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면-냉면의 정통.

홍유진 2019.02.01 14:14 조회 수 : 616

 

1.

 분명히 밝혀두고 시작한다. 이 글은 <냉면> 단편집에 대한 주례사 비평이다. 나는 내 단편이 실린 앤솔로지를 비판적으로 비평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다. 만약 내가 그런 사람이더라도 내가 쓴 비평이 주례사 비평이라는 의심을 피하기도 어려운 상황이라는 것 역시 분명하다. 그러므로 이 글은 처음부터 주례사 비평을 목표로 하겠다고 의도를 밝히는 편이 차라리 옳겠다.

 

 단편집 <냉면>은 안전가옥에서 주최한 냉면 단편소설 공모전의 수상작 세 편과 초대작 두 편을 담은 책이다. 1회 공모전임에도 불구하고 작가들은 dcdc를 제외하고는 무척이나 구성이 화려하다. 이 수사만큼은 주례사 비평이 아니라는 것을 누구나 인정할 것이다. <옥탑방 고양이>의 각본가 김유리와 창비어린이 신인문학상 당선자 범유진에 한국호러를 대표하는 전건우 그리고 곽재식 속도로 소설을 쓰는 것으로 유명한 곽재식까지 포함되었으니 말이다.

 

 이렇게 <냉면>dcdc를 제외하면 각지의 에이스 카드가 모인 앤솔로지임에도 겨냥하는 바는 하나로 또렷하다. 어떤 권위주의적 꼰대질의 상징으로 박제된 냉면을 맛 좋은 음식이라는 본래의 자리로 탈환하는 것이 바로 그 목표다. 세 편의 당선작과 두 편의 초대작은 마치 짜고 쓰기라도 한 것처럼 하나같이 "순수한" 냉면이 아닌 순수한 "냉면"의 이야기를 하고 있으며 이들의 이야기는 어떤 전통의 복원이나 경험과는 철저히 분리된 채 자신만의 새로운 논리를 발전시키며 진행된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전통의 복원을 지우는 정통의 길을 걷는다 할 수 있겠다.  

 

 

 

 

2.

 수록작 <A, B, C, A, A, A><옥탑방 고양이>의 각본가 김유리의 작품이다. 부산에서 글쓰기 강습을 하는 주인공이 188cm/아이돌처럼 생긴 얼굴/초콜릿 복근이라는 스펙에 조신한 몸가짐마저 가진 연하남과 맛있는 냉면집을 찾아다닌다는 이 로맨스에서 냉면은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마들렌처럼 흘러간 시간을 추억하게 만드는 매개로 작동한다.

 

 

"나는 땀방울을 줄줄 흘리고 있는 A의 옆얼굴을 올려다보았다. 큰 키 때문에 날렵한 턱 선이 먼저 보였다. 땀으로 젖은 셔츠 안으로 아름다운 복근이 보였다."

 

 

 그리고 이 추억에서는 냉면의 맛 이상으로 냉면을 먹는 과정을 함께 하는 사람이 중요하다. <A, B, C, A, A, A>는 냉면의 맛과 각 가게의 특성을 무척 충실하게 묘사하지만 이는 A가 주인공을 사랑하는 방식에 대한 묘사와 비교하면 어디까지나 부차적인 문제다.

 

 봉준호 감독의 <살인의 추억>에 나오듯 한국 사회는 연쇄살인마를 보고도 밥은 먹고 다니냐고 물을 정도로 식사를 중요시하는 문화다. 그러니 연애의 기억이 음식의 추억으로 남는 것은 필연이나 다름없을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이 연애 역시 식사를 즐겁게 같이 할 수 있는 누군가와의 추억으로 기억되고 말이다.

 

 

 

 

3.

 다음으로 실린 <혼종의 중화냉면>은 예상컨대 무척이나 오래 그리고 또 자주 화자가 될 작품일 것이다. 창비 청소년 신인문학상 당선자 범유진이 쓴 이 글은 책에 수록된 다른 작품들과 달리 한국식 냉면이 아닌 중화냉면을 소재로 하고 있다. 호주에서 워킹홀리데이를 보내고 있는 각국 젊은이들의 이야기이니 국적불명의 혼종 요리인 중화냉면만큼이나 이 작품에 더 어울릴 소재도 없을 것이다.

 

 

"쫄면은 한국에만 있데. 국수 중에서도 이렇게나 출신 확실한 애는 드물어. 언니가 쫄면을 한 올씩 떼어내 냄비에 넣을 때면, 나와 언니에게 들러붙어 있는 수많은 쓸모없는 것들이 함께 떼어져 물속에서 끓어 사라지는 것 같았다."

 

 

 이 작품은 몹시 훌륭한 디아스포라 문학이다. 주인공은 일본/한국 혼혈이며 그의 의붓언니는 대만계다. 주인공은 호주 백팩커에서 한국, 일본, 베트남 등 세계 각지에서 온 청년들과 교류하며 "혼종"으로서의 과거를 추억한다. 이 복잡할 수밖에 없는 이야기를 정갈하고 담백하며 유려한 필치로 진행하는 작가의 솜씨는 그저 감탄스러울 뿐이다.

 

 <혼종의 중화냉면>은 제목과는 달리 정통의 문학이다. 여기서 전통이라는 단어가 아닌 정통이라는 단어를 썼음에 유의해주시길 부탁드린다. 이 소설은 주인공의 개인적인 노스탤지어를 복원하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지금 자신이 밟고 있는 현실을 성실하게 묘사하고 또 긍정한다. 요점만 말해 <혼종의 중화냉면>은 황교익의 뺨을 때리다 못해 눕혀놓고 관절을 꺾은 뒤 파운딩하는 디아스포라 냉면 소설인 셈이다.

 

 

 

 

4,

 dcdc<남극낭만담>...아니 제가 말해서 어쩌겠어요...그럼 주례사 수준이 아니잖어! 이번에도 역시 '아 이건 꽃비님이 맡아주시면 좋겠다' 싶은 캐릭터 하나를 넣었습니다. 그 외에는 굳이 더하고 싶은 말이 없네요.

 

 

"펭귄 자주 보나요?"

"가끔요. 냄새 나고 더러워요."

"이렇게나 귀여운 사람이 저렇게나 귀여운 생물한테 그렇게 말하기야? 직접 봤는데도 펭귄이 안 귀여워요?"

"펭귄한테 뺨 맞아보신 적 있으세요?"

 

 

 남극 세종기지에서 근무하신 바 있는 소재은 연구원님의 도움을 받아 집필하긴 했는데 전혀 과학적이지 않은 이야기만 나옵니다. 연구자님이 나중에 보시고서 황당해 하시지 않을까? 음식 이론 면에서도 마찬가지고요.

 

 제목처럼 낭만적이기만 한 이야기는 아닙니다. 일단 아무렇게나 적어놓고 쓰기 시작한 것이었는데 수정하는 걸 까먹었지 뭐야. 하지만 당선되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제목을 다시 짓겠다고 해볼까 고민했을 때 딱히 떠오르는 것도 없고 어감은 마음에 들어 이대로 진행하기로 했었지요.

 

 

 

 

5.

 <목련면옥>의 목련은 그 목련이다. 목련만큼이나 호러소설과 잘 어울리는 꽃도 없을 것이다. 전건우가 쓴 호러소설이라는 한 문장으로도 이 작품의 대부분이 설명된다고 생각한다. 작가의 이력에는 마일리지처럼 신뢰도가 쌓이기 마련이고 전건우는 마일리지를 충실히 적립한 작가다.

 

 

"나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가만히 쳐다만 봤다. 그 여자는 붉고 두툼한 혀를 내밀어 입술을 핥았다. 나는 그 모습에서 수족관에 떠다니는 반쯤 썩은 금붕어를 떠올렸다."

 

 

 이 이야기의 배경은 1990년대다. 스마트폰도 없고 온라인이라는 개념도 많은 사람들에게 생소하게 다가가던 시절이었다. 그런 시기에 갈 곳이 없는 무숙자들에게 도피처나 다름없는 공간들이 있었다. 지금이라면 청소년 쉼터가 맡을 역할을 주유소나 중국집이 일부나마 대행했던 것이다.

 

 당연히 이런 대행 체제는 안정적이지 못했고 위험요소로 가득했다. <목련면옥>은 그렇게 불안했던 몇몇 공간에 대해 기록한다. 이는 과거를 말하되 그 과거의 문제점들을 지적하는 폭로의 과정이기도 하다. 사회적 약자를 다룸에 있어 호러만이 가질 수 있는 장점이 십분 발휘된 작품인 것이다.

 

 

 

 

6.

 <하와이안 파인애플 냉면은 이렇게 우리 입맛을 사로잡았다>은 제목만으로도 작가를 짐작할 수 있을 것 같다. 당연히 곽재식의 단편이다. 이쯤 되면 냉면의 전통이라는 개념은 우주 저멀리 날아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번 프로젝트 데드라인 맞추려면 에이에스에이피로 해야 되죠? 그런데 일단 이건 지금 우리 상황에서 의사 결정 문제라고 봅시다. 당장 프라이어티를 생각했을 때 이번 프로젝트가 지체 됐을 때 우리 쪽 파이낸스에서 이게 톨러러블한가요?"

 

 

 이 작품은 제목만으로 작가를 짐작할 수 있는 만큼이나 작가만으로 내용을 짐작할 수 있다. 다시 한 번 한국 사회의 관료제가 내포한 문제점을 지적하고 있을 것이고 인공지능에 대한 이야기가 나올 것이며 어리숙한 이공계열의 남성과 그에게 동력이 되는 여성이 등장할 것이라고. 그러니 당연히 재미없을 리가 없다는 것도 알게 된다.

 

 이 소설이 진정 두려운 이유는 읽다 보면 하와이안 파인애플 냉면이 진짜로 맛있을지도 모른다는 의심이 든다는 점이다. 하기야 원래 냉면에는 배가 들어가는데 파인애플이라고 안 될 것이 뭔가? 파인애플은 고기를 부드럽게 하는 효과도 있으며 차게 먹는 것이 익숙한 과일이다. 여기에 곽재식의 입담마저 더해지니 하와이안 파인애플 냉면은 내가 알던 그 냉면과는 분명 다르지만 이미 익히 알다 못해 분식집에서 몇 번 먹은 적이 있지 않나 싶을 정도로 친숙한 심상으로 다가온다. 전통과는 완전히 정반대의 관점에서, 과거가 아닌 미래에서 현대로 이어지는 흐름으로 현상을 해석하는 이 시선은 SF 그리고 곽재식이 갖는 강점이다.

 

 

 

 

7.

 글의 결론을 맺기 전에 마지막으로 한 번 더 강조하겠다. 이 글은 주례사 비평이다. 결혼식처럼 경사스러운 자리에서 구태여 신부와 신랑에게 악담을 하지 않는 것처럼 좋은 말만 골라서 했다는 이야기다. 많은 사람들이 이러한 주례사 비평이 무쓸모한 악습이라고 비난을 하고 있으며 나 역시 이에 동의하는 바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긴 글을 써서 각 작품의 의의와 장점을 발굴하고자 한 이유는 간단하다. 이 작품들이-dcdc의 작품은 제외하고-다 재밌기 때문이다. 냉면 공모전이라는 흥미로운 기획에서 두 달이라는 제출 기한 내에 이렇게나 완성도 높은 작품들이 나왔다는 것은 그저 신기한 노릇이다.

 

 어쩌다 한 번 냉면이 먹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마다 참 괴롭다. 어떻게든 우래옥이나 봉피양에 가서 한 사발 들이키지 않으면 그 전까지 계속해서 냉면을 먹어야만 한다는 사명에 사로잡혀 안달이 나기 때문이다. <냉면> 단편집 역시 그러한 책이 되었으면 싶다. 책장 한 구석에 오래도록 꽂혀 있다가 문득 생각이 나면 다시 한 번 읽을 때까지 안달이 날 그런 책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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