불가결 하다. ……중략…… 즉 캐릭터의 개성이란, 1. 캐릭터의 성격이나 성장과정, 그 밖에 개인의 특수성에서 비롯된 것. 2. 캐릭터가 소속하는 세계의 가치관에서 비롯된 것으로 이루어져 있다. (밑줄 인용자 강조)

 

 

그런 점에서 현실기반의 세계관을 두고 있으며, ‘캐릭터소설로서의 정체성이 엿보이는 숨덕부가 기념비 적인 작품이라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를 제외한 거의 대다수의 한국 2세대 라노베들은 판타지 세계관만을 고집하고 있다.

 

이는 한국에서의 캐릭터 데이터베이스가 부실했다는 것을 반증한다. ‘캐릭터 데이터베이스가 부실하기 때문에 다양한 시도를 할 엄두를 내지 못하고, 판타지 소설의 입김 아래서 서사의 변주만을 반복했던 것이다.

 

그러나 한국 2세대 라노베들이 1세대에 비해 전반적으로 캐릭터소설이라는 정체성을 더 확실히 염두에 두고 있었다는 증거 또한 존재한다. 바로 서사에 있어서 러브 코미디를 전면화 했다는 부분이다.

 

사실 남녀상열지사만큼 캐릭터의 성격을 단적으로 드러내주는 것도 없다. 더군다나 일본 캐릭터 데이터베이스에 집적돼있는 모에요소란 대개의 경우 성()적인 뉘앙스를 포함하고 있다. 그러므로 러브 코미디라는 장르성이 발달하기 시작했다는 것은 결국 2세대 라노베 작가들이 캐릭터를 보다 더 신경 쓰기 시작했다는 것과 다름없다.

 

지금까지의 논의를 도식화 하면 한국 1세대 라노베 작가들은 서사를 메인에 두고 캐릭터를 서브로 두었다고 볼 수 있고, 2세대 라노베 작가들은 캐릭터를 메인에 두고 서사를 서브로 두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결국 캐릭터만을 메인에 두는 캐릭터소설로서의 라노베에는 다다르지 못했다.

 

그리고 이러한 배경으로 인해 한국 라노베 판에 치명적인 균열점이 발생하게 된다. 바로 단결완결성에 대한 집착이다.

 

한국 라노베 출판계에서 가장 커다란 파이를 차지하고 있는 출판사를 꼽으라면 역시 시드노벨일 것이다. 그런데 시드노벨은 홈페이지에서 확인되는 바에 따르면 적어도 2009년부터 2017년까지 공모전에 있어서 늘 단권완결성을 조건으로 내걸었다.

 

이는 한 권 내에서 이야기 하나의 완결성을 가진 시놉시스를 뜻한다. 그들은 20091230일자 공모요강에 단권완결성을 조건으로 내세운 이유를 작가지망생의 필력을 가늠하는 기준과 형식으로 삼고 있기때문이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어째서 한 권 내에 이야기 하나의 완결성을 가진 시놉시스작가지망생의 필력을 가늠하는 기준과 형식이 되는지 의문을 갖게 된다. 물론 이 지면에서 시드노벨의 심사기준까지 정확하게 추론해내긴 힘들다. 그러나 거칠게나마 그 편린을 짚어보자면, 당시 대다수의 일본 라노베단권완결성의 형식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즉 그들은 일본을 의식했던 것이다.

 

그렇다면 그들은 왜 일본을 의식했는가라는 질문으로 자연스럽게 시선이 옮겨가게 된다. 그러나 이 부분에 대한 논의는 현 단계에선 결국 근거 없는 추측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관계자에게 이야기라도 듣지 않는 이상, 다양한 가능성이 열려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그보다 먼저 어째서 일본 라노베들은 대개 단권완결성의 형식을 갖고 있었는가.”를 고찰해보고자 했다. 그리고 지금까지의 논의에 따르면 이에 대한 대답은 너무 자명하다. 그것은 바로 일본의 라노베가 캐릭터소설이고, 그렇기에 서사에 그리 큰 비중을 두지 않아도 됐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다시 아즈마 히로키의 이론을 살펴보자. ‘근대 소설들은 커다란 이야기라는 심급을 더듬어가는 창구로서 기능했다. 그러나 커다란 이야기가 무너져 내린 현대사회에서, 소설들은 작은 이야기(시뮬라크르)’의 성격을 띠게 됐다.

 

그러므로 커다란 이야기의 빈자리를 커다란 비()이야기=데이터베이스가 대신하게 된다. 이 데이터베이스로부터 파생된 작은 이야기(시뮬라크르)”들은 파편화하고 부유하게 된다. 시뮬라크르들의 중심에 서 있어야할 원전(오리지널)’이 더 이상 원전으로서 기능하지 않기 때문이다.

 

커다란 이야기가 존재 했던 세계에서는 원전만이 그 커다란 이야기에 접속할 권한이 있었기에 절대적인 권력을 가질 수 있었다. 그러나 커다란 비이야기=데이터베이스가 구축된 현대 사회에서는 누구나 거기에 접속할 수 있다. 좀 더 정확히 이야기하면 단일 개체가 커다란 비이야기=데이터베이스를 독점한다는 게 본질적으로 불가능하게 됐다.

 

왜냐하면 커다란 비이야기=데이터베이스란 실체가 없는 정보의 집적이기 때문이다. 이는 모방과 원전이 같은 값(지위)을 갖게 됐음을 의미한다. , “커다란 비이야기=데이터베이스를 심급으로 하고 있는 현대사회에서는 서로가 서로를 모방하는, 끊임없는 모방의 재생산이 존재할 뿐이다.

 

그러나 이는 뒤집어 말하면 모든 이야기가 원전으로서 기능할 수 있게 됐음을 의미하기도 한다. 파편화된 작은 이야기(시뮬라크르)” 하나하나가 원전으로 기능할 자격을 획득했다는 뜻이다.

 

그리고 이야기원전으로 기능한다는 것은, 이야기하나 만으로 완결성을 갖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일본의 라노베가 대체로 단권완결성을 띠고 있었던 이유가 바로 여기에서 연유한다.

 

, ‘캐릭터 데이터베이스로부터 모에한 캐릭터들을 불러와 캐릭터소설=라노베를 창작하는 것만으로 각 타이틀들이 서로 원전으로 기능한다. 그와 마찬가지로, 한 타이틀 안에서도 각 권 호 들이 서로 원전으로 기능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20권짜리로 구성된 라노베 타이틀이 있다면, 그것은 각각 캐릭터들이 뛰어놀 수 있는 완결성을 가진 20개의 작은 이야기(시뮬라크르)”들의 집합이라고 봐야한다.

 

하지만 이 모든 논의는 해당 사회 내부에 커다란 비이야기=데이터베이스가 구축이 돼있음을 전제로 한다. 그 중에서도 캐릭터 데이터베이스가 구축이 돼있어야 함을 전제로 한다. 이 모든 함의들을 세밀하게 살피지 않은 채 그저 형식만을 차용했다면, 그 기획이 성공할리 만무하다.

 

그리고 필자의 짧은 식견으로는, 시드노벨은 그저 형식만을 차용했다. 이는 결과적으로 작가진을 양성하는 데 있어서도 영향을 끼쳤다. 요컨대 본인들 스스로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채 제시한 가이드라인은 이제 막 라노베 판에 뛰어드려는 작가지망생들을 이끌어주기는커녕, 오히려 그들이 제대로 된 프로의식을 갖지 못하도록 방해했기 때문이다.

 

이는 역대 시드노벨의 공모요강을 살펴보면 보다 분명하게 드러난다. 일반적으로 생각했을 때, 공모전은 어떤 분야의 것이 됐든 분명한 주제를 갖는다. 이는 참가자에게 일부터 제한을 줌으로써, 참가자가 한정된 조건 내에서 얼마나 주어진 과제를 잘 해결하는 가 확인하는 일종의 테스트다.

 

그런데 이 테스트는 다시 말하면 개인이 한 분야의 프로로 거듭나는데 있어서 필요한 최저 조건을 확인하는 것이기도 하다. , ‘한정된 조건 내에서 최고의 효율을 뽑아낼 수 있는 사람 = 기업이 필요로 하는 프로의 인재상(人才像)’이란 뜻이다. 그리고 공모전이란 개인이 그러한 프로로 거듭날 수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기업이 마련한 최초의 관문인 셈이다.

 

그러나 시드노벨은, 적어도 홈페이지에 올라와있는 공모요강에 따르면, 이제껏 라노베를 공모하는데 있어서 그러한 조건의 설정을 한 차례도 한 적이 없다. 그들의 공모에서는 언제나 판타지, SF, 밀리터리, 이능배틀, 미스터리, 호러. 추리, 스릴러, 게임판타지, 러브코미디, 홈코미디 등 모두 다 됐. 따로 제시했다고 할 만한 게 있다면 그것은 오로지 단권완결성이라는, 그 이유를 이해하기조차 쉽지 않은 조건뿐이었던 것이다.

 

이럴 경우, 작가지망생들은 미쳐 날뛰게 된다. 스스로의 작품에 대한 객관적 성찰 보다는, 본인이 좋아하는 걸 일단 쓰고 보는 것이다. 당연하다면 당연한 이치이다. 어떠한 기준도 없는 상황에서 단권으로 끝내기만 하면 돼.”라는 이야기를 들으면, 우선 제일 자신 있고, 제일 좋아하는 것들을 늘어놓는 데에 급급해지지 않겠는가.

 

결국 작가지망생의 필력을 가늠하는 기준과 형식으로 삼고자 했던 단권완결성은 작가지망생들의 아마추어리즘(amateurism)’을 부추긴 결과만을 낳고 말았다.

 

이와 같은 그들의 무섬세함은 10년에 가까운 세월을 걸쳐 한국 라노베 판에 균열을 조금씩 키워갔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시드노벨이 그린 캐릭터소설로서의 한국 라노베 기획은 시작부터 균열을 내포하고 있었다고 파악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그 균열에 결정타를 가한 건 바로 매체의 변화였다. 사실 데이터베이스의 집적은 시간만이 해결해주는 문제다. 만약 한국 라노베 업계가 호흡기를 붙인 상태일지언정 10년만 더 유지 가능하다면, 그동안 쌓일 한국산 캐릭터 데이터베이스를 밑바탕으로 삼아 멋지게 회생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스마트폰의 등장으로 인한 매체의 변화’, 그에 따른 신규 플랫폼 웹소설의 등장을 기존 한국 서브컬쳐계의 적통을 이어오던 판타지소설이 선취해버린다. 이것이 가능했던 것은, ‘판타지 소설, ‘라노베(캐릭터소설)’캐릭터 데이터베이스와는 다른 종류의 데이터베이스=커다란 비이야기를 구축해냈기 때문일 것이다.

 

조금 과장을 보태어 이 글을 정리하자면, 한국 라노베는 캐릭터 소설이라는 새로운 흐름을 한국 서브컬쳐계에 정착시키고자 했으나 끝내 실패(할 가능성이 다분)하고, 웹소설로 넘어가는 과도기적 정체성밖에 지켜내지 못한 비운의 사생아라고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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텍스트릿 필진 김지석 의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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